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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그동안 성차별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의 활동성과를 짚어 보고 앞으로 남녀 차별 해소를 위한 추진과제 등을 논의하는 특집 좌담을 마련했다. 좌담은 지난 6월 30일 오후 4시부터 2시간 30분 동안 국가인권위 13층 소회의실에 이뤄졌다. 최영애·정강자·최금숙·신혜수 등 4명의 인권위원이 참여했고, 사회는 김창석 <한겨레21> 사회팀장이 맡았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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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차별, 이젠 국가인권위가 풀어낸다

- 네 분께서는 모두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가 일치된다. 개인적으로 성차별 문제를 겪은 적이 있나.

최영애: 최초 기억은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때 남녀 합반인데도 반장은 남학생, 부반장은 여학생이 맡도록 했던 것이다. 학생회에서도 회장은 남학생, 부회장은 여학생이었다. 참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 신혜수 인권위원
ⓒ 인권위 김윤섭
신혜수: 가정에서부터 차별을 받았다. 집에서 닭 한 마리 잡아 어느 부위를 먹는지를 보면 남녀노소 위계질서가 바로 드러난다. 벼슬은 여자가 절대 먹으면 안 되고, 다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몫이었다. 저는 주로 먹은 게 목뼈였다. 우리 엄마는 닭발이었다. 치사하지만 음식에서부터 차별이 드러났다. 삶 속에서 체득한 차별이었고 여성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최금숙: 가사노동 문제가 대표적이지 않나. 둘 다 일하지만 가사노동은 당연히 여성 몫으로 아는 집안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 당시는 제가 젊어서 모든 것을 애정으로 이해하고 그랬다는 것만큼은 꼭 밝혀 두고 싶다. (일동 웃음)

신혜수: 대부분의 여성이 공통적으로 집안에서, 출산할 때, 가사노동 때문에 차별을 느끼는 것 같다.

정강자: 그래서 나는 남편이 "도와준다"고 하면 "왜 도와 주냐. 도와 가지라"고 얘기한다.(일동 웃음)

통합의 의미, '여성인권의 주류화'

-성차별 관련 업무가 통합된 뒤 국가인권위는 6월 23일부터 한 달간을 '성차별·성희롱 관련 상담 및 진정접수 특별기간'으로 정하고 2건의 직권조사 계획도 밝혔다. 접수 첫날에 벌써 <일간스포츠>를 상대로 편집국 소속 여기자 6명이 성차별적 정리해고라는 진정을 접수했다. 이번 업무통합의 의미를 정리해 보자. 우선 기능적인 측면, 즉 국민이 어느 기관을 이용해야 할지 혼란의 소지가 없어졌다는 점이 있다. 또 이른바 '복합차별'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이 밖에도 인권운동사적인 측면 또는 역사적인 측면으로 평가해 볼 수도 있나.

정강자: 통합이라는 외형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다양한 구제기구가 있는 게 좋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우선 상징성·대표성을 지닌다는 점과 통일된 기준을 제시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런 일원화는 영국이나 호주 등의 사례에 비추어 봐도 세계적인 추세다.

신혜수: 통합의 가장 큰 의미는 '여성인권의 주류화'라고 본다. 인권 분야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통합성·상호의존성이 국가인권위 안에서 다른 인권문제와 함께 통합적으로 다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면 여성부에서 다룰 때는 여성차별·성희롱이 체질적·본질적으로 지니는 '민감성'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국가인권위에서도 그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성이기 때문에 더 민감하고 체질적으로 잘 다룰 수 있었던 측면도 있다. 앞으로 국가인권위가 주력해야 할 부분이다.

▲ 최영애 인권위원
ⓒ 인권위 김윤섭
최영애: 다소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성운동사적인 의미도 일부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까지 여성부가 다뤘을 때는 객관성과 중립성을 지녔음에도 (사회적으로는) 편향성이 깔린 것으로 간주된 것이 사실이다. 또 성차별과 성희롱 문제가 성별의 문제로만 인식됐다.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여성문제는 기본적으로 인권문제로 다뤄진다.

국가인권위로 통합되면서 여성문제가 인권의 이름으로 다뤄지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신 위원께서 민감성 문제를 거론하셨는데 국가인권위가 다른 차별 문제를 지금까지 다뤄오는 과정에서 '당사자적 민감성'에 대해 충분히 훈련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10대 여성 장애인이면서 외국인' 하는 식으로 복합차별 문제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전문성 면에서도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하다고 본다.


-전문성과 함께 감수성이 있어야 여성인권의 문제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는 얘기로 정리되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국가인권위가 해왔던 활동 가운데 국가인권위의 전문성과 감수성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경우가 있는가.

