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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9일, 멕시코 메리다에서 100여 개국의 수뇌부가 서명한 유엔반부패협약(UNCAC)이 곧 역사적인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9월 15일 에콰도르의 서명으로 발효기준이 되는 30개국 비준 요건이 충족됨에 따라 유엔반부패협약(UNCAC)은 90일 후인 12월 14일 발효된다.

1996년 미주국가간부패방지협약, 1997년 OECD 뇌물방지협약, 2003년 부패방지 및 척결에 관한 아프리카연합협약 등 90년대 이후 본격화된 대륙별 및 대륙간 부패방지협약이 의미하는 바는 오랫동안 일국적 의제로만 머물러 있던 부패가 글로벌화 진행에 따라 필연적으로 세계적 의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유엔반부패협약은 일련의 지역 반부패협약이 글로벌 차원의 협약으로 발전되어야 부패를 극복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세계 각국의 인식과 경험의 최종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매년 뇌물 규모 약 1조억 달러

부패가 단지 일국 정권의 안정성에만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 환경, 민주화 등 다양한 영역에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글로벌 차원에서도 매우 부정적인 역할을 미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하여 입증되고 있다.

유엔은, 부패는 세계의 어떤 단일 범죄보다도 훨씬 큰 손실을 야기하기에 부패의 극복은 또 다른 발전의 가능성이 된다고 보고 있다. 세계은행의 연구에 따르면 매년 세계적으로 세계GDP의 3%가 넘는 약 1조억 달러의 뇌물이 지불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간접적 영향이 빠져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직간접적 영향을 모두 포함하여 부패가 야기하는 손실이 세계 총생산의 최고 17%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동아시아국가들은 부패로 인하여 약 48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는데, 이는 이들 국가 전체가 가지고 있는 406억 달러의 외채를 가볍게 뛰어넘는 액수이다. 세계은행의 부패전문가인 다니엘 카우프만(Danial Kaufman)은 부패가 연간 세계경제생산의 약 5%를 잠식한다고 보고 있다. 유엔은 1달러의 뇌물이 1.7달러의 손실을 야기한다고 경제적 비용을 계산하였다.

선진국의 자발적 투명성 개선 노력 없는 밀레니엄 개발 목표

지난 2000년 밀레니엄 정상회담에서 서방의 지도자들은 절대빈곤 및 기아퇴치, 보편적 초등교육, 양성평등과 여성 능력 고양, 아동사망률 감소, 모성보건 증진, 에이즈 등 질병 퇴치, 지속가능한 환경보전, 지구적 개발연대 구축의 8개항에 걸친 밀레니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제시하였다. 동시에 서방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부패극복과 투명성 제고를 개도국들이 가장 먼저 풀어야할 제 일의 과제로 제시하였으며, 미국은 부패극복의 중요성을 누차에 걸쳐 강조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최초 서명국인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30번째 서명국 에콰도르에 이르기까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G8 국가들 중에서는 프랑스만이 유엔반부패협약을 비준하였다. OECD차원에서는 30개국 중 프랑스, 멕시코, 헝가리의 3개국만이 국회에서 비준하여 비준율이 겨우 10%에 머물고 있다.

밀레니엄개발목표는 극빈층의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GDP의 25%에 해당하는 1480억달러의 손실이 부패로 인해 발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상품의 비용이 20% 증가하고 투자와 개발이 지연되어 빈곤해소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

니카라과 부모들의 약 90%는 선생들에게 의무적인 '기여'를 해야 하며, 파키스탄에서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단지 47%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대부분 뇌물을 제공해야하는 상황에서 밀레니엄개발목표가 약속한 교육기회의 개선은 여전히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밀레니엄개발목표는 또한 에이즈 등 질병퇴치를 선언하고 있지만 부패는 이 목표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매년 15만명의 어린이들이 말라리아로 죽고 있으며, 전 세계 에이즈인구의 64%에 해당하는 2500만명이 에이즈에 신음하고 매일 6500명(이 중 1400명은 신생아)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있다.

그러나 부패로 인하여 가짜 약들이 판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나이지리아와 같이 에이즈로 심각한 인구감소에 시달리는 아프리카국가들에서 에이즈감염자의 상당수가 죽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만약 일부 서구 기업들의 아프리카 공무원들에 대한 매수가 횡행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투명시스템이 갖추어졌다면 아프리카에서의 보건의료상황은 상당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엔반부패협약, 초국경 부패를 잡는다

유엔반부패협약은 부패극복과 투명성 제고가 인권, 평화, 환경과 같은 글로벌 의제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부패의 폐해가 글로벌하게 전개되고 있고, 일국적 차원의 대응을 뛰어넘는 글로벌 반부패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뇌물제공, 돈세탁, 부패공직자의 해외도피 등은 이미 초국경적 현상이며, 이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역시 지난 시기 부패한 고위공직자, 경제인들의 해외도피나 자금 유출에 대해 제대로 손 한번 못쓰고 당해왔던 아픈 기억이 있는 이상 글로벌 반부패네트워크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인 정서적 공감대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유엔반부패협약은 이러한 글로벌 부패현상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과 한층 진일보된 부패에 대한 개념을 담고 있다. 중요한 내용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ㆍ부패를 공적분야에만 제한하지 않고 사적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사적분야에서 회계 및 감사 기준을 개선하고 불응시 제재를 가한다.

ㆍ독재자와 다른 공직자가 빼돌린 자금을 정부들 사이의 보다 빠르고 개선된 협력을 통하여 환수를 촉진한다.

ㆍ스위스와 영국과 같은 금융중심지에 불법해외유출자금에 대한 조사를 강제하고 돈세탁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ㆍ해외로 불법자금을 유출한 부패한 자들이 어디에 숨든, 글로벌 차원에서 사법적 조치가 가능하다. 자신의 나라에서 부패를 저지른 외국기업이나 개인들에 대해 지금과 같이 막대한 자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추적할 수 있다.

ㆍ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주요한 비OECD무역 강국들을 포함하여 모든 교역당사자들에 대하여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금지조치를 취하고, 검은 돈 유통의 주요 채널을 봉쇄할 수 있다.

ㆍ내부고발자 보호, 정보의 자유, 공공부문에 대한 책임적 시스템의 구축 등을 도입하는 국내 반부패법안의 기본 틀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G8을 포함하여 모두 129개국이 유엔반부패협약에 서명하였다. 이는 글로벌차원의 부패방지에 대한 관심이 전례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여전히 전체 서명국 중 1/5만이 비준을 하여 광범위하게 유엔반부패협약을 국내법으로 채택하는 여정은 여전히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선진국'들이 밀레니엄개발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후진국'들에게 부패극복과 투명성제고를 제일의 과제로 요구하였지만, 현재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G8국가들과 OECD국가들의 유엔반부패협약의 비준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3월 9일 공공, 정치, 경제, 시민사회 주요 대표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서명한 '투명사회협약'에 유엔반부패협약의 비준을 약속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유엔반부패협약의 후속조치를 위한 회의는 2006년 하반기에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도 조속히 협약의 비준을 통하여 세계적 차원의 부패극복에 대한 기여와 국내에서의 반부패노력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정수 기자는 반부패국민연대 정책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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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간 반부패운동에 몸담아 왔다. 또한 10년간 가족들과 함께 홈스쿨과 대안교육활동을 했다. 편역/편저로는 반부패지도 I, II, III이 있으며, 저서로는 "다리미를 든 대통령-부패 없는 사회를 위하여"(민들레)가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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