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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도 근사한 '청평리'를 찾아 떠나는 길은 또한 여름의 풍광을 만끽하는 여정이었다. 춘천시내에서 샘밭을 거쳐 소양댐에 오르자 각지의 산하에서 모인 물들이 말없이 뒤척이고 있다. 올망졸망하게 늘어진 가게에서는 하나같이 나물과 뿌리, 약초, 골뱅이 등속을 펼쳐놓고 호객을 할 듯 말 듯한 모습으로 앉아 만성화된 경기불황을 표시하고 있었다.

소를 타고온 사내가 내렸다는 곳, 청평사 쪽으로 올라가다보니 그림자 연못이라는 영지가 누워 멀리 오봉산 위로 흩어지는 구름을 비추이고 있다. 20여분, 느린 걸음으로 걷기에 알맞은 숲길에는 매미들이 막바지 오도송을 불러 젖히고, 그 밑으론 다정한 젊은 남녀들의 소곤소곤한 법렬지사가 한창이었다. 지금은 오봉산 배후령을 거쳐 들어오는 육로도 뚫렸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소양댐을 거쳐 배를 타고 들어오는 예전의 코스를 택하고 있다.

▲ 청평사 가는 길
ⓒ 최삼경
이 소설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어쩐지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전설을 접한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여관에서 새벽녘에 들은 것 같던 뿔피리 소리나 푸른 안개처럼, 그래서 주인공의 가슴팍에 대고 비벼대는 소를 닮은 그녀의 귀와 눈을 바라보는 장면은 작금의 디지털 사이버 시대에 와서도 감당키 어려울 정도이다.

윤대녕의 작법 자체가 현재와 과거, 실재와 상상,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중첩되고 불투명한 '혼돈'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소설에서는 '소와 법당, 여관, 길 떠남'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소는, 법당은 어떤 의미일까. 일찍이 소는 선가에서 자신의 본래면목을 의미하는 것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본당(本堂) 외벽에는 주로 팔상도(八相圖)와 십우도(十牛圖)가 그려진다. 이는 팔상도가 가지는 교화적 가르침과 십우도가 일깨우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下化衆生)'는 조형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청평사 대웅전 뒤편에 놓인 경내의 극락보전에도 십우도가 그려져 있다.

말하자면, 십우도는 자신의 진면목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는 심우(尋牛)단계에서 출발하여, 수행하고 정진하여 비로소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 우주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고, 거기서 오는 깨달음으로 탐욕, 진에, 우치의 삼독을 해소하여 일체의 무명(無明)을 깨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 극락보전에 그려진 십우도
ⓒ 최삼경

"헌데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디 그렇게 쉽게 찾아지는 건가요. 그건 아주 멀리 존재하는 혹성 같은 걸 겁니다."

그렇다면, 소설에서처럼 소가 여관으로 들어온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여관은 여행 도중에 나그네에게 일시적인 집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그네에게 집, 고향은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일까. 그것은 나 자신이 비롯된 근원을 말한다. 고향집에 이르렀음은 현상적인 삶과 나 자신의 근원(本覺無爲)이 서로 만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소가 여관으로 들어온다는 의미는 본원적 존재인 '소(나)'가 꼬치에서 깨어나 듯, 비로소 현실의 산재한 고통과 그 아픔의 허상을 알아차리라는 권유가 아닐 것인가?

어쨌든 길을 나선 나그네에게 여관은, 구도자에게 법당이 주는 의미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우스운 얘기지만 어렸을 땐 늘 여관에 가보고 싶어 했어요. 나그네의 집이란 말이 좋았어요. 먼 길을 가다 지친 나그네가 홀로 누워 쉴 수 있는 그런 집말이죠"라는 작 중 여인의 말에 주억거리며, 주인공은 한 여인과 함께 여관을 찾아 들어오는 소를 맞는다.

무언지 결핍되고 애잔한 가운데 자신의 정체를 찾는 길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들, 윤대녕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공통으로 겪는 증상이기도 하다. 서양의 분석방법으로 보자면, '모든 현상은 가상'이라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철학적 맥락이나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선택의 문제로 축약했던 실존주의와도 연결지을 수 있지만, 그 표현방식이나 귀결점은 지극히 동양적이다.

▲ 청평사와 오봉산
ⓒ 최삼경
청평사는 천년고찰로 특히 회전문이 유명하다. 이 회전문(廻轉門)은 조선 명종 때 중건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건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당나라 평양공주 몸에 감긴 상사뱀을 이곳에서 가사불사의 공덕으로 떼게 되었는데, 상사뱀이 공주를 찾아 절 안으로 들어가다 뇌성벽력을 맞고 쏟아지는 소나기에 밀려 이 문을 돌아나갔다고 하여, 그때부터 회전문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 이자현이 조성했다는 우리나라 공원의 효시인 고려정원과 구성폭포, 공주탕 등이 불어난 계곡물과 함께 잘 어우러지는 청평사는 예로부터 거사(居士)불교가 유달리 빛을 발했던 곳이기도 하다. 멀리는 진락공 이자현이나 매월당 김시습 등이 머물렀으며, 지금도 승려신분이 아닌 구도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자면, 작가 윤대녕이 이곳 청평사에 와서 여관과 소에 대한 물음을 던진 것이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금에 와서야 여관의 본래적 기능이나 뜻이 희한한 형태로 변질되었다지만, 일반인들이 일상 속에서 부단한 정진의 길을 걷기는 또 그만큼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할 때, 떠돌이 객승에게 열린 법당이 반갑고 고맙듯, 길 떠난 나그네에게 여관은 얼마나 미더운 존재이랴. 소양댐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바라본 푸르고 평평한 청평리 물밑 속으로 언뜻 무리지어 가는 한 떼의 소가 보이는 듯하였다.

▲ 소양호 전경
ⓒ 최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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