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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전 의원.
추미애 전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이 1년5개월만에 말문을 열었다.

그는 탄핵 민심을 돌리기 위해 삼보일배로 온몸을 던졌지만 자신의 지역구에서조차 외면당한 뒤 6월 홀연히 미국행을 선택했고, 간간히 북핵 문제에 관한 견해를 피력해왔을 뿐 정치에 대해선 긴 묵언의 시간을 보냈다. 참여정부의 입각 제의로 잠시 그의 정계복귀가 점쳐지기도 했으나 마음을 비우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그런 추 의원이 지난 16일 잠시 고국 땅을 밟았다. "집안 일로 귀국했다"는 추 의원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선지 지인들에게도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DJ에게 인사는 빼놓지 않았다. 그는 지난 27일 오후 동교동 사저에서 1시간 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독대하며 북핵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추 전 의원은 방문 '의미'에 대해 "출국 직전에 공부를 하고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고 귀국을 했기 때문에 인사를 드린 것 뿐"이라며 "또 최근에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어 마음이 아팠다"고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는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 잘 승계되어 집행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갖고 있고, 나 역시 햇볕정책의 계승자로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최근 정리된 나름의 북핵 해법을 김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그는 "주권국가로서 북의 평화적 핵 이용권, 그 권리를 인정하되 포기의 대가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미국에 대해서도 북의 권리를 인정하되 비용부담을 덜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 북·미 양자를 설득할 수 있다"고 밝혔고, 이에 "김 전 대통령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셨다"고 전했다.

"개혁세력 통합으로 외연확장해야"

ⓒ 오마이뉴스 이종호
추 전 의원은 지난달 이미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정부가 북에 제시한 '중대제안(대북 전력송출)'의 보완이 필요하다며 6자회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화력발전소 건설안'을 제시한 바 있다.

추 전 의원은 "중대제안이 경수로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한의 이중부담이 우려된다"며 "에너지 확보가 절실한 북에 대한 대안도 되고, 핵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비용을 덜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고려할 수 있는 안"이라고 '윈윈 해법'임을 강조했다.

추 전 의원이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오가며 북핵 관련 '조용한 외교'를 펼치던 중, 노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유사하다는 평을 들으며 '화해 제스처 아니냐'는 해석이 일었다. 추 전 의원은 참여정부 초기 노 대통령이 대북송금특별법을 수용한 것을 혹독히 비판하며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그 '간극'에 대해 추 의원은 "미약하지만 내가 미국에서 나름의 외교를 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입장을 알리고 국익에 보탬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밖에 나와서도 (노 대통령을) 꼭 비판을 해야 하나, 국가원수로서 노 대통령과 정치인으로서 노 대통령을 구분하는 정도의 양식은 여야를 떠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추 전 의원은 여권의 두 차례 입각 제의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제의가 있었다"며 "선의로 이해했고, 통합의 진정성도 읽을 수 있었다"고 긍정 평가했다. 첫 제안은 지난 4월경 추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것으로 "당시 민주당이 선거(4·30 재보선)를 치르면서 상승분위기에 있었고, 또 내가 공부하겠다고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명쾌하게 거절했다"고 밝혔다.

두번째는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다. 그는 "법무부장관으로 검토되고 있다는 내용은 나도 언론보도를 통해 봤다"며 "그래서 알만한 분에게 확인해 보니 제안이 들어왔는데 내가 이미 확실히 거절한 바가 있기 때문에 나에게 아예 전하지도 않았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은 추 전 의원이 '입각제의한 것은 사실'이라고 언론에 밝힌 것과 관련해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대해 그는 "민주당에 대한 고려는 충분히 했다"며 "다만 입각제의가 사실이냐 아니냐 진실게임 양상으로 가는데 내가 거짓말쟁이가 될 수는 없지 않나"라고 억울해 했다. 그의 입장에선 여권의 입각 제의를 '민주당 흔들기'라고 보는 당의 입장을 고려해 말을 아꼈기 때문이다.

추 전 의원은 입각제의의 출처가 청와대인지 여부에 대해선 "몇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고만 밝힐 뿐, 오간 대화 내용에 대해선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끝내 함구했다.

"노 대통령의 답답한 심정 이해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연정' 제안에 대해 추 전 의원은 몇 초간 숨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그는 "(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크게 답답함을 느끼고 계시구나 라는 점은 읽을 수 있었다"며 "나 역시 노 대통령의 선거 운동에 동참한 입장에서 선거공약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똑같이 미안하고 답답한 심정"이라고 전제했다.

