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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전쟁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승일교. 위쪽(동송방향)은 곡선의 작은 아치가 6개. 아랫쪽(갈말방향)은 네모진 아치가 3개이다.
분단과 전쟁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승일교. 위쪽(동송방향)은 곡선의 작은 아치가 6개. 아랫쪽(갈말방향)은 네모진 아치가 3개이다. ⓒ 이승열
2년전부터 승일교의 역할을 물려받은 한탄대교의 야경
2년전부터 승일교의 역할을 물려받은 한탄대교의 야경 ⓒ 이승열
승일교, 한탄대교, 승일정 아래로 한탄강이 흐르고 있다.
승일교, 한탄대교, 승일정 아래로 한탄강이 흐르고 있다. ⓒ 이승열
철원군은 군 전체가 군사보호시설 구역으로 묶인 곳이다.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지역 곳곳에 분단의 상징물이 놓여 있어, 잊고 살아온 분단의 역사가 눈앞에 밟히며 가슴을 아리게 하는 곳이다. 분단의 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구조물이 철원군 동송읍과 갈말, 즉 신철원과 구철원을 잇는 승일교이다.

1948년 북측에서 먼저 시작한 다리 공사는 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수복 이후 남측에서 북쪽과 다른 공법으로 준공했다. 다리 공사를 시작한 곳과 끝낸 곳이 다르다 보니 양쪽의 큰 아치 위의 상판을 받치는 작은 아치 모양이 확연히 다르다. 먼저 다리 공사를 시작한 북측의 아치는 작고 둥근 곡선인데 반해, 남측의 것은 크고 네모에 가까운 아치 모양이다.

원래 한탄교라 이름 지어진 것을 남, 북이 합작하여 만든 다리라 하여 이승만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딴 '승일교'로 지어졌다고 분단의 현실을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은 믿고 있다. 6.25 당시 한탄강을 건너 북진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朴昇日)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철원군 노동당사 건물. 시멘트 벽에 난 총탄 자국에 속절없는 잡초만 자라고 있다.
철원군 노동당사 건물. 시멘트 벽에 난 총탄 자국에 속절없는 잡초만 자라고 있다. ⓒ 이승열
1938년의 철원 모습. 비옥한 철원평야의 생산물을 바탕으로 국토의 허리 역할을 했던 태봉국의 도읍지
1938년의 철원 모습. 비옥한 철원평야의 생산물을 바탕으로 국토의 허리 역할을 했던 태봉국의 도읍지 ⓒ 이승열
승일교를 건너 철원의 구 노동당사에 이르는 길은 드넓은 평야 지대이다. 2005년은 궁예가 이곳 철원에 태봉국을 세운 지 1100년, 광복 60주년째 되는 해이다. 1938년 당시 철원군 가구수가 4269가구 인구가 1만9693명 초·중고등학교가 5개교, 학생수가 1700명이었다 한다. 철원 평야의 비옥한 물자를 기반으로 국토의 중심부에서 이곳이 얼마나 번성했었나를 보여주고 있다.

8.15해방 후부터 6.25전쟁 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당사로 사용된 이 폐허의 건물은 건립 당시 때 1개 리(理)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했다고 한다. 철원, 평강, 김화, 포천 지방을 관장하면서 저질러진 무자비한 살육의 증거인 인골과 실탄과 철사가 건물 뒤 방공호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노동당사는 폭격을 맞은 채로 지붕과 벽이 숭숭 뚫려 있다. 총탄으로 패인 시멘트 벽 곳곳에 잡초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폐허의 노동당사 내부. 관리소홀로 이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20세기의 유적 낙서가 가득하다.
폐허의 노동당사 내부. 관리소홀로 이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20세기의 유적 낙서가 가득하다. ⓒ 이승열
노동당사 뒷편. 분홍빛 무궁화 꽃과 대비를 이루며 폐허가 을씨년스러웠다.
노동당사 뒷편. 분홍빛 무궁화 꽃과 대비를 이루며 폐허가 을씨년스러웠다. ⓒ 이승열
이곳 노동당사는 현재 국토의 끝이다. 더 이상 북쪽으로 가는 길이 없는 곳이다. 총탄으로 패인 벽면에 뿌리를 내린 잡초들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멈추어야 한다. 무장을 한 군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위장 무늬 시멘트 구조물 앞에서 총을 들고 서 있을 뿐이다. 천년 전 궁예가 태봉국을 세웠던 흔적들은 모두 이젠 비무장지대라 불리는 그 안에 있다. 우리들은 궁예가 최후를 맞이했다는 명성산이란 이름에서 그의 흔적을, 울음소리를 어렴풋이 기억해 낼 뿐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국토의 끝. 무장을 한 군인들이 국토의 끝에 서 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국토의 끝. 무장을 한 군인들이 국토의 끝에 서 있다. ⓒ 이승열
대한민국 21세기의 키워드 땅. 분단의 현실 앞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는 섬뜩한 '땅'
대한민국 21세기의 키워드 땅. 분단의 현실 앞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는 섬뜩한 '땅' ⓒ 이승열
온통 거리의 표지판이 분단의 상징들로 가득하다. '백마고지, 월정역, 제2땅굴'. 광풍으로 휘몰아친 전 국토의 투기바람 또한 이곳 철원 땅도 예외가 아니다. 붉은 글씨로 '땅'이라 쓰고 검은 테두리로 마감한 벽면 전체를 뒤덮은 21세기의 유적을 후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할까?

박승일 대령의 승일교를 남북 최고 지도자의 합쳐진 이름으로 풀이한 위대한 민초들이 사는 땅이다. 광복 60돌을 맞아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측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를 두고 설왕설래 말이 많은 광복절 전야이다. 북측이 시작한 다리를 남측이 완성한 합작품 승일교 아치 아래로 한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임꺽정의 전설을 간직한 고석정 앞 전쟁의 유물들.
임꺽정의 전설을 간직한 고석정 앞 전쟁의 유물들. ⓒ 이승열
승일교는 2년 전부터 주황색 철골 아치형 한탄대교에게 그 역할을 물려 주고 이제 통행금지란 꼬리표를 매단 채 근대문화유산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리 하나에 두 가지 공법이 어우러진 채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반쪽은 네가 놓고 나머지 반쪽은 내가 만든 다리가 한탄강의 물살을 고스란히 견디며 하나로 완성될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여행기의 제목은 신경림 시인의 '승일교타령'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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