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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의 절경. 그냥 디카를 꾹꾹 눌러도 엽서의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금강산의 절경. 그냥 디카를 꾹꾹 눌러도 엽서의 그림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 허선행
금강산 여행 둘째 날, 눈뜨자마자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그 날은 등산을 한다고 하니 아침밥도 든든히 먹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내려왔는지 알았더니, 이미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하는 분도 보인다. 전복죽을 비롯한 여러 음식이 맛있었지만 북한산지에서 채취한 나물이라고 들어서인지 나물 맛이 일품이다.

우리 일행 중 한 여자 분이 병이 났다. 소화가 안 돼 아침도 못 먹어 모두들 걱정했다. 버스를 타며 조장에게 이야길 하니 병원 앞에 내려 주며 진료를 받게 해 주었다. 여행자보험에서 무료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링거를 맞는 편이 회복이 빠를 거라고 했다는데 구룡연 등산을 굳이 따라 나섰다.

구룡연 등산에 나서는 필자의 모습
구룡연 등산에 나서는 필자의 모습 ⓒ 허선행
이곳까지 와서 일행에서 쳐지기도 싫고 구경거리를 놓치기 싫은 마음이야 알지만 아픈 몸으로는 만사가 귀찮은 법인데 용하다. 나는 상비약으로 가져 온 소화제를 주고 평생교육원에서 배운 대로 합곡혈을 계속해서 주물러 주었다.

차 한 대가 비켜 설 곳도 못되는 좁은 산길은 그래도 포장이 되어 있었다. 일제시대 포장이 된 도로라고 한다. 1호차부터 스물 몇 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산비탈 길을 오르고 있는 풍경도 흔히 보기 쉽지는 않을 듯하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화장실부터 다녀왔다. 서너 시간 등산할 동안 화장실을 갈 수 없다는 안내를 들었기 때문이다. 정상에 화장실이 있긴 한데 1달러를 내고 가야 한다니 돈도 돈이지만 중간에 용변을 보게 되면 낭패가 될까 모두 화장실을 들르게 된 것이다.

자연을 생각하여 설계된 화장실은 거품으로 처리하는 기능으로 되어 있었고, 화장실 밖에 손 씻을 곳도 마련해 놓지 않았다. 환경을 위한 거 아닐까라는 짐작을 하며 불편함을 참았다.

왜 산에서 새소리가 안 들리는 걸까?

안내도에서 오늘의 구룡연 등산로와 상팔담을 눈 여겨 보았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모양대로 놓여 있는 다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계곡에 맑은 물이 많이 흐르고 있었다.

깨끗해 보이는 물에 손이라도 담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손은커녕 물을 뜨는 것조차 허락이 안 된다고 하니 '화중지병'이 꼭 맞는 말이다. 하기야 손을 담그다 보면 씻어 보고도 싶을 테고 그러다 보면 금방 자연이 오염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잘 따라 올라오던 우리 일행 중 환자 분은 다시 내려가야겠다며, 우리가 점심을 예약해 놓은 북한 음식점 '목란관'에 가 있겠다며 혼자 내려갔다.

한참을 가다보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 왜 산에서 새소리가 안 들리는 걸까? 그래 맞아. 이곳에는 왜 새소리가 안 들리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안내원에게 물어 보았지만 더 깊은 산 속에 새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 동네 공원에서도 들리는 새 소리가 이 깊은 산에서 들리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다른 분들도 이구동성으로 모두 한 마디씩 했다.

가끔 설악산과 견주며 이야기도 하고 정말 노랫말처럼 일 만 이천 봉인가 세어봐야겠다는 우스갯소리도 하며 오르고 있었다. 쉬고 싶을 시간만큼 된 장소에 북한의 아가씨가 메가폰을 들고 안내를 하고 있었다.

북측의 관광안내원
북측의 관광안내원 ⓒ 허선행
커다란 바위의 비탈진 곳에서 화장기 없는 수수하고 예쁜(그 아가씨는 우리더러 예쁘다고 하지 말고 곱다고 말해 달라고 했다) 모습에 어울리게 말도 재미있게 한다. 재미라는 표현보다 사랑스런 말투라고나 할까?

질문에 답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남남북녀 단어가 휙 스치듯 지나간다. 화장을 한 듯 안한듯한 얼굴이 순수 그 자체다. 억양이 달라서일까? 동물모양 바위를 설명하는 대목도 어찌나 재미있게 들리던지 나도 모르게 힘껏 박수를 쳤다. 곰 모양과 도마뱀 모양 바위의 전설을 들으며 애써 그 모양을 가늠해 보는 관광객들도 협조적이다.

저 높은 꼭대기 바위 위에 어떻게 글씨를 새긴 걸까? 우리에게는 거의 불가사의한 존재로 보였다. 바위마다 요소요소에 새겨진 글씨를 다 읽을 수는 없어 디지털 카메라를 디밀었다.

바위에 새겨져있는 글귀들
바위에 새겨져있는 글귀들 ⓒ 허선행
금강산에서 말썽을 일으킨 남편의 등산화
금강산에서 말썽을 일으킨 남편의 등산화 ⓒ 허선행

1년 신은 등산화 바닥이 떨어지다

적당히 경사도 있고 바위와 물을 감상하며 걷는데 남편의 신발이 탈이 났다. 오래 신기도 했지만 등산화 밑바닥이 덜렁거리는 경험이 없던 터라 당황했다. 아예 밑바닥 고무창을 떼어내니 위만 등산화지 아래 바닥이 시원찮아 절름거리며 걷게 될 판이다. 조금 걷다가 불편해 보이는 해결책으로 아예 나머지 바닥도 떼어 내 보자고 했다.

