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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작열하는 백일홍을 가슴에 보듬고 여름이 갔다. 물기도 머금고 떠나갔다. 붉은 건 빠트림 없이 가져갔다. 노랗게 익어가는 것마저 작별을 고했다.
연분홍 메꽃이 짙어지면 얼마나 짙어지겠는가. 산자락 털부처꽃 지면 집 앞 울타리엔 넝쿨째 오르겠구나.
대체 얼마나 굵은 서해 천일염 바가지로 퍼부었길래 모양마저 아다지 각 지게 생겼는가.
비가 그쳤다. 하늘이 열렸다. 파랗다 못해 쪽빛 바다를 닮은 하늘이 기지개를 켰다. 바닥에 있는 층꽃마저 보랏빛 하늘을 빼닮았다.
호박이 누렇게 익고 벼가 숙여도 꽃은 더 찬란하게 보란 듯 보랏빛이다. 아욱꽃도 이렇게 피었다. 개승마도 가을에 적응한다. 두메부추는 세상을 향해 골고루 관심을 쏟는다.
꿀풀 몇 개 남아 있으면 사루비아마냥 몇 개 입에 가져가면 늦여름이 아쉬워도 달콤하다.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던 맥문동도 시린 이슬을 받아 차갑다 한다. 나팔꽃도 저리 피었는가. 서풍이 좋다지만 이리 빨리 가을 문턱을 넘다간 곧 겨울이겠네. 비비추 보잘것없더니만 꽃망울은 이렇게 크고 탐스러운가.
장독대 봉숭아보다 더 서러운 물봉선화 올 가을엔 꼭 소원성취 하라. 아니 오거든 칡넝쿨로 꽁꽁 묶어서라도 데리고 와 칡꽃 술 한 잔 대접하면 겨우내 연기 한 점 나지 않는 싸리나무를 때리라.
범나비 막바지 꿀을 따느라 바쁘다. 가을걷이 할 것이 얼마나 될까. 하늘 뭉개구름에 덮힌 세월이 차마 견디지 못하고는 화려한 옷을 벗어 가을빛마저도 옅어지려 한다. 끝내 겨울이 시작되면 꽃은 나를 위해 따뜻한 노란 이불 덮어주겠지.
취꽃 느긋하게 피어 가슴을 싸하게 어루만지매 모두 국화라. 술 담가 차 다려 온기를 더하자꾸나.
아이구나! 나 몰라라. 화려한 꽃 하나 없이 후련하네. 쳐다보기 아쉬워 눈에 박아 두리라. 멀어져 가는 여름 이젠 잊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