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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처럼 맑고 고요한 삼지연 자연호수
거울처럼 맑고 고요한 삼지연 자연호수 ⓒ 박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삼지연

2005. 7. 23.

08: 00. 백두산 상봉에서 벅찬 해맞이 행사를 마치고 베개봉호텔로 돌아왔다. 구내식당에는 조촐한 아침밥이 마련됐는데,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산을 오른 뒤라서 밥맛이 아주 좋았다. 주 반찬은 산나물과 된장찌개였는데, 송강의 시구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보다 맛이 있네' 그대로였다.

08: 40. 삼지연 전적지로 출발했다. 그곳 삼지연 연못가에는 1939. 5. 21. 항일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산지구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대기념비가 세워진 곳이라고 한다. 이곳 관람에 왈가왈부 시시비비가 있었으나 우리는 북측 조선작가동맹으로부터 초청 받은 손님이기에 그들이 안내하는 일정에 좇는 게 예의라는 명분에 따랐다.

이런 곳을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고 꾸중할 분도 계시겠지만 옛 병법에도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고 하였다. 뭘 알아야 글도 쓰고 바르게 비판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반대하고 비판하는 것은 먹물 든 사람이 취할 바가 아니다.

삼지연 호숫가의 봇나무, 김일성 주석이 다녀간 자리라는 돌이 세워져 있다.
삼지연 호숫가의 봇나무, 김일성 주석이 다녀간 자리라는 돌이 세워져 있다. ⓒ 박도
09: 30. 삼지연 대기념비에 도착한 뒤 북녘 작가와 안내원들이 앞서 꽃다발을 김일성 주석 동상 앞에 헌화하는 다음에야 남측 우리 일행은 그들의 안내에 따라 전적지 일대와 호수를 둘러보았다.

삼지연 연못가 광장에는 봉화탑, 김일성 주석 동상, '진군' '흠모' '조국' '숙영' 의 이름을 붙인 돌로 조각한 조형물들이 삼지연 호숫가에 세워져 있었다. 삼지연 호수는 봇나무와 이깔나무 숲에 둘러싸인 천연호수로 바닥이 훤히 보일 만큼 물이 맑고 고요하였다. 아마도 이런 호숫물을 '명경지수(明鏡止水)'라고 하나 보다.

그때가 연중 가장 무더울 때이지만 더위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온이 쾌적하였고, 공기도 맑고 숲도 우거져서 여름철 휴양지로 최적지로 보였다. 통일 뒤 이곳에다 콘도를 지으면 아마도 관광객들로 미어지리라.

사실 세계 여러 나라를 둘러보아도 우리 나라처럼 아기자기하게 산수가 빼어난 곳은 드물다. 이 아름다운 내 나라 국토를 두고서 분단으로 해외에 휴가 피서여행을 떠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새삼 아름다운 북녘 산하는 우리 겨레의 엄청난 자산으로 이렇게 잘 보존되고 있는 것은 축복으로, 관광 자원 면에서도 조국 통일의 앞날을 밝다고 느껴졌다.

삼지연 전적지의 봉화탑
삼지연 전적지의 봉화탑 ⓒ 박도
'남 좋고 북 좋은 일'

10: 20. 삼지연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백두관(삼지연 혁명사적관)을 관람하였다. 이곳은 삼지연 전적지 참배객들에게 교육하는 곳으로 여러 항일 조형물을 비치해 두고 안내원들이 육성과 영상으로 학습 시켰다. 2층에 오르자 베란다에서 삼지연 읍내가 빤히 보였다. 삼지연의 건물들은 대부분 붉거나 푸른 원색의 뾰족지붕으로 마치 알프스의 어느 산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삼지연 시가지 뒷산이 바로 베개봉으로 스키장이었다.

삼지연 시가지와 뒷산 스키장
삼지연 시가지와 뒷산 스키장 ⓒ 박도
일정표에 우리 2진은 삼지연 전적지 관람 뒤에는 삼지연 공항으로 이동하여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떠날 예정이었던 1진이 짙은 안개로 출발이 지연되어 우리 2진까지 일정이 순연되었다. 호텔로 돌아온 뒤 오랜만에 널널하게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북의 박경심 시인과 함께. 오영재 시인이 셔터를 눌렀다.
북의 박경심 시인과 함께. 오영재 시인이 셔터를 눌렀다. ⓒ 박도
마침 호텔 어귀에서 북의 오영재 박경심 시인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는 기념 촬영을 하는데, 셔터를 누르는 오 시인이 "이 참에 둘이서 사진만 찍지 말고 연애하라요" 하기에 우리 두 사람은 같은 박씨로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게 무시기 말이냐"고 하고서는 "일없다"라고 하여서 함께 웃었다. "박 선생님, 통일되면 또 만납시다!"라는 북녘 사람들의 한결 같은 인사를 듣고는 객실로 돌아와서 눈을 붙였다.

애초의 일정은 평양 안산관에서 점심 식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출발 지연으로 호텔에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뒤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한 여성 회원이 고사리와 참깨를 사고는 품질도 좋고 값도 서울의 1/3도 안된다고 하여서 나도 두 봉지씩 샀다. 그리고 백두산 사진집도 한 권 샀다. 값싼 산채를 더 사고 싶었지만 짐이 짐스럽기 때문에 자제하였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아내는 물건 사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지만 내 조국 북녘에서 사가는 것은 아내가 굳이 탓하지 않으리라 싶었다. 북녘 상품을 많이 팔아주는 게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도와주는 일이다. 형편이 조금 나은 형제가 그렇지 못한 형제를 도와주는 게 마땅한 일이다. 몇 푼 집어주고는 '퍼준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것은 천박한 형제들의 못난 짓이다.

아무쪼록 남북경제협력이 활성화하여 중국 농산물 대신에 북녘의 값싼 무공해 농산물을 마음대로 사먹고 남쪽의 남아도는 쌀을 값싸게 판다면 그야말로 '남 좋고 북 좋은 일'이 아닐까?

14: 50. 베개봉호텔 복무원(종업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그곳을 떠나 삼지연 비행장에서 눈에 익은 고려항공에 올랐다.

15: 40. 활주로가 울퉁불퉁함에도 조종사는 이 길에 이력이 난듯 사뿐히 이륙, 평양으로 날았다. 승무원이 준 <로동신문>을 펼치자 머리기사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새로 건설된 현지 원산만 제염소를 현지 지도하시였다"로, 사흘 동안 본 로동신문의 머리기사는 하나 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정으로 전면을 채웠다.

목이 말라서 샘물을 청하였다. 승무원이 신덕샘물 생수 병을 주면서 "경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바쁘신 가운데도 친히 샘물 생산 과정을 돌보시고 인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라고 엄숙하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하기는 한때 우리도 '땡전' 뉴스에 식상하지 않았던가.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하였다.

옛 글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였다. 곧, 지나친 것이나 모자란 것은 다 같이 좋지 않다는 말로, 시시콜콜한 것조차에도 모두 다 갖다붙이면 정작 큰 것마저도 코메디가 되기 십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남쪽의 한 산골 서생의 정문일침을 달게 받으셔서 이 글을 보신 이후에는 소리 소문 없이 선정을 베풀어 인민들을 편케 해주십시오.

'흠모' 편 조각군상
'흠모' 편 조각군상 ⓒ 박도
'숙영' 편 조각군상
'숙영' 편 조각군상 ⓒ 박도
'진군' 편 조각군상
'진군' 편 조각군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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