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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햇살이 너무 좋아 봄 소풍을 가기로 했다. 아내가 빨래를 너는 사이에 나는 그 전날 사 놓은 달랑무를 다듬었다. 임무가 뒤바뀐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지만, 잔손질 가는 일에는 내가 더 선수이니 그렇게 되었다. 더군다나 아내의 피부는 몹시 연약해 조금만 물일을 해도 손에 습진이 생겨서 물에 손 담그는 일은 대개가 내 차지다. 설거지를 내가 도맡아 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콧노래를 흥얼대며 빨래를 다 널고 들어온 아내는 내 옆에서 도시락을 쌌다. 맨밥에 반찬으로는 김치, 계란부침, 그리고 고추장. 배를 즐겁게 하려고 가는 소풍이 아니니, 점심 도시락에 공들일 이유가 없다. 물론 가끔씩은 공들여 김밥을 싸 가지고 가는 날도 있었지만 오늘은 눈요기를 더 많이 할 참으로 이렇게 간단히 도시락을 쌌다.

봄 소풍 갈 장소는 겨우내 가보지 못했던 망게망게로아 트랙(Mangemangeroa Track). 지난 여름, 아내와 내가 주말마다 다녀오곤 했던 산책길, 초원과 숲과 해변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바로 그곳이다. 무릎 높이까지 자라났던 초원의 풀들은 누군가 그 사이에 깎아주었는지, 아니면 풀어놓은 양떼들과 소떼들이 먹어치웠는지, 제법 자란 풀조차도 키가 한 뼘도 안 되는 것이 마치 잔디밭 같다.

ⓒ 정철용
숲으로 들어서니 겨울비에 휩쓸려 나간 트랙이 한두 군데 보이긴 해도 내딛는 우리의 발자국을 여전히 정답게 맞아준다. 으슥한 그늘 아래에는 고사리나무(fern tree)가 봄기운을 받아 둥글게 감아쥐고 있던 새순을 막 펼치고 있다.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그런가하면 터진 틈으로 햇빛이 눈부시게 비추는 숲의 우듬지 부근에서는 우리의 앞길을 먼저 날아가며 지저귀는 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그들이 새된 목소리로 서로 긴급하게 주고받는 소리들은 분명 경보음일 테지만 우리에게는 그게 모두 노래 소리로 들린다.

마침내 새 한 마리가 아내의 눈길에 들킨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아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보니 과연 새 한 마리가 잎새 무성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뭐라고 한참 지껄이고 있다. 부리 아래쪽 목 부근에 하얀 솜방울이 달려 있다.

아, 투이(tui)다. 뉴질랜드 토종 텃새의 하나인 투이는 각각 뚜렷이 구별되는 다채로운 노래 소리로 유명하다. 그 소리 중에는 은방울이 굴러가는 듯 맑게 울리는 소리도 있다. 가만히 올려다보니, 그 맑은 소리를 낼 때마다 목 아래쪽에 매달린 하얀 솜방울이 흔들리는 듯하다. 그럼 저 흰 방울에서 나오는 소리인가.

ⓒ 정철용
궁금한 마음을 돌려세우고 우리는 다시 숲길을 걸어간다. 드디어 해변에 도착. 썰물이어서 갯벌이 드러난 바다에는 배 몇 척이 떠 있다. 햇볕은 따스해도 바람이 제법 불어서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으니 서늘하다.

잠시 앉아서 아무도 없는 바닷가의 고요한 풍경을 감상한다. 내 배꼽시계가 정오가 지난 지 벌써 한참 되었다고 신호를 보낸다. 배낭을 열어 도시락을 꺼낸다. 맨밥에 김치, 계란부침, 그리고 고추장. 하지만 누룽지가 조금 섞여 있는 맨밥에 고추장을 비벼 그 위에 척 얹어 먹는 김치 맛이 꿀맛이다. 눈으로 보고 있는 바다 풍경도 함께 반찬으로 먹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점심을 다 먹고 나니 한기가 느껴진다. 그늘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보온병에 타 온 커피는 저쪽 모래 언덕 위에 있는 나무벤치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마시기로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게도 자주 이곳에 왔었는데도 그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늘 뜨거운 햇빛을 피해 바닷가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고 커피를 마셨으니까. 우리는 벤치에 가서 앉는다. 아내가 따라 준 커피를 마시면서 내 눈은 나무벤치의 등받이 가운데에 부착된 명판을 읽는다.

이안 덩컨 그란트를 추억하며.
61년 9월 19일 - 97년 10월 19일
"그는 바다로 가버렸다…"


ⓒ 정철용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봄 바다로 나아가 그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못한 이안이 마지막으로 출항했던 곳이 바로 이 바닷가였던 모양이다. 그를 추모하는 나무 벤치를 이 자리에 세워 둔 이는 그의 어머니일까, 아니면 그의 아내일까.

명판에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이 그저 그의 이름 석자와 그가 살아온 날들을 보여주는 숫자들과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에 대한 짤막한 기록만 새겨져 있다. 하지만 단지 세 개의 점으로 찍혀져 있는 저 말줄임표에는 사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담겨져 있는 것인가. 차마 말해지지 못한 그 많은 말들이 문득 아우성이 되어, 흐느낌이 되어 들려오는 듯 해서 나는 가슴이 아려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니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바닷가를 찾아 이 나무벤치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이가 분명 있으리라. 지난 여름, 가끔씩 그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그 노부부가 바로 그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 정철용
아내와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소풍 삼아 오는 이 바닷가에 죽은 아들을, 죽은 남편을 추모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지만 그들은 그렇게 해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리라. 중국의 사상가 루쉰(魯迅)은 말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마음속에 묻히지 않을 때 그는 참으로 죽고 만다'고.

그렇다. 죽은 자에게 있어 죽음보다도 더한 것은 잊혀지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안은 얼마나 행복한 사내인가. 그가 살아있을 때 전혀 마주친 적이 없는 낯선 이방인인 아내와 나까지도 이제 그의 이름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으니 말이다.

36살에 바다로 봄 소풍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안은 그가 출항했던 그곳으로 이제 매일 돌아온다. 몸은 돌아오지 못하지만 그 영혼은 햇살이 되어, 구름이 되어, 바람이 되어, 그리고 파도가 되어 돌아온다.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나무벤치에 한동안 앉아 있다가 우리는 일어섰다. 바닷가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우리의 발자국을 허물며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의 봄 소풍이 끝난 자리에 이안이 타고 나갔던 작은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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