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베트남 전통의상 부부 인형.
베트남 전통의상 부부 인형. ⓒ 고기복
전처소생의 딸과 같은 나이의 어린신부를 데리고 살다가 헤어지기로 작정했던 김아무개씨를 만난 것은 그가 한 달에 한 번 쉰다는 날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담담히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으면서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를 이렇게 전했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19년을 혼자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혼자 사는 게 훨씬 편해요. 그래도 나이 들어 결혼을 결심한 건 집안에 사람 기운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죠.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매일 밤 우는 거예요. 처음에는 향수병이 있어 그런다 했지만 좀처럼 한국에 적응을 하질 못해요. 저도 저녁 10시에 집에 들어오면 꼬박 꼬박 한 시간씩 베트남어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한국어 선생을 불러다 줘도 애시 당초 배우려 들지 않고 의욕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 한국에 온 지 석 달 만에 시집에 갔다 오게 했고 애를 가졌을 때도 다섯 달 만에 목돈 쥐어 주며 보냈던 겁니다."

김씨가 자신의 처지를 들어가며 결혼 파탄의 책임을 보티미에게만 떠넘기려는 것 같아 한마디 했다.

"그럼 보티미가 아이를 낳으러 베트남에 가서 전화를 해 왔을 때 왜 전화도 받지 않았고, 한국에 왔을 때도 만나주지 않았습니까?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노숙한다고 경찰에서 전화가 왔었을 때도 중매인을 보내시고, 비행기 티켓 한 장 사서 중매인을 통해 출국시키려 한 건 또 뭡니까? 사람이 짐짝입니까?"

나의 질문에 김씨는 굳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려는 듯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이 낳으러 갈 때 이미 서로 헤어지기로 작정했던 겁니다. 돈 2,500달러 주고 보낼 때 서로 그러자 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 보티미가 같이 살 마음이 있다고 하니까…. 아이도 호적에 올리고 양육비도 주겠습니다. 시월이면 이사할 생각인데, 이사한 이후에 아이를 데려오고 살림을 같이 하자면 같이 하겠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티미에게 악한 마음을 갖는 건 아니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남의 가정사에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가 아닌 건 압니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셨으면 책임지는 자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아이 양육 문제에 대해서는 지체하지 마시고 움직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지요."

김씨는 "처음에는 어린 나이에 돈 때문에 시집왔거니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보티미가 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고맙지요. 하지만 지금 당장 다시 합치려니 마음 정리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보티미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요"하면서 보티미의 손을 잡아끌었다. 보티미는 우리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눈 주위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김씨가 자신의 마음이 정리되는 대로 보티미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보티미에게 남편이 사진보다 나이 들어 보였다는 말을 하자 보티미는 "신랑~, 아빠 OK, 여보 No"라고 웃으며 말을 했다. 남편을 만나러 갈 때의 긴장된 모습과는 달리 훨씬 밝아진 모습이었다.

짧은 표현이었지만 말하려고 하는 내용이 뭔지 정확하게 그려졌다. 국제결혼을 한 상당수 가정에서 나이차로 인해 남편이 '여보'라는 호칭 대신 '오빠'나 '아빠'로 부르게 하는 모습을 보아왔던 터다.

남편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간 자신의 결혼생활을 털어놓기 시작한 보티미는 아직 젖살도 다 빠지지 않아 보일만큼 앳된 얼굴이지만 오는 시월이면 첫 애가 돌을 맞는다.

어린신부, 보티미는 아이 돌잔치를 남편과 함께 치를 것을 기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아이는 현재 입국을 위해 서류준비중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