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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2주 동안 휴가를 떠나는 다니엘라 스키루씨는 출발 하루 전날, 4년 동안 키운 애완견을 도그 펜션에 데려갔다. 사방 1.5m의 작은 방에 침대가 있고, 하루 두 번씩 청소를 해주고 외출을 시켜준다는 조건이 있는 펜션이다. 하루 비용은 13유로.

"개를 펜션에 맡기는 것은 처음이다. 가슴이 아프다. 항상 데리고 다녔는데 올해는 이렇게 결정한 것이 잘 한 것인지 모르겠다. 개는 아직 모르고 있다. 휴가 내내 개 생각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스키루씨처럼 개를 펜션에 맡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애완동물 천국이라 불릴 만큼 애완동물이 많은 이탈리아지만, 휴가철만 되면 애지중지 키우던 애완동물들 상당수가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 이탈리아는 주인에게 버려진 애완동물로 넘쳐난다. 동물학대 신고센터에 의하면 올 여름에 버려질 위기에 있는 애완용 동물은 강아지 10만 마리, 고양이 5만 마리 등 총 15만 마리에 달한다.

▲ 로마 길거리에 버려진 고양이.
ⓒ 김은정
이탈리아의 여름휴가 준비 "애완동물을 버려라"?

- 2004년 5월 28일. 달리는 자동차에서 새끼 고양이가 창문 밖으로 던져지는 사고 발생(이탈리아 파르마)
- 같은 해 6월 6일. 기르던 새끼 사냥개를 버리고 가던 주인을 쫓아가던 개를 주인이 후진으로 들이받는 사고 발생.(이탈리아 레체)
- 3일 뒤, 강아지가 나무에 묶인 채 버려진 것 발견(레체)...


지난해 6월 이탈리아 동물보호협회에 접수된 사건들이다.

버려진 애완용 동물들은 교통사고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90년부터 2000년까지 발생한 교통사고 중 4만5천 건 가량이 동물들의 도로 뛰어들기로 발생했다. 이 사건들로 2백 마리가 죽고 천여 마리가 부상을 입었다.

ⓒ 김은정
이탈리아에서 애완용 동물은 주로 크리스마스와 생일날 아이들에게 선물로 건네진다. 선물하는 애완용 동물들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탈리아 동물보호협회 소속기구인 '동물 대상 범죄 감시회(Osservatorio reati contro anomali, Orca)' 조사에 따르면 2200만 이탈리아인이 집에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고 있으며 그들 중 5%는 다른 동물도 함께 기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강아지, 고양이, 흰 족제비, 파충류, 금붕어 등은 선물용으로 각광받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마치 장난감을 선물하듯 가볍게 애완동물이 건네지는 것에서 동물들의 위기가 시작된다. 가족처럼 친근하게 대우하다가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면 거리낌 없이 버리는 사람들 때문.

고양이 두 마리와 토끼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 엘레나 노첸티니씨는 "휴가 갈 때 애완동물들을 어디에 맡겨야 할지 정말 문제"라며 "지금까지는 대부분 가족 중 누군가가 집에 남아 있거나 아니면 할머니 집에 맡겨 놓았었지만 올해는 2,3일간 혼자 집에 두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인 53%, 애완동물 버리는 것도 죄가 되나?

이탈리아에서도 애완용동물 버리기는 엄연히 범죄다.

이탈리아 정부는 2004년 '애완용 동물 학대 방지법률(189/2004)'을 통과시키고 애완용 동물을 버리거나 죽일 경우 징역 1년 또는 벌금 1천~1만 유로(130만원~1300만원)를 물도록 했다.

