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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겉그림 ⓒ 샘터
지난 30여 년 동안 서울의 골목 안 풍경을 담아내온 사진작가 김기찬의 사진 에세이집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이다. 꽃과 동물, 사람들, 지붕과 기와, 담장과 벽, 그늘과 적막, 이렇듯 다섯 개의 주제로 되어 있는 사진에 시인 황인숙이 시선을 보탰다.

황인숙을 '4無 4有 시인'이라고 부른다. 집과 돈이 없고 남편과 아이가 없어 4無요, 시와 친구가 있고 무소유의 정신과 베풂의 미덕이 있어 4有다.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40대 독신이다. 걷기를 좋아해 남산 근처에 20분짜리부터 3시간짜리까지 산책 코스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발견하는 시시콜콜한 일상들은 그녀의 수첩 속에 고스란히 들어간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서정적이고 정감있다.

지붕과 기와

아파트에는 지붕이 없다. 호화롭든 남루하든 지붕없이 사는 사람들이 서울에는 얼마나 많은가? 불쌍한. 지붕없는 사람들.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머리 속을 헹궈 보지 못하는 사람들. 지붕이 없으니까 처마도 없으니까 차양도 벽에 대고 쳐야 되는 사람들. - 본문 중에서


김기찬이란 이름 앞에는 '골목 안 풍경'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66년에 처음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 36년간 그의 관심은 늘 서민들 삶에 있었다. 요즘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담긴 책들이 많이 나온다. 이 사진 에세이집도 그런 그리움이 있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추억을 기억하고 후에 그 시절과 만나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칼릴 지브란이란 사람은 '추억은 일종의 만남이다'라고 했다. 김기찬, 그가 담아낸 사진들은 도시엔 없을 것 같은 풍경이지만 분명 도시의 모습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진들은 흑백이 아닌 컬러로 되어있어 바랜 것 같던 골목 풍경이 화려하게 살아났다.

할머니 두 분이 춤추시는 장면, 비오는 날 반쯤 접어진 까만 우산을 들고 있는 사내아이, 난간에 기대어 무엇인가 회상하는 할아버지, 떡볶이를 먹는 세 명의 아이, 한 여자아이가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르는 뒷모습 등 사진 속 사람들은 가난하다. 그러나 그들 표정은 가난하지가 않다. 좋은 표정만 담아내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지만 작가는 결정적 순간이 아니라 그저 일상적인 사진을 찍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찾은 골목은 중림동 골목이었다. 작가는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취재와 촬영 여행들이 "내 어린 날의 추억을 되뇌어 보려는 심사였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사진작가 김기찬은 주로 산동네, 달동네라 불리던 서울의 동네들을 오랫동안 찍어 왔다. 그 덕분에 우린 이제는 사라져 버린 추억 속에서만 머물고 있던 그 골목들을 볼 수 있다. 고층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유비쿼터스니 뭐니 하는 더 편리함을 찾는 세상 속에서 그의 사진들은 편리하지도 빠르지도 않다.

골목길이 고향 같다며 우리 시대의 정겨움을 기록한 그가 지난 27일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은 가도 사진은 남는다. 그래서 사진은 위대하다. 그 사진을 남긴 사람도 위대하다. 김기찬의 사진엔 소리가 있다. 아이들 재잘거림이, 개들이 늘어지게 하품하는 소리가 있다. 우리가 언젠가는 가야할 그 길에서도 그는 골목길을 찾고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사진작가 김기찬

  1938년에 태어났다. 동양방송 영상제작부장과 KBS 영상제작국 제작1부장 등을 역임했고 골목, 달동네,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왔다. 2002년 제3회 이명동 사진상, 2003년 사진집 <역전풍경>(눈빛 발행)으로 제34회 백상출판문화상 사진부문 출판상, 2004년 동강사진상 국내작가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 <골목안 풍경> 시리즈, <개가 있는 따뜻한 풍경>, <역전 풍경> 등 11권의 사진집을 냈다.  
 
  시인 황인숙

  1958년 태어났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면서 등단. 시집으로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산문집 <나는 고독하다> <인숙만필> 사진에세이 <나 어렸을 적에> 등이 있다. 1999년 제12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서문학상 

  문학적 성과가 높이 인정되는 좋은 작품을 가려 매년 시상한다. 심사대상은 전년도 6월부터 해당연도 5월말까지 출간된 시집, 창작집, 또는 장편소설이다. 시상식은 10월 중에 가진다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김기찬 사진, 황인숙 글, 샘터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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