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토닥 토닥 토닥 토닥.

▲ 할머니 때 부터 사용해 온 다듬이돌, 방망이는 새로 구입하셨다.
ⓒ 송성영
고향집 대문 앞에 다가서자 다듬이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듬이질 소리가 나는 고향집'이라 하여 심심산골을 연상하겠지만 그런 고향집이 아닙니다. 내 고향은 대전시 중구 옥계동. 지금은 완전 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일곱 남매는 그 고향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 또한 그 집에서 자랐습니다. 내 어릴 적, 그 집 앞으로 흐르던 도랑이며 논배미는 6차선 도로로 변한지 이미 오래 됐습니다. 하지만 고향집은 지붕만 바뀐 채 그 자리 그대로 있습니다.

예전의 고향 마을 집들은 이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예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무심한 세월 속으로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에 낯선 건물들이 가득 들어 차 있으니까요. 그 엄청난 변화 속에 우리 집만큼은 예전 그대로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습니다.

또닥 또닥 또닥 또닥.

도심 한복판 고향집. 엄니는 그 오래된 집에서 홀로 다듬이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엄니의 다듬이질 소리였습니다. 그 정겨운 소리를 뒷전으로 한 채 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집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서자마자 다짜고짜 엄니를 몰아세웠습니다.

"에이 참, 이런 일 좀 그만 하시라니께."
"어이구 우리 새끼덜 왔구나, 어여 들어와 어여."

엄니는 셋째 아들의 참견을 듣는둥 마는둥 하고 큰 절을 올리는 손주 녀석들 쪽으로 선풍기를 돌립니다.

"힘 없으시다면서, 이런 일 좀 고만두시라니께요."
"심 있으니께 이것두 할 수 있는겨, 심 없으면 못혀."
"애비 말대로 그냥 노인회관에 놀러다니시지."

올해 일흔 일곱, 시어머니 건강 걱정에 아내가 거들고 나서지만 소용없습니다.

"남 덜은 내가 사서 고생한다지만, 나는 이런 일이 좋은 걸 어떡허냐. 노인회관 가믄 노인네들 눈이 벌게 가지구 화투판이나 벌리구 앉아 있구. 화투 치기하다가 쌈질이나 해대구 지랄덜 허니, 난 싫어. 거기 가믄 머리만 아퍼. 니들 마침 잘 왔다. 에미는 이거나 잡아줘라."

▲ 아내와 함께 풀먹인 홑이불을 손 보는 엄니
ⓒ 송성영
엄니는 다듬이질하던 홑이불을 길게 풀어헤쳐 놓고 아내에게 반대쪽을 잡아당기라 하십니다. 풀을 먹였는지 밀가루 풀 냄새가 풀풀 나는 홑이불을 엄니는 아내와 마주보고 앉아 소리 나게 펼칩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손이 척척 맞아 떨어지고 풀 먹인 홑이불은 팍 팍 소리를 냅니다.

적당히 주름이 펴진 홑이불은 다시 빨래 줄에 널어놓고 이번에는 옷가지 빨래들을 꺼내십니다. 조만간 국가에서 대주는 연구자금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가는 박사 아들, 넷째의 옷가지들입니다. 엄니는 풀 먹여 적당히 물기 있는 와이셔츠며 팬티 등의 속옷들을 정성스럽게 접어 천에 쌉니다.

"애비는 이거나 꽉꽉 밟아주고…."
"할머니 그거 우리가 하면 안돼요?"
"그려, 우리 새끼들, 니들이 어디 한번 밟아봐라."

두 손자 녀석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곱게 접은 옷가지 위에 올라서서 두 발을 총총거리며 밟아댑니다. 할머니는 그런 손자 녀석들이 대견스러워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올려다보십니다.

"어이구 우리 새끼들, 잘도 밟네. 어이구 잘 하네 우리 새끼들, 언제 이렇게 컷어? 이 다리통줌 봐."

나는 직업병처럼 수첩을 꺼내들고 취재하듯 엄니에게 여쭤 봅니다.

"근디 풀은 어떻게 먹이는 거유?"
"먼저 빨래한 옷에 풀을 먹이고…."
"밀가루 풀이지유?"
"밀가루도 좋고, 찬밥 남은 걸루 죽을 쒀서 하기도 하는데, 빨래를 걸쭉한 풀에 넣고 주물러서 햇볕에 잠깐 널어 놨다가 물기 빠진 것을 이렇게 천으로 싸서 밟아주고. 그 다음에 다듬질을 하는 겨."

▲ 풀먹인 빨래를 밟고 있는 두 손주 녀석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엄니
ⓒ 송성영
옷에 풀이 잘 배도록 적당히 밟고나면 다시 빨래가 꼬들꼬들할 때까지 말렸다가 다시 밟고 두번째로 다듬이질을 해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햇볕에 완전히 말린 빨래를 세번째로 다듬이질을 하는데, 이때 다듬질을 '마름 다듬이질'이라고 한답니다.

"엄청 힘들겠구먼, 엄니 이제 이런 일 고만 하세요."
"풀 먹인 이불 덮어봐라, 까실까실하니 감촉이 좋잖어. 옷도 마찬가지여. 몸에 닿는 감촉도 그렇구, 깔끔하고 빳빳해서 넘보기도 좋구. 또 옷에 풀 먹이면 때도 덜타고 오래 입을 수 있는겨. 옷이 헤지지 않어. 두세번 입을 옷을 서너번 입을 수 있는겨. 땀도 훨씬 덜 배구. 옛날부터 다 이유가 있어서 한 것이여, 괜히 힘들게 그랬건냐."