이어 '동물 대상 범죄 감시회'는 동물학대방지법 시행 1년만인 지난 7월, '동물학대 방지법에 대한 인지도'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에 따르면 이탈리아인 1백 명 중 47명만이 범죄임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애완용 동물을 버리는가'라는 질문에는 54.1%가 "주인의 잔인성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15.6%는 "애완용 동물 주인이 바캉스를 가야 하는데 동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라고 답했다. 이어 "애완용 동물 주인이 동물을 집에서 기르는 게 문제라고 느끼게 돼서(15.2%)", "동물주인이 휴가를 가야하는데 숙박업소에서 동물을 입장시키지 않기 때문에(9.5%)", "수용소에 가두어 두는 것 보다 버리는 것이 낫기 때문(5.6%)"순이었다.

"휴가? 노인들은 집이나 지키시오"

▲ 로마에서 25km 떨어진 오스티아 해변가에서 두 노인이 카드놀이를 하며 휴가를 보내고 있다. 이탈리아 노인들이 휴가를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김은정
애완동물들이 휴가철에 집중적으로 버림받는다면, 노인들은 가족들이 모두 휴가를 떠난 뒤 텅빈 집에 홀로 '남겨진다'.

노인들이 반강제적으로 홀로 남겨지는 가장 큰 이유는 휴가 비용 절감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8월에 한 사람당 휴가에 들어가는 비용은 대략 770유로(한화 1백만원, 중소기업회 SWG Confesercenti 조사). 자식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은 노인은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 노인들이 맡겨진 애완견을 산보시키고 있다. 여름철 이탈리아 도시에는 노인과 애완동물들만 남겨진다.
ⓒ 김은정
이름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한 노인은 "자식들이 휴가를 가면 나만 남는다"며 "자식들끼리 휴가를 가는데 그들이 함께 가자고 요청하지도 않지만 내가 끼면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에 섭섭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홀로 남은 노인들에게 한여름 도시에서의 여름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무더위에 쉽게 대처하지 못해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그들을 돌봐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또 8월에는 약국도 2주일씩 문을 닫고 근처의 작은 슈퍼마켓들도 휴가를 떠나는 등 공공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휴가를 가기 때문에 노인들은 예기치 못한 병과 생필품 공급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때문에 남겨진 노인들도 이탈리아 정부에겐 큰 짐일 수밖에 없다.

실제 8월 1일 밀라노에서는 두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집 신고로 세상에 알려진 이 두 노인의 사망 원인은 "너무 더워서"였다.

위기에 몰린 노인들을 대비해 이탈리아 정부는 여름마다 '24시 도우미 센터'를 운영하는데 지난 7월 한 달간 '24시 도우미 센터'에 걸려온 전화만 8천여 건에 이른다. 이중 대부분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다.

남겨진 노인들의 여름나기

남겨진 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고독'이다. 노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노인들만의 여름나기를 시도한다.

로마시 15자치구의 노인복지센터 두이리오 페르고리니(80)씨는 회장직을 맡은 12년 동안 고독한 노인들을 위해 소풍, 당일치기 여행, 수박 자르기 등 여름센터를 열고 있다. 그는 "노인이 되었을 때 쓸 수 있는 돈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있는 경제적, 정신적 능력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인데 혼자 있어서 고독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노인은 더욱 고독하다고 말했다.

경제적 능력을 갖춘 노인들은 노인들끼리의 바캉스를 즐기기도 하고, 노인복지센터에 등록한 노인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바캉스 비용으로 바캉스를 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집 근처에서 그들만의 휴가방법을 찾게 된다. 올해 71세인 조세페 사르디씨는 95년 연금생활에 들어가면서부터 휴가를 가지 못했다. 40년간 노동일을 해왔지만 한달 연금이 1천유로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돈으로는 휴가는 꿈도 못 꿀 일.

▲ 조세페 사르디씨(오른쪽)가 노인회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 김은정
그는 휴가 대신 어떤 개인에게 10여 평의 땅을 기증받아 집 근처에 이웃한 노인들과 노인회를 열었다. 산과 바다가 아닌 도시의 그늘 아래서 땡볕을 견디며 카드놀이나 하는 그의 여름나기는 별반 특별한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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