하지만 그는 "노 대통령 임기 전반부에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통합을 희생시키고, 지금은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을 희생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며 "개혁과 통합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잘 굴러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말해 대연정 제안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면서 '통합'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선 "개혁에는 응원세력이 필요한데 개혁세력의 분열로 개혁이 발목잡힌 것 아니냐"고 말해 외연확대의 대상은 한나라당이라는 보수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과의 통합을 염두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제가 뭐 밖에 있는데… 그런 얘기는 안했으면 좋겠다"며 말을 아꼈다.

추 전 의원은 "정치 얘기를 하면 복잡하게 휘말릴 수 있어 피하고 싶다"며 정치 현안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꺼려했다. 다만 "개혁과 통합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을 내세워 '속도조절'을 주문했고 "(참여정부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귀국 시기와 관련해 추 전 의원은 "공부를 하다보니 가속도가 붙고 영어 독해실력도 갑자기 늘더라"며 "그래서 체류 기간을 1년 더 연장했는데 다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해 조기 귀국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10월 재보선 출마설에 대해선 "2달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때까지는 공부해야죠"라고 말해 내년 상반기 5월 지방선거 전이 될 것임을 암시했다.

"귀국길, 마치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기분"

끝으로 추 의원은 귀국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인천공항에서 강변도로를 타고 집으로 오는 느낌이 마치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것 같더라"며 "조국은 여전히 푸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애정'이 가장 큰 힘이라고 밝혔다.

"따갑게 회초리를 대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정다운 시선을 주는 것도 저 같은 처지에서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고운 시선으로 봐주시면 어긋나지 않도록… 수양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갈고 닦고 있습니다. 제 마음의 애정에는 변함이 없으니 서로 애정을 주고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가지 답답하고 어렵죠. 그렇지만 사람이 항상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 속에 보람도 있는 것이니 어려운 시절 서로 이심전심으로 격려와 용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DJ의 격려 "나는 국회의원 4번, 대통령 3번 떨어졌네"
[스케치] 총선 뒤 심경 "상처는 자극으로 소화"

ⓒ오마이뉴스 이종호
"총선 참패를 인정하고 원점에서 새출발하겠다."

4·15 총선 당시 민주당 선대위원장이었던 추미애 전 의원은 여의도 당사에서 총선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중 민주당의 참패는 물론 본인의 지역구 낙선이 확실시되자 참담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그리고 대변인을 통해 이같은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그 뒤 언론과의 접촉을 끊었다.

1년5개월이 지난 지금 그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추 전 의원은 "아이 셋을 보살피며 공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며 "쪼개진 시간 틈틈이 책을 보면서 시간이 새삼 귀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총선 뒤 심경도 밝혔다. 그는 "낙선으로 마음이 아팠고 상처였지만, 상처마저 하나의 자극으로 소화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하고 난 뒤에도 '영향력 있는 정치인' 조사에서는 여전히 순위권 안에 든 것에 대해선 "과분한 사랑을 받은 입장에서 나에 대한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주어진 팔자랄까, 짐이랄까 그런 것 같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는 신문 등을 매일 챙겨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국내 정치가 시시각각 변하는데 마음만 시끄럽기 때문"이라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공부하겠다고 했으면 딱 공부만 하는 게 맞다"고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도 있다'고 발언한 뒤 정치권의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 역시 정치인인 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는 "(대연정과 관련해) 즉답을 피하고 있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국내에 머물다 보니 똑같이 답답함이 전염되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은 (정치) 무대에 없지만 최선을 다해 저를 채워나가서 그것이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를 잘 가꾸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신중한 관망의 자세를 취했다.

그는 '큰 틀'에서 말하고 싶어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무대, 미국에서 그는 가장 뜨거운 현안인 북핵 문제를 잣대로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읽는' 중이다. 이에 대해 그는 "미국이 한반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의 연장선에서 대일 정책을 어떻게 펴는지 알아야 우리의 입장에 대한 나침반도 정해지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체류지를 국내정치와 직결되는 워싱턴이 아닌 뉴욕(콜롬비아대학 방문교수)으로 정해 현실정치와는 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추 전 의원에게 "나는 4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고 대통령 선거에서 3번 떨어졌다"고 말하며 격려했다는 후문이다. 추 전 의원은 DJ와의 만남에 대해 "제게 여러가지를 주시기도 했는데 밖에 나와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지만 "밝은 표정으로 동교동을 나왔다"고 그의 측근은 전했다.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지난 뒤 녹음기는 꺼졌지만 몇마디가 더 오갔다. 북핵 해법과 관련해 노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의견을 전달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오마이뉴스>가 오늘 (인터뷰를) 잘 정리하면 노 대통령이 인터넷을 잘 보신다고 하니 그게 가장 빠른 전달방법이겠네요(웃음)"라고 말해 간접적이나마 대화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오는 30일께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다.

추 전 의원과의 인터뷰는 28일 오후 연세대학교 교정 녹지가 펼쳐진 원탁 벤치에서 1시간30분 가량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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