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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가 붉은 것으로 세 개 잘라왔습니다. 낫이 없을 땐 뿌리와 닭발을 끊느라 애를 먹었지요.
줄기가 붉은 것으로 세 개 잘라왔습니다. 낫이 없을 땐 뿌리와 닭발을 끊느라 애를 먹었지요. ⓒ 김규환
'긍내기'라 했던 차일봉(해발 약 590여m) 투구바위 '극락' 골짜기 밭까지는 오리가 조금 넘었다. 2km 내내 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좁다란 오르막길이다. 내를 건너기를 네 번은 해야 하고 산자락을 두 번이나 넘어서야 겨우 도착한다.

가까운 밭이 없던 우리 집은 선산 묘지 부근을 일궈 다랭이 논 다섯 배미(배미는 한 계단식 논이나 밭 한 다랑이를 말한다. 열 평도 안 되는 다랑이가 있었다. 마지기는 대체로 밭은 300평, 논은 200평이니 면적 단위다)를 만들었지만 높은 위 논두렁에서 아래 둑까지 뛸 수 있도록 좁았다. 물이 어찌나 차갑던지 벼가 익지 않은 해가 절반은 되었다. 벼가 누렇게 잘 익으면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나락 짐을 지고 오르내리던 험난한 추억이 묻어 있다.

밭은 내 기억이 있기 전 두 배미가 이미 있었고 예닐곱 되던 초봄 화전(火田)을 하여 한 배미를 함께 일궜다. 총 세 배미가 500평쯤 되었다. 산 속에 있던 밭이라 황토밭이었다.

목화꽃이 이보다 조금 덜 피었을 때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솜다래 추억.
목화꽃이 이보다 조금 덜 피었을 때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솜다래 추억. ⓒ 김규환
목화가 심어져 지금쯤이면 노오란 꽃이 피었다. 그러면 솜다래를 어머니 몰래 따먹었는데 초겨울엔 하얀 면화 꽃이 피어 장관이었다. 한쪽 새로 만든 밭은 고구마 밭이었는데 첫해엔 어찌나 잘 되었던지 짚 가마니에 12가마를 캤던 일도 있다.

철따라 감자, 수수, 옥수수, 오이, 콩, 참깨와 고추, 검정깨, 들깨, 조, 열무, 배추, 상추, 가지 등이 종류별로 있어 집에서 먹어 볼 수 있는 채소와 푸성귀는 거의 조달하였다. 어머니와 아버지, 어린 우리는 겨울엔 나뭇짐을 지고 다니고 봄부터 늦가을까지는 지게에 퇴비와 풋나무, 벌초, 호박덩이, 고구마와 온갖 밭곡식을 나르기 위해 이틀이 멀다 하고 다니던 곳이다.

방학 때는 매일 같이 살았다고 하는 게 맞으리라. 밭 가 조그만 폭포 근처에 솥단지와 밥그릇을 두고 다녔다. 된장과 고춧가루, 소금만 챙겨 가져간 밥에 물고기 몇 마리 잡고 가재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 먹는 게 점심이었다. 때론 풋고추 하나에 물 말아 밥을 먹고 깻잎으로 쌈을 싸먹기도 했다.

옥수수 여름철 맛있고 멋진 추억

제 고향에서 먹던 재래종 옥수수와 강원도 찰옥수수인데 옥수수는 강냉이와 같은 말입니다. 튀긴 것을 강냉이로 아는 분들이 있어서요.
제 고향에서 먹던 재래종 옥수수와 강원도 찰옥수수인데 옥수수는 강냉이와 같은 말입니다. 튀긴 것을 강냉이로 아는 분들이 있어서요. ⓒ 김규환
옥수수는 한꺼번에 심지 않았다. 작물이 심어진 밭 가장자리를 따라 울타리를 두르듯 돌렸고 서너 번에 나눠 심어 초복 때 한번 먹고 말복쯤에 두 번째 먹고 세 번째는 추석 때 차례상에 올리기도 했다. 늦은 수확을 위해서는 감자 캘 때나 심었던 것으로 안다.

수숫대는 왜 저리 붉을까요? 옥수수보다 작지만 훨씬 답니다.
수숫대는 왜 저리 붉을까요? 옥수수보다 작지만 훨씬 답니다. ⓒ 김규환
여름엔 밭에서 일하는 동안 어린 나는 먼저 손을 씻고 '깡냉이' 옥수수를 삶아 일을 간 식구들이 밥 대신 먹도록 불을 몇 번이나 땠는지 모른다. 찰옥수수 강냉이를 삶으면 밥알이 어찌나 차지고 달던지 한 알 한 알 소중히 따먹었다. 그리 크지도 않지만 색깔이 자주빛에 가까운 시커먼 옥수수는 더 알찼다.