최영애: 장애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서울지하철 발산역 리프트 추락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조사관들이 조사과정에서 진짜 가슴으로 장애인 문제를 느꼈다. 현장에서 눈물을 흘렸던 조사관도 있다. 인권위가 당시 인권적 감수성을 계발했다고 생각한다. 그 뒤로는 장애인 문제가 나오면 마음으로 대했던 것 같다. 여성 사안 중에서는 현장에 직접 나가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 여성부 권한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강자: 국가인권위 때문에 변화가 많은 것 같다. 회의 들어오기 전에 학벌 문제 토론이 있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나온 분이 최근 5년 동안 고용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주요한 원인 제공자가 국가인권위라고 하더라. 국가인권위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일괄 직권조사를 한 적도 있었다. 국가인권위는 과거의 부당한 관행을 바꿔 나가고 있다.

최영애: 어제 해양경찰청에 갔는데 함정에 근무하는 60명 가운데 여경이 5~6명 탄다고 하더라. 그래서 여경의 업무가 뭐냐고 하니까 "남성과 동일하다"고 답했다. 바로 여성부의 성과다. 그 성과를 토대로 나아가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남녀 차별의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것은 결국 인권적 감수성이고, 그것은 인권적으로 다양한 기준을 가지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양한 인권적 판단이 바로 감수성인데 그런 면에서 국가인권위는 감수성을 많이 축적했다. 모호하고 복잡한 사안의 인권문제일수록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부 부처 가운데 여성부를 제외하고 국가인권위처럼 여성의 비율이 40%에 이르는 부처는 없을 것이다. 인권위원도 11명 가운데 4명이 여성이다.


-정부기관으로서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의 관계나 비정부기구로서 여성단체와 국가인권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수 있나. 특히 여성단체에서는 국가인권위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많다는 얘기가 있다.

▲ 정강자 인권위원
ⓒ 인권위 김윤섭
정강자: 여성단체들의 염려는 주무부처의 핵심업무이던 성차별 개선업무와 성희롱 구제기능이 사라져 버린 것에 굉장히 아쉬워하고 있다. 또 국가인권위로 통합되고 나면 18개 차별영역 가운데 이 문제가 'n분의 1'로 취급될지 모른다는 염려도 크다. 여성문제가 n분의 1 정도의 위상으로 다뤄질 문제가 아니라는 걱정이 바로 여성단체의 우려인 셈이다. 또 권한 행사의 방식과 관련해서도 '권고'를 뛰어넘는 좀더 강력한 권한 행사, 즉 강제집행 같은 것을 원하는 목소리가 있다.

최영애: 인권정책 중장기 기획안을 만들면서 각 부처 실무급 책임자들이 참석하는 인권정책관계자협의회를 국가인권위에서 운용하고 있다. 인권이라는 매개로 관련 부처가 다 모이는 것이다. 이런 자리를 통해서 공통의 인식을 이뤄낼 수 있다고 본다. 또 인권단체나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단체와도 정기적인 토론회와 간담회를 열고 있다. 국가인권위 기능 중에 직권조사 권한을 적절히 활용하면 시민사회의 참여도 강화할 수 있다.

최금숙: 다른 국가기관과의 협조 문제와 관련해 다른 관계기관의 장이 국가인권위 업무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인권위법 개정안도 추진 중이다.

국가인권위, 차별 문제의 전문기관으로 거듭나기

-얼마 전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보면 한국여성의 성 평등지수가 58개국 가운데 54위에 그쳤다. 국제수준과 비교할 때 한국의 여성인권이 이렇게 떨어지는 요인은 뭔가.

신혜수: 성 평등지수라는 것이 원래 '힘있는 자리', '정책결정의 자리'에 여성이 얼마나 나가 있는가를 보여 주는 지표라서 그렇다. 그러니까 나라가 발전하고 여성들도 같이 발전해 왔지만, 정책결정의 자리나 기업의 임원 같은 자리는 남성이 확고하게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직까지도 한국남성이 그 점에 있어서는 안 내놓으려고 하는 것이다.(일동 웃음)

국가인권위도 이런 결과를 낳은 근본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 즉 노동정책·복지정책 등이 남녀의 성 역할을 전제해 놓고 그 위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확인하고 고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구조는 그대로 두고 사회참여를 외쳐 봐야 패러다임을 바꾸기는 어렵다.

