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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에서 찍은 아내의 사진. 벌써 11년의 세월이 지났네요.
신혼여행에서 찍은 아내의 사진. 벌써 11년의 세월이 지났네요. ⓒ 양허용
특히나 둘째는 한시라도 엄마 옆을 떠나지 않으려고 해서 늘 곁에 놓고 공부를 해야만 했고 어떤 때는 울고 보채는 통에 포대기로 업은 채 공부하는 모습도 여러 번 봤습니다. 때로는 집안 일이 밀려 새벽 늦게까지 강의를 들어야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아픈 몸으로 책상 앞에 앉아 시험을 봐야 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아내가 안쓰럽게 여겨져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그 때마다 아내는 밝은 표정으로 공부하는 게 너무나 재미있고 즐겁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인데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비를 쪼개 학비를 대야 하는 가정형편을 잘 알고 있어서인지 3년 반 동안 아내는 만년 장학생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입학할 당시와 1학년 첫 학기를 제외하고는 5학기 동안 내내 장학금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집안일이나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침을 거르면 세상이 두 쪽 나는 줄 아는 남편을 위해 새벽까지 공부를 하던 다음날도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챙겨 주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 깔끔한 성격 탓인지 집안은 언제 보아도 항상 깨끗하게 정리정돈이 잘 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첫째가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매일 같이 앉아서 아이의 공부를 돌봐주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공부하기에도 힘이 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말 외에는 한 번도 아이의 공부 지도를 거른 날이 없습니다. 그 뿐인가요. 여행에 욕심이 많은 남편 덕분에 거의 주말마다 여행에 따라 나서야 했으니 그것도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아무튼 집안일에도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덕에 아내는 8학기 학사일정을 한 학기 당겨 이번 가을에 조기졸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같이 입학했던 동기들은 아내의 조기졸업을 무척이나 부러워한다고 하더군요.

아내에게 대학공부를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아이들이 어렸으니 하루 종일 아이들 뒷바라지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후딱 지나버리겠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면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들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 때 가서 무언가 하려고 하면 나이 들고 배운 것은 없으니 일을 시작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그 동안 난 뭘 하고 지냈나 하는 회한이 들 수도 있을 것이고요. 그래서 나이 들어 아이들이 크고 난 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미리 기반을 만들어 주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횡성 '토지' 촬영 세트장에서 소원을 빈 쪽지를 새끼줄에 매달고 있는 아내.
횡성 '토지' 촬영 세트장에서 소원을 빈 쪽지를 새끼줄에 매달고 있는 아내. ⓒ 양허용
아무튼 그렇게 해서 시작한 공부가 이제 끝을 맺을 때가 된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난 것 같지만 실제로 그 시간이 짧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 때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내는 아직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지금도 그 때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부러움만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겠지만 그 때 용기를 내어 공부를 시작한 덕분에 이제 학사모를 쓰고 당당하게 졸업식장에 설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아내가 졸업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3일이라는 다소 긴 시간이라 아내가 졸업여행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 그 오랜 기간 동안 잘 참고 견뎌내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잘 다녀오라며 따뜻한 배웅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비록 황금 같은 연휴 동안 여행도 못 가고 집에만 콕 들어박혀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신세가 되겠지만 그래도 동기들과 어울려 마음 홀가분하게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라고 격려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못나게도 그 무엇도 해주질 못했습니다. 아이들을 봐주는 일은 회사 때문에 어렵게 되었고 마침 얼마 전에 사소한 일로 다투고 냉전 중이었던 관계로 잘 다녀오라는 말도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행가서 쓰라며 손에 쥐어주고 싶은 약간의 돈도 건네주지 못했고요. 그냥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는 아내의 모습을 모른 척 외면하고 말 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어렵게 참고 견뎌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인 졸업여행을 떠나는 아내에게 참 옹졸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데 요즘 말로 ‘그까이꺼’ 먼저 손 내밀고 잘 다녀오라고 따뜻한 한 마디 해줄 수도 있었는데 끝내 그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만 합니다. 어찌 그리도 바보같이 굴었는지….

소중한 사람은 곁에 없을 때 더욱 더 그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법이죠. 아이들과 함께 아내가 떠난 집안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도 달려 나와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집에 들어가기가 싫습니다.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없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죠? 밥맛이 없으니 회사에서 먹거나 아침은 거르고 출근하게 되더군요. 아이들도 아내도 없으니 괜히 처량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내는 오늘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그리운 아내와 아이들이 절 맞아주겠죠. 그렇지만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오늘 저녁에도 아내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내가 그것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축하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랐다는 것 말입니다.

“여보, 그 동안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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