옥수수 알갱이를 다 빼먹고는 아쉬워서 빈 옥수수 이삭축(軸)을 쭉쭉 빨면 단물이 쏙쏙 빠졌다. 어찌나 달짝지근했던가. 그도 모자라 양손으로 잡고 하모니카를 불 듯 움직이다가 알갱이가 박혀 있던 이빨 뿌리까지 빼먹었다.

딱딱하게 굳기 전 껍질을 까면 젖빛 뜨물이 흐르는 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밥으로도 훌륭했다. 알갱이에서 이 사이에 끼어 귀찮기도 하고 손톱을 몇 번이나 넣어 빼야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오롯이 물컹거려 보리밥도도 부드럽게 넘어갔다.

옥수수 발이 실한 것일수록 단단하고 열매도 큽니다. 한번 쓰러진 경력이 있으면 더 무성하게 뻗지요. 마치 닭발 같습니다.
옥수수 발이 실한 것일수록 단단하고 열매도 큽니다. 한번 쓰러진 경력이 있으면 더 무성하게 뻗지요. 마치 닭발 같습니다. ⓒ 김규환
형제자매들끼리 별이 쏟아지던 밤 대나무 평상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먹는 옥수수는 환상이었다.

첫물이 끝나고 두 번째로 접어들면 언제인가 모르게 쉬 익어 딱딱해지고 마는 게 옥수수다. 딱딱한 건 아이들에게마저 환영 받지 못한 천덕꾸러기였다. 말려서 할당량을 주니 알을 따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걸로는 딱 두 번 맛난 잔치를 한다. 음력 7월 보름 백중 땐 어머니가 누런 옥수수빵을 만들어 주셨고 겨울철엔 튀밥을 튀겨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주전부리 구실을 할 뿐이었다. 비록 허망한 일이었지만 마른 껍질을 까서 초가집 처마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소박한 아름다움만은 결코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살모사, 아이 그리고 첫물 옥수숫대는 속이 비어 있지

암꽃과 수꽃이 바람에 수분을 하여 이빨 빠진 듯 섞여도 맛만 좋습니다.
암꽃과 수꽃이 바람에 수분을 하여 이빨 빠진 듯 섞여도 맛만 좋습니다. ⓒ 김규환
살모사(殺母蛇)나 사람 자식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양분을 먹고 산다. 시쳇말로 단물까지 자양분을 쏙 빼먹는다. 살모사는 알(卵)이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어미 뱀 몸속에 있다가 부화한 후 어미 살을 뜯어 먹고 자란 뒤 밖으로 나온다는 속설까지 있다.

사람은 장장 283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어미 뱃속에서 일반 영양분 중 뼈에 주로 있는 칼슘을 거의 가져가니 출산 후 어머니 이(齒)가 흔들리거나 빠지는 경우도 있으니 어미와 자식간 일방적인 관계로만 따지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불효의 근원일 지도 모르겠다.

살모사와 사람을 닮은 게 있다. 다름 아닌 옥수수 뼈대가 그렇다. 옥수숫대는 수꽃이 이틀 가량 먼저 피고 암꽃이 피어 바람에 타가수정을 한 후 치열이 고르게 또는 불규칙하게 나열되고 나서 뜨물이 들고 차차 익어간다. 한 그루에서 한 개뿐만 아니라 최대 대여섯 개까지 달린다.

굵어 보일수록 옥수수 열매가 대 속 단단한 조직에 있는 양분을 죄다 가져가므로 우리가 즐겁게 입이 궁금한 걸 달래고 있는 동안 텅텅 비어 스펀지나 속빈 강정, 공갈빵처럼 허접하게 바뀌어도 사람들은 모르고 알맹이만 따먹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굳이 내가 혈안이라고 한 나름의 이유다.

옥수수를 몇 번 먹기도 전에 금방 끝물로 접어든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아침저녁으론 새로운 계절감을 느끼면 옥수수 수꽃이 말라비틀어지고 어깨에 처량히 붙어 있는 알맹이는 바람에 "자각자각" 소리를 내며 따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초라한 모습 보이기 싫은가 보다.