정강자: 이 업무가 여성부 소관이었을 때도 성 차별 문제와 성희롱 문제가 1대 1 정도 비율이었다. 그런데 차별 문제의 70% 이상이 고용문제다. 여성에게는 복수의 진입장벽이 있다. 특히 여성금지 직종을 없애 노동시장 진입장벽은 낮아졌지만, 노동시장 진입 후 여성은 승진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고 있다. 기업조직에서 '새로운 유리천장'이라고 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더 핵심적인 문제다. 예측 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직권조사도 가능하다.

신혜수: 그런 문제를 낳는 근본원인은 사회적 성 역할의 고정화라고 본다. 증상에 대해서만 대증요법을 취해서는 안 된다. 계속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최영애: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성 역할의 고정화 문제가 크게 작용했지만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 지금 남학생들한테 물어보면 결혼할 때 가사노동은 분담할 수 있기 때문에 일하는 여자가 좋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여자가 나가서 버는 돈이 아이 키우는 데 드는 돈보다 적다는 것이 문제다. 그럴 바에야 돈을 줄이는 방법으로 집에서 일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이해타산이 안 맞는다.

정강자: 맞다. 자영업 하는 고소득 여성이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여성은 자녀를 둘 낳는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부 조직에서도 1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10% 미만으로 한 자리 숫자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신혜수: 여성부에서 채용목표제나 할당제를 했다. 정부가 만드는 위원회에서도 여성할당제를 적용했다. 그러나 여성부만 자기 일로 생각했지 다른 힘있는 부처에서 그 제도를 자기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정부 고위직에서는 그런 의식이나 인식이 없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대학에서는 성차별 의식이 어떤가.

▲ 최금숙 인권위원
ⓒ 인권위 김윤섭
최금숙: 일단 취업에서는 여학생이 남학생과 동일한 기준을 가지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그러나 여성이 정책결정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학생들에게도 현재 상태에서 정책결정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강조하는 편이다. 확실한 직업의식에 바탕을 두고,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희생과 봉사의 태도를 가지라고 말한다. 국회의원뿐만 아니고 시의원·구의원 등 크고 작은 단위에서 정책결정권자가 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성 평등지수 58개국 중 54위

-성희롱 문제의 경우 예전에는 우리 사회에 그런 개념도 없었지만, 지금은 법·제도적 측면에서만큼은 일정한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문화적인 변화가 아닌가 싶다.

정강자: 성희롱이 인권침해이고 차별이고 폭력이라는 인식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남성의 집단적 저항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여성부(여성가족부)를 상대로 남성들이 내는 행정소송도 늘고 있다. 훨씬 더 섬세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의 경향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최영애: 우리 사회가 아직 이 문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면이 크기 때문에 '합리적인 여성의 관점'이라는, 조심스러운 기준을 쓰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이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참 어려운 실정이다. 사례가 많이 쌓이고 판례가 축적되어야 좀더 세련된 기준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 우조교 사건이 최초의 사건이었는데 1심에서는 성희롱이라고 판단했지만, 2심에서는 성희롱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때 논리가 "이 정도는 우리 문화에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용 영역에서의 성희롱은 줄지 않고 있다. 원래 성희롱은 권력적 관계에서 발생한다.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정강자: 권력관계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대학사회와 직장인들은 그래도 대응능력이 있다. 그런데 범주를 벗어나는 소수자의 경우에는 심각하다. 예를 들면 유치원생, 초·중·고 학생, 시설에 수용된 아동, 장애여성 등은 대응능력이 없거나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건이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라오더라도 사회적 의제가 안 된다.

최금숙: 모호한 사건들이 문제가 되는데 입증 방법에 대한 다양한 개발이 이뤄져서 남성도 억울하지 않고 여성도 억울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입증의 문제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초·중·고 학생을 상대로 한 교육도 중요한 것 같다.

최영애: 여성이 'NO'라고 하지 않더라도 성희롱이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이 사회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남성에 대한 교육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혜수: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실 법원에서 고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와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기업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 감독책임을 물어서 일벌백계하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

대응능력 없는 여성들의 인권문제 심각

-성차별 문제와 성희롱 분야와 관련해서 올해 국가인권위가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무엇인가.

최영애: 올해 하기로 한 직권조사 2건은 모두 큰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이것만 제대로 이뤄진다고 해도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정강자: 이주여성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다. 국제결혼한 여성의 인권침해 사례는 앞으로 점점 더 규모가 커질 게 뻔하다. 이 부분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본다.

신혜수: 거리에 걸린 동남아지역 여성들의 국제결혼 광고 현수막을 보면 알 수 있다.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폭력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권도 없이 성매매 현장으로 유입되고 있고, 그 시장에서도 가장 열악한 인권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최금숙: 일하는 여성의 70%가 비정규직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한 조사와 정책적 대안 마련도 중요한 것 같다.

- 오늘 오랜 시간 토론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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