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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을 여행한다는 것은 우선 그 지역에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양을 여행하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먼저 양양으로 가는 길을 첫 번째로 소개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먼 옛적부터 백두대간 동쪽에 위치한 양양을 가기 위해서는 험준하면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계령을 넘어야 했다. 그러나 1400년대에 한계령 길이 너무 험하다는 이유로 폐쇄되고 새로이 미시령 길이 났다. 그 후 양양을 가기 위해서는 북으로는 미시령을 넘든가 남으로는 대관령을 넘어 강릉을 거쳐서 가야 했다.

도로교통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국 어디에서든 영동고속도로에 위치한 대관령 길을 넘는 것이 양양으로 가는 제일 빠른 길이다. 하지만 한계령, 구룡령을 넘어 보지 않고서는 양양을 제대로 여행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계령, 구룡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 보자.

나를 넘어야만 양양을 보고, 나를 지나야만 동해를 만나리
한계령寒溪嶺과 한계목漢溪沐


바람부는 날이면 한계령에 가야 한다. 한계령 설악루에 올라 동해와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을 굽어보며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을 나지막히 부르면서, 풍진 세상을 잊고 새들도 넘지 못한다는 한계령에서 구름조차 마음대로 몰고 다니는 자유로운 바람이 되어 보라.

눈이 오는 날에도 한계령에 가야 한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 ‘한계령의 한계에’ 묶여 한 평생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못 잊을 사람과 눈부시게 고립되어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까지 묶이길 간절히 염원해 보자. 폭설이 내리는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사랑하는 사람과의 ‘짧은 축복’을 영원한 운명으로 만들어 보자.

내륙지방과 양양을 잇는 한계령

백두대간은 옛날부터 강원도의 동서 교통에 큰 장애가 되어 영동과 영서의 문화, 풍속, 기후, 인심, 산수, 역사를 갈라 놓았다. 그러나 이 큰 산맥에도 곳곳에 말안장처럼 잘록한 곳이 있어 이 고개들로 그 동쪽 사람들과 그 서쪽 사람들이 넘나들었다. 령(嶺)이란 한자를 풀이하면 잇닿은 산의 능선을 뜻하며, 택리지에서는 “등마루 산줄기가 조금 나지막하고 평평한 곳을 말한다. 이런 곳에다 길을 내어 영 동쪽과 통한다”고 하였다. 이 고개들을 살펴보면 철령, 추치령, 오소령, 건봉령, 진부령, 대간령, 미시령, 한계령, 대관령들이다.

그 중 한계령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도로망이었던 서울에서 경기도 청평과 가평을 거쳐 강원도 춘천, 화천, 양구, 인제, 홍천을 도는 ‘춘주도’와 양양을 잇는 주요 고개이다. 양양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한계령, 구룡령을 넘거나,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들어오거나, 아니면 저 멀리 경상도 동해안에서부터 7번 국도를 따라 올라와야 한다.

양양으로 넘어가는 령중 첫 번째로 꼽히는 한계령을 넘기 위해서는 춘천, 홍천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와야 한다. 미시령 길과 한계령 길이 갈리는 인제 재내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자동차조차도 숨을 몰아쉬는 가파르고 꾸불꾸불한 한계령 길이 시작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한계령 정상에 도착하면 비로소 ‘산수가 천하의 으뜸(山水甲天下)’이라는 양양에 도착한 것이고, 한계령을 넘어야만 양양을 볼 수 있다.

한계령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높이가 1004m이다. 백두대간의 설악산(1708m)과 점봉산(點鳳山, 1424m)과의 안부(鞍部: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우묵한 곳)에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백두대간 강원도 지역의 이름난 령 여섯 개를 손꼽았다. 함경도와 강원도 경계의 "철령", 그 아래의 "추지령", 금강산의 "연수령", 설악산의 "오색령"(현재의 한계령)과 그 아래의 "대관령", "백봉령"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는 령이 바로 한계령이다.

한계령에 서서 보면 좌우로는 동해를 향해 내달리던 바위들이 멈추어 선 채 한계령을 둘러싸고 하늘을 치받듯 우뚝 솟아 있으며, 백두대간의 산줄기와 골 깊은 계곡들과 낮게 깔린 운해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풍경은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진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아, 한계령 정상은 참으로 장엄하였다. 어느 날에도 거기 으레 저 아래 두고 온 풍진 사바가 한낱 티끌처럼 사람의 정한을 추억하여 무엇하겠는가. 하늘도 땅도 때로는 저렇게 경계를 허물어 본래 세상의 모든 있음과 없음이 다 거짓임을 법문하는구나. 생각해 보면, ‘나’를 버리고 ‘너’를 따라 헤매던 날들 도무지 부질없어라. 이제 알았다고 ‘나’는 또 저 눈보라 속에 던져두고 빈 그림자 ‘너’를 따라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한계령아!” - 김하돈 시인의 글 중

강과 바다를 잇는 한계목(漢溪沐)

양양과 내륙을 잇는 곳으로 육지 쪽에서 양양지역이 시작되는 곳이 한계령이라면, 바다쪽으로 양양이 끝나는 곳이 한계목이다. 한계령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점봉산과 대청봉 남쪽 사면의 물을 모아 오색천이 되어 동해로 흘러 내린다. 구룡령(九龍嶺)에서에서 시작되는 서림천은 북쪽으로 흐르면서 서면의 갈천리·영덕리를 지나 공수전리에서 동북쪽으로 꺾여 상평리에 이르러 오색천(五色川)을 합류하고 북평리에서 남대천에 합류된다.

그 남대천이 끝나고 동해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한계목으로서, 한계목은 바로 남대천 하구 일대를 말한다. 옛 문헌에서는 황계목(黃溪沐)이라고도 하고 대포(大浦)라고도 하였다. 현재 한계목은 낙산과 오산을 연결하는 몇 년 전 새로 개통된 해안도로 다리 위에서 바라볼 수도 있으나, 바다와 강물이 평화롭게 화합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는 낙산해수욕장에서 남쪽을 향해 걸어가면 된다.

강물의 끝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며

이 곳 한계목에서, 강물은 골짜기와 들판을 지나고, 때로는 절벽을 만나 폭포가 되었던 유년 시절의 과거를 잊고 끝없이 너른 품을 지닌 바다를 만나 바닷물 속에 자신을 용해해 버리며 사라져간다. 백두대간의 험준한 계곡과 급경사진 땅을 굽이굽이 흘러 보다 낮은 곳으로 향해 온 강물이 푸르른 동해와 화합하는 광경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강물과 바다와 삶에 대한 일깨움을 준다.

높은 산에서 시작하였으나, 보다 낮은 곳으로 내달리던 강물은 한계목에서 더 이상의 질주를 멈추고 세상에서 가장 낮으며, 평화로운 물인 바다와 만나 폭넓은 시야를 열어나가고 있다. 또한, 우리는 한계목에서 인생의 노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유년기, 청·장년기를 험준한 계곡 속에서 보낸 강물이 노년에 이르러서는 바다와 만나 평화로움과 보다 폭넓은 시야를 얻듯 인생도 그러해야 되지 않겠는가. 이 곳, 한계목에서 강물의 끝과 바다의 시작을 바라보면서 강물이 바다에게 띄우는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덧붙이는 글 | 이철 기자는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25여년을 살았으며, 이 양양여행기는 25년의 삶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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