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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과 치료방법을 통해 조선 시대 의학 변천사를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왔다.

21일 서울대에 따르면 이 학교 대학원 의학과 의사학(醫史學)을 전공한 김정선씨는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이란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 이달 말 학위를 받는다.

김씨는 조선 시대 왕의 질병 치료경향을 제11대 임금 중종 전반 이전, 중종 후반∼경종대, 영조 이후 등 3개 시기로 구분해 살펴보고 있다.

이같은 견해는 임진왜란(1592∼1598)이나 동의보감 완성(1610)을 기준으로 시기를 구분하는 일반적 관점과는 다른 것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외부적 사건이나 동의보감이라는 허준 개인의 책이 조선시대 의학의 결정적 변화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약재조달이 어려웠던 임진왜란 이후 침구학이 발전하고 경험 중시 풍조가 심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의학의 조선화'나 `실증적 의학 풍조'는 실제로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발생했다는 것.

논문에 따르면 태조 이후 중종 전반까지는 왕의 질병 치료를 담당하는 `내의원'이 정립되고 명나라와의 의학 교류가 활발해졌으나 실제 왕의 질병치료는 주로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소박한 대증(對症)요법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세종은 젊은 시절 육류 없이는 식사를 못 할 정도로 육식을 즐겼으며 사냥 등 운동도 싫어해 비만, 35세 이후 당뇨병으로 추정되는 병과 눈병을 앓았고, 이를 온천욕으로 치료하려 했으나 별다른 차도를 보지 못했다.

문종은 세자 시절부터 종기를 앓았으나 치료법은 종기 부위에 고약이나 거머리를 붙이고 약을 먹는 정도 수준이었다. 그 결과 문종은 40세도 안 돼 별세했다.

연산군 시대에는 의원들이 `음욕(淫慾)을 채우려는'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양기(陽氣)를 돕는' 풀벌레와 뱀을 진상했다는 기록도 있다.

심지어 중종은 열이 심하게 났을 때 해열제로 `야인건수(野人乾水)'를 먹었다. `야인건'이란 인분(人糞)을 뜻한다.

드라마 `대장금'의 배경이 된 중종 후반부터 경종 때까지는 어의(御醫)들이 명나라 의학의 영향을 받아 왕의 질병치료에서 원인을 찾는 것을 중시하게 됐으며 특히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침구술이 발달해 내의원 치료에 널리 쓰였다.

추위를 잘 타고 화병과 눈병을 오래 앓은 광해군은 먹는 약이 잘 듣지 않아 침을 많이 맞았으며, 38세에 폐위된 이후에도 내의원의 진료를 계속 받다 6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영조 이후로는 왕들의 질병치료에서 침술이나 강한 약물을 기피하고 일상적인 보양법(補陽法)의 건강관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평소 보양법을 중시한 영조는 자신의 장수와 건강비결을 `인삼의 정기'라고 생각해 72세 되던 해에는 1년에 20여근의 인삼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조는 철저한 건강관리 덕택에 조선시대 왕 중 최장수인 83세까지 수명을 누렸다.

보양법을 중시하는 이러한 경향은 현대까지 이어져 건강관리와 질병치료에 `보약'이 큰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한의학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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