위는 멀쩡한데 바닥이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 무늬만 신발이다. 그래도 남편은 별다른 내색 없이 잘 걷는다. 잠깐 쉬는 틈에 "나 집에 가면 일 년 이상 된 물건은 다 버려야 겠다" "일 년 넘은 숟가락도 언제 부러질지 모르니 버려야 되지 않겠냐"고 해서 우리 일행은 박장대소 했다.

금강문도 지나고 옥류동계곡을 지나 무봉폭포.

'금강산의 물이 떨어지면 폭포, 흐르면 비단, 흩어지면 백옥, 모이면 담소'라던 조장의 안내 말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쉬엄쉬엄 구룡폭포가 보이는 관폭정까지 다다랐다. 멀리 보이는 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느라 모두들 바쁘게 움직였다. 정해진 시간을 대서 가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산길은 단체로 온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내려오는 갈래 길에서 상팔담으로 갈 것인지 그냥 내려 갈 것인지 고민해야만 했다. 남편과 다른 일행은 그냥 내려간다고 했다. 남편의 신발이 불편해서 그런 것 같아 나와 함께 일행 두 명만 상팔담으로 향하고 다들 내려갔다.

몇 걸음이나 걸어올라 갔을까. 상팔담 오르는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내려오는 분들에게 계속해서 급경사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눈빛으로 내려가자는 신호를 보내고야 말았다. 그 자리서 누구 한 명이라도 강행을 하자고 했다면 올라갔을 텐데 셋이 같은 마음이라 흔쾌히 다시 내려오고 말았다. 좀 아쉽기는 하지만 식당에서 기다릴 일행도 생각이 났다.

남편과 함께 오지 못한 지인의 마음도 불편해 보였고, 나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고 아픈 아내를 두고 온 남자 분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셋의 마음이 딱딱 맞아 다시 내려오길 잘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중 한 팀이 상팔담을 다녀오셨다고 해서 부러웠다.

우리 일행 중 교장선생님이 북한 막걸리를 한 컵 주시는데 갈증 탓인지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다. "맛이 좋은데요" 북한에 와서 술 먹는걸 배워 가는 거 아니냐며 걱정을 하면서도 벌컥벌컥 두 컵을 연거푸 마셨다. 언젠가 제주도에서 맛 본 조 껍데기 술맛처럼 느껴졌다.

교예단 공연 보며 눈물범벅

북한 음식점 '목란관'에서는 두 가지 음식 중에서 골라서 주문해야 했다. 냉면과 비빔밥 중에서 나는 냉면을 시켰다. 냉면을 시켰는데도 입맛을 돋우기 위함인지 녹두전도 나오고 만두와 나물도 앞앞이 나왔다.

고사리, 도라지무침 모두 깔끔한 맛이다.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아 느끼하지 않아 더 좋다. 냉면이 나왔는데 닭 국물 육수에 쫀득한 사리가 어우러져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평소 물냉면을 싫어해서 비빔냉면만 먹어 왔었는데 냉면국물까지 다 먹는 나를 보고 놀라는 눈치다. 지인이 덜어준 비빔밥도 맛깔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시간에 다시 내려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교예단 공연을 보러 갔다. 나는 눈물이 많은가? 교예단이 나오는데도 눈물, 인사를 하는데도 눈물, 기계처럼 척척 어려운 동작을 하는 걸 봐도 눈물, 또 다시 만나자는 노래가 나오는데도 눈물.

주책없이 자꾸만 눈물이 나와 참아 보려고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나보다.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데 어찌하랴. 잠깐씩 코믹한 동작을 보여 주는 단원이 아니었다면 아예 흐느껴 울 뻔했다. 환하게 불이 켜질 때가 되어서 매무새를 정리했다.

삼일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조장이 몇 번이나 울었냐고 관광객들에게 질문을 했다. 교예단원들의 보수가 장차관급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고 있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 사람들이 불쌍해서 운건 아니다. 그냥 눈물이 났다.

두 동강이 난 한반도기가 아니라, 하나라고 쓰여 있는 파란색 한반도깃발이 올라가는데 안 울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을 느낀 공연을 뒤로 하고 우리는 삼일포로 향했다. 잔잔한 호수로 관동팔경의 하나라고 하니 안 볼 수가 없다며 따라 나섰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더워 모두들 지쳐 보였다.

삼일포의 풍경
삼일포의 풍경 ⓒ 허선행
단풍관에서 시간을 주었는데도 앉아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호수 쪽을 바라보니 귀여운 캐릭터의 동물이 낚싯대를 드리운 모양에 잠시 위안을 삼아 쉬어 본다. 금강산해수욕장 개장을 했다며 그쪽으로 간 우리 일행 몇 분은 얼마나 좋을까?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맞나 보다.

삼일포 안내를 하던 북한아가씨의 노래를 들으니 오늘의 피로가 다 가셨다. 수줍은 듯 우리귀에 익숙한 노래를 불러 앙코르를 외쳤지만 "구경 더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라는 말로 우리 일정을 재촉했다. 바위에 새겨진 적기가를 보니 '실미도' 영화장면이 떠올랐다.

삼일포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보였다. 우리는 방학인데 그곳의 아이들은 방학이 아니라고 한다. 학교에 들어가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북측사람들도 보였는데 관광로를 이용하면 지름길일 텐데 멀리 돌아서 다니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녁은 회를 먹자는 의견이 있어 미리 예약을 해 두었었다. 자연산 회를 먹으며 금강산에 오른 얘기로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향기와 시원한 바닷바람이 어우러져 정말 여름휴가를 온 기분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금강산 여행기는 총 3회에 걸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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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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