수수깡, 옥수수깡 단맛 즐기다 입술도 베었지만 설탕물이었어

1차로 심은 옥수숫대가 말라 비틀어지고 있습니다. 수분도 적고 푸석푸석하여 먹어 봐야 별 맛이 나지 않습니다.
1차로 심은 옥수숫대가 말라 비틀어지고 있습니다. 수분도 적고 푸석푸석하여 먹어 봐야 별 맛이 나지 않습니다. ⓒ 김규환
맛있는 옥수숫대. 껍질이 선명하게 붉을수록 달콤합니다.
맛있는 옥수숫대. 껍질이 선명하게 붉을수록 달콤합니다. ⓒ 김규환
30년 전 어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게 무얼까? 짐작해 보면 쉽게 알아맞힐 수 있다. 단 것이다. 단맛에 대한 집요한 집착! 달다 못해 쓴맛이 강한 사카린을 물에 녹여 먹고 겨울엔 산죽(山竹) 마디 하나 꽂아 장독대 위에 얼려서 하드로 먹었다.

그뿐이 아니다. 조리를 절다가 조릿대 고동을 빨아도 보고 보리피리 만들며 달달한 맛을 음미할 지경이었다. 설탕 구경하기 힘들었으니 미원(味元) 덩어리를 손가락으로 찍어 대고는 얼마나 어머니께 혼쭐이 났는지 모른다.

밭에 가면 사탕이 있었다. 사탕수수에 버금가는 단수수가 단연 으뜸이다. '단쭈시'라 불렀던 찰수수는 외피를 벗기고 대를 보면 어찌나 단 맛이 많이 함유되어 있던지 포도 껍질에 붙은 당분마냥 하얀 분이 칠해져 있다. 설탕 성분이 밖으로까지 삐져나온 것이다.

속껍질을 벗기지도 않고 질겅질겅 깨물어 먹으면 단물이 쏙쏙 빠져 나와 혀에서 다 거두지 못하고 침이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안타까운 현장에 내가 주인공이었다. 다 씹고 나서 뼈대만 남은 수수깡을 획 던져 버리면 끝이었다.

반면 철 지난 옥수수 첫물은 허우대만 두툼할 뿐 단물이 거의 없다. 씹는 기분도 영 아니다. 스티로폼처럼 푸석푸석하기까지 하니 옥수수가 서 있으면 몇 개가 달렸는지, 색깔은 어떤 색인지를 구별한다. 1개 이상 달렸으면 속은 텅텅 비었을 것이고 선명하게 붉지 않으면 헛물을 캔 것이다. 옥수숫대 맨 아래 닭발처럼 생긴 부분이 실한 것을 보고도 판단하였다.

먹는 순서를 대강 모아 봤습니다. 바닥에 깍다구와 섬유질이 무성하게 깔렸답니다. 오늘 아침에도 입술을 베었답니다.
먹는 순서를 대강 모아 봤습니다. 바닥에 깍다구와 섬유질이 무성하게 깔렸답니다. 오늘 아침에도 입술을 베었답니다. ⓒ 김규환
두리번 두리번 망을 보면서 밭두렁 풀을 베는 척 하다가 "착!" 소리가 나도록 쳐서는 들키지 않으려고 풀섶에 깔고 웅크려 앉는다. 윗대가리를 한 번 더 자르고 다급하게 붉은 피가 마른 겉껍질을 벗겨낸다.

쫙쫙 벗겨지면 성급하게 입으로 가져가 이로 물어 한쪽 단단한 속껍질을 벗기면 벼락 칠 때 하늘이 두 쪽이나 나듯 "쫘아악~"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알차다는 증거다. 몇 번을 더 물어뜯으면 하얀 속살이 배시시 웃고 있다. 벌써 코끝에도 단맛이 풍겼다.

톡 잘라 한입 베물고 씹으면 달달한 맛이 가득 했다. 내가 좋아하던 방아깨비도 보였지만 관심 밖이었다. 입을 비틀어가며 두 번째 날카로운 껍질과 속살을 한 입 베어 무는 찰나! 아이쿠나! 그만 입술이 칼날이 스치고 지나듯 쭉 훑고 지나갔다. 빨간 피가 입술에 묻었다

며칠 뒤, 철 지난 옥수수 대를 베어와 껍질로 테를 속살로는 알을 만들어 안경처럼 쓰고 다니고 물레방아를 만들어 물꼬에 내려 놓고 즐겁게 놀았다. 어서 수수가 익어야 송이째 푹 삶아서 먹어 보고 사탕 덩어리를 씹어보는 건데….

솔강이도 옥수숫대를 아주 맛있다고 잘 먹습니다. 해강이에겐 안경을 만들어 줘야겠네요.
솔강이도 옥수숫대를 아주 맛있다고 잘 먹습니다. 해강이에겐 안경을 만들어 줘야겠네요.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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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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