"괜히 시어머니들이 며느리 잡을려구 그런 거 아뉴?"
"에이, 누가 그런 소리릴 혀. 니 할머니는 절대루 그러질 않으셨어. 니 할머니는 날 딸 이상으로 대해주셨어. 친정어머니보다 더 정이 더 많이 들었지."

열 여덟에 시집와 당신의 친정어머니, 외할머니보다 시어머니와 더 오래 생활했던 엄니. 엄니는 낳고 길러주신 친정어머니보다 시어머니와 함께 고생한 세월이 더 많아서 그런지 정이 더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니 할머니하구 모시 두루마기 풀 먹여 주고, 남의 집 옷을 삯바느질 해줘가며 먹고 살었지. 그렇게 먹고 살았던 시절도 있었어. 옛날에 양반집 아씨 소리 듣던 니 할머니는 오죽 했겠냐."

모시 두루마기를 풀 먹여 다듬질까지 해주면 쌀 한 말을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듬질 하면서 살아온 얘기하다가 할머니께서 엄청 우셨어. 니 할아버지가 조강지처 놔두고 그 많던 고향 땅 다 팔아 서울에 새 살림 차리셨으니 오죽했겠어. 니 할머니 우시면 나도 따라 울었어. 할아버지가 다 팔아 넘긴 땅을, 니들 아버지가 죽어라 일해서 다시 땅을 장만 했는디, 두 형제분과 함께 사업한다고 다 날려 버렸잖냐. 땅 한 쪼가리 안 남기고 말여."

셋째 며느리로 시집 와서 시아버지, 시어머니 다 모신 엄니. 그런 엄니는 정작 아들 며느리를 끼고 사시지 않습니다. 일찍이 아버지와 사별하고 홀로 되신 엄니는 다 장성한 아들들이 함께 사시자 해도 한사코 손사래를 치십니다. 여전히 고집스럽게 풀 먹여 다듬이질을 하고 있듯이, 홀로 고집스럽게 생활하고 계십니다. 자식들에 얹혀 생활하면 며느리들 고생시킨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며느리들과 서로 신경 쓰며 사는 것보다 당신 혼자 속 편하게 생활하는 것이 훨 낫다 하십니다.

엄니는 다시 빨래를 곱게 접어 다듬이 돌에 올려놓고 방망이질에 힘을 주면서 그러십니다.

"니들이 하지 말라 해두 심이 없어 못혀. 인저 심이 없어 이것두 오래 못혀."

투닥 투닥 투닥 투닥.

엄니의 다듬이질 소리는 들을 때마다 소리가 다릅니다. 어렸을 때는 가물가물 자장가 소리로 들렸습니다. 이슬비 오는 소리처럼 고요하기도 했고, 또 기억 저편의 바람소리처럼 맑고 청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 늙으신 엄니의 다듬이질 소리는 둔탁하니 가슴을 칩니다. 자꾸만 아프게 가슴을 때립니다. 하지만 나는 엄니의 다듬이질 소리에 장단을 맞춰 드립니다.

"힘 있게 잘 하시네, 장단도 잘 맞구."
"그람 평생을 해왔는디. 이까짓 거, 잘하구 못하구가 뭐 있건냐."
"할머니 저두 해보고 싶어요."

할머니의 능숙한 다듬이질에 넋을 빼놓고 빤히 지켜보던 두 손주 녀석이 나섰습니다. 서로 먼저 하겠다고 나서던 녀석들이 사이좋게 방망이를 하나씩 나눠 가지고는 북을 치듯이 함부로 두드려 댑니다. 도무지 할머니 장단을 따라 잡지 못합니다. 녀석들의 다듬이질 소리는 '우당탕 우당탕탕' 질서 없는 소리를 냅니다.

"에라 이눔들아. 이리 줘. 넘들 지나가다가 듣고 흉볼까 무섭다."

엄니는 손주 녀석들의 다듬이질을 끈기 있게 한참을 지켜보고 있다가 영 안되겠다 싶었는지 동네 창피하다며 방망이를 거둬드립니다.

"할머니 어떻게 두드려야 해요?"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정해져 있간, 그냥 이러케 두드리면 되지."

토닥 토닥 토닥 토닥.

▲ 올해 일흔 일곱, 엄니의 다듬이질 솜씨는 여전합니다.
ⓒ 송성영
"이제 제가 한 번 해볼게요."

이번에는 아내와 내가 번갈아가며 다듬이질을 합니다. 나는 빨래가 좀 더 빳빳해지기 바라며 힘 있게 방망이질을 해봅니다.

"그렇게 너무 세게 하믄 안뗘. 옷이 헤져. 구멍이 나."

다듬이질도 요령이 있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힘만 믿고 두드리면 안된다고 합니다. 적당한 힘으로 두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다시 힘 조절을 해서 방망이질을 합니다.

"그려, 그려, 잘 헌다. 니들 아버지두 그랬는디. 할머니가 힘들면 옆에서 도와주곤 했는디. 니들 아버지두 다듬이질을 아주 잘했지."

풀 먹여 다듬이질한 옷가지에는 유학 가는 넷째 것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대전 고향집에서 공주로 돌아올 때 엄니는 속옷을 내놓았는데 일전에 벗어놓고 갔던 내 속옷이었습니다. 빳빳하게 풀 먹인 속옷을 두른 몸뚱아리에 평생 일손을 놓지 못하고 계신 늙으신 엄니의 까실까실 하면서도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져 왔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