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겉표지
겉표지 ⓒ 당대
인간이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히기 쉬운 존재인가. 특히 홍수와 같은 무차별적인 언론공작에 빠지면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네모를 갖고 세모라고 계속 우긴다면 필히 인간은 고민에 빠지고 만다. 정말 세모인가 하고.

마르크스는 어떠한가? 마르크스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단어들을 연상케 한다. 공산주의의 이론을 창조하고 자본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혈안이 됐던 인물, 즉 빨갱이 중의 빨갱이로 통하는 것이다. 과거도 그러했지만 오늘도 '마르크스주의자'라는 평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좋아하는 이가 없다. 몸서리 칠 것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이제껏 등장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비판했다면 어떨 것인가? 또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외쳤다면 어떨까? 이것은 자기 부정처럼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자기 부정이 아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편견을 타파하기 위함이며 타인의 왜곡을 정정하기 위함이다. 또한 진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에선 마르크스가 뉴욕에 나타난다. 마르크스가 스스로 본모습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또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면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선동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1시간 동안 지상에 내려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1시간 동안 마르크스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내를 말한다. 그리고 딸을 말한다. 자식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말하고 살아남은 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말한다. 그리고 친구들을 이야기하고 책까지 전당포에 맡겨야했던 사연 등을 회고하며 자신이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를 알려준다.

이러한 대목들은 일종의 감성을 건드린다. 마르크스가 친구와 논쟁을 벌이다가 상스러운 말을 하며 싸웠다는 대목이나 자신의 딸을 대견스럽게 말하는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다. 뭐랄까,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 지은이는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에서 마르크스의 본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는데 생각해보면 본모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친구인 마르크스의 모습이다. 누가 과연 마르크스를 아버지로, 남편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가. 지은이는 마르크스가 빨간 뿔을 달고 있는 괴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언론이 앞장 서 만든 맹목적인 편견에 대한 일차 도전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근본적인 것을 바꿀 수 없다. 감성은 감성으로 끝날 뿐이다. 근본적인 도전은 이성으로만 가능하다. 그럼 이것을 위해 지은이는 어떤 수를 두고 있는가? 아주 짧다. 자기 부정처럼 보이는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분노한다. 자본주의가 그 동안 자신이 죽었다고 선언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도 자신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로 돌아온 마르크스는 여전히 분노해 외친다.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린 노숙자와 쓰레기와 악취 냄새가 진동하는 도시의 거리를 보면서 과연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자신이 예언했던 내용을 그대로 보여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는 또 외친다. 동료 혁명가를 살해하는 암살자가 통치하는 체제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동정심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계발'하는 것 또한 억압하면서 자신이 평생 몸 바쳐 일했던 공산주의의 목표를 깡그리 짓밟는 그것을 두고 어찌 공산주의라고 하느냐고!

그렇다면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궁금증이 생긴다. 그동안 망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마르크스가 말했던 사회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마르크스가 꿈꾸는 사회인가 하는 궁금증 말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회를 꿈꿨던 것일까?

"그렇지만 파리 코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정치기구였죠. 파리 코뮌에서는 법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부채를 탕감하고, 집세의 지불을 유예하고, 전당포들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되돌려주게 했습니다. 코뮌 사람들은 노동자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빵 굽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도 줄이고, 누구나 극장에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도 계획했지요." '본문'중에서

마르크스가 꿈꾼 사회는 책에 따르면 '파리 코뮌', 그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기구가 존재했고, 당시로는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놀랍게도 여성 교육을 언급했으며, 성공하라고 가르치는 학교가 아닌 정의를 알려주는, 아이들에게 자기와 똑같은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던 학교가 있었던,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졌던 코뮌이 바로 그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파리 코뮌을 보라고 외치는 마르크스가 등장한 역사모노드라마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는 참으로 흥미로운 책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메카 뉴욕에 갔다는 설정만으로도 흥미롭고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딸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는 사실로도 관심을 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재구성되고 재구성되었던 마르크스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인류 역사상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이라고 알려진 그를 이 책을 통해 부담 없이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또한 그가 말하고자 했던 생각들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게 됐다. 흥미로움을 넘어 유익함까지 갖췄으니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마르스크가 뉴욕에 가서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보자. 세상이 만든 편견에 갇힌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당대(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