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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알마시. 이 역을 소화한 랄프 파인즈는 이지적이면서 몹시 어두워보이는데 그런가 하면 열정적인 느낌과 잔인한 느낌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불륜은 범죄다. '간통죄'라는 게 있어서 이 죄의 망에 걸린 사람은 콩밥 좀 먹어야 하는데 당사자들은 억울할 것도 같다. 누군가를 사랑한 죄 밖에는 없는데 형사상 책임도 져야 하고,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또 얼마나 차가운가.

사랑 때문에 감옥도 가고, 사회로부터 추방당하고 정말 사랑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치고는 너무 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건 바로 '가족'이다. 그러니 나라를 잘못 태어났다고 하는 수밖에, 누굴 원망하겠는가.

광활한 사하라 사막과 함께 떠오르는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 또한 불륜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영화의 목적은 불륜을 윤리적 잣대로서 단죄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불륜을 가져왔다.

'불륜'이라는 사랑에 빠진 사람은 복수의 칼날을 피해야 하는 등 뭔가 대가를 치러야 할 게 꼭 있다. 어떤 사랑보다도 희생이 많은 사랑인데, 희생의 크기를 통해 사랑의 정도를 파악할 수가 있기에 위대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할 때 이보다 좋은 장치는 없는 것이다.

▲ <장밋빛 인생>에서 바람난 남편 역을 연기한 손현주.
ⓒ KBS
여기 이렇게 거창한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있다. <장밋빛 인생>의 반성문(손현주 분). 그의 사랑으로 인해 지옥에서 한 철을 보내고 있는 맹순이(최진실 분)를 생각해서는 돌팔매를 하고 싶지만 그의 사랑은 참으로 진지하다.

반성문은 새 여자와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아내에게 집도 재산도, 아이들에 대한 친권까지도 포기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뤄놓은 모든 걸 주겠다고 한다. 그에게는 오미자와의 사랑이 그런 것들, 경제적 사회적인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꽤 그럴듯한 사랑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사랑을 아름답다고도 진지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사랑에 동조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는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랑을 하고 있다.

"그년한테 뻑 가서 완전히 미쳤다. 사람이 눈빛이 달라졌다."

오히려 이렇게 그를 폄하하고, 그의 사랑을 모욕한다. 마약에 취한 것 마냥 여자한테 빠졌다는 식의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의 사랑에 대해서 '사랑' 자체로 보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고, 사랑을 아름다움이 아니라 추한 것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마약에 빠진 사람 취급하듯 제 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이다. 불륜에 빠진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환자 취급이고, 죄인 취급이다.

멀쩡하게 직장 잘 다니는 모범 사회인이더라도 사회에서 존경 받는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임자 있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고 죄인이 돼버리는 게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불륜에 빠진다는 건 사회적 퍼소나를 건 사랑이기에, 인생을 건 사랑이기에 어쩌면 용감하고도 위대한 사랑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는 그들의 사랑에 감동했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는, 우리 사회는 불륜에 대해 이중의 잣대를 갖고 있다. 임자 있는 여자를 사랑한 '영국인 환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반성문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가 반성문의 따귀라도 한 대 때리고 싶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는 불륜에 빠진 남녀 편이 돼 오히려 여자의 남편이 적으로 보였는데,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는 불륜남녀가 적이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걸까?

그 이유는 <잉글리쉬 페이션트>와 <장밋빛 인생>이 불륜이라는 동일한 소재로 출발했지만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불륜 또한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만들었기 때문에 관객 또한 감독의 그런 의도를 고스란히 느끼게 되면서 의도대로 그들의 사랑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장밋빛 인생>에서는 맹순의 입장에서 불륜을 바라보고 있다. 맹순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의 불륜 때문에 맹순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니까 그 '년놈들'의 사랑이 결코 좋아 보일 리가 없는 것이다. 불쾌하고 추하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한 가정을 파괴하는 암보다도 더 지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외국 영화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심리적으로 이미 '쟤네들은 결혼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미련 없이 가정을 떠나잖아. 사랑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족속들이니까' 하는 이해가 깔려있기에 또한 관대해질 수가 있다.

허나 <장밋빛 인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장하는 우리나라 드라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관습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불륜에 대해 단호한 우리 사회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강하게 지탱하고 있는 건 '사랑'이 아니라 '가족주의'이기 때문이다.

맹순은 우리 사회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대표하고 있다. 맹순을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화자로 택하고, 또 맹순이의 입장에서 사랑을 바라본다는 자체가 우리나라는 아직은 사랑에 대해서 제약이 많고, 가족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라는 걸 의미한다.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강한 지배를 받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에 국경이 있다. 가정을 위협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사회의 분위기다. 그래서 가족을 위협하는 불륜은 암적인 존재로서 '공공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드라마들이 '불륜'을 소재로 많이 택하고 '이혼과정'을 즐겨 그리기는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바람난 남자들은 가정으로 다시 귀환하고, 이혼을 했다가도 다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재건설한다.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남자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극이 끝난다. 종착점은 가정인 것이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한다고 봤을 때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가족을 중요시하고,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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