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19일, 미7공군 소속 A10전폭기가 육상표적에 기총소사한 뒤 농섬폭격을 위해 날아오르고 있다. ⓒ 노순택
"오늘은 정말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입니다. 국가 안보라는 명분에 밀려 사람 대접도 못 받은 우리가 드디어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梅香里). '매화꽃 향기' 대신 미군 전투기의 폭음과 화약 냄새가 진동하던 이 곳에 54년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12일 정오 사격장 폐쇄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갖던 전만규 '미 공군 매향리 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감격했다. 전 위원장은 지난 17년 동안 사격장 폐쇄 운동을 벌이며 두 차례 옥고를 치른 바 있다.
일명 '쿠니사격장'으로 불리는 매향리 사격장에서 사격을 알리는 주황색 깃발이 내려지고 '매향리 평화마을'이라는 녹색 깃발이 올라갔다. 사격장 정문에 '쿠니 사격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영어 간판 위에 '평화마을 조성 예정지'라는 간판이 새로 덮어씌워졌다.
▲2001년 3월 24일, 매향리 농섬 안. 반세기에 걸친 무차별 폭격으로 제 살의 절반을 덜어내 버린 농섬이 처연하다. 타깃 차량에는 무수한 총탄 자국이 남아있다. ⓒ 노순택
이날 정오 농섬 해상사격장에서 마지막 폭격과 기총사격을 할 예정이던 미군도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는지 훈련을 취소했다. 주민 대책위는 '사격장 폐쇄'를 기념하는 기자회견에서 "매향리 주민들은 54년만에 광복과 새 생명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매향리 사격장은 한국전쟁중인 1951년 '쿠니사격장'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규모는 농섬과 육·해상을 합쳐 719만평. 지금까지 주말을 제외하고는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A10기와 F16기 등 전투기 50여 대가 하루 200여 차례에 걸쳐 폭격과 기총 사격 등 훈련을 해왔다. 이 때문에 매향리 주민들은 소음과 난청, 불면증과 우울증, 가축 불임증세 등에 시달려왔다.
매향리와 함께 투쟁했던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시작"이라고.
▲드넓은 갯벌에서 조개를 캐 생계를 연명했던 매향리 주민들은 미군의 크고 작은 오폭에 생명을 잃거나 다쳤다. 매향리 갯벌 위로 흉물스럽게 떨어진 2톤짜리 대형 폭탄. 2000년 7월 9일. ⓒ 노순택
▲2000년 여름, 매향리 주민과 시민 학생들은 폭격장 폐쇄를 요구하며 치열하게 싸웠다. 피가 튀고 돌맹이과 방패, 진압봉이 엉켰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투쟁이었다. 2000년 6월 17일. ⓒ 노순택
▲자기네 나라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남의 나라 허락을 받고,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던 매향리 농민들. 매향리의 폭격은 멈췄다. 그러나 파주에서, 평택에서 농민들은 여전히 미군에 땅을 빼앗기고 있다. 2000년 6월 9일. ⓒ 노순택
▲폭격은 멈췄지만, 매향리 폭격장에는 '작전용 폭탄, 불 발포탄'을 경고하는 팻말이 꼿꼿이 서있다. 미군은 매향리에서 열화우라늄탄을 시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2004년 11월 28일. ⓒ 노순택
▲매향리는 결국 승리했다. 허나 오늘도 한반도 곳곳에서는 미군 전투기의 굉음이 멈추질 않고 있다. 2005년 6월 4일, 경기도 평택 팽성읍 대추리. ⓒ 노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