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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달빛 고요한 때 피어난 달맞이꽃처럼 분위기 탈 줄도 모르고, 풍요한 가을 들녘을 수놓는 쑥부쟁이처럼 무리지어 피어날 줄도 모릅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제방의 녹음방초에 묻혀 자취도 찾기 어렵습니다. 가까이 다가서 발아래 굽어봐야 풀숲에 숨어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엄마, 그거 뽑아다 뭐 할라고 그래.”
“이게 다 돈 되는 거여.”

제방 위 패랭이가 꽃을 피울 무렵이면 어김없이 어머니 손에 수난을 당했습니다. 한 여름 들일에 여유가 생길 때면 어머니는 바짝 마른 칡 줄기 하나 들고 제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패랭이꽃을 뿌리째 뽑았습니다. 제방 위에 서서 패랭이꽃 줄기를 뽑는 어머니를 따라 걷다가 뒤돌아보면 걸어간 거리만큼 마을이 작아졌습니다.

“이까짓 걸 누가 사?”
“읍에 가면 서로 달라고 싸워.”

칡 줄기로 질끈 동여맨 패랭이 단을 머리에 이고 어머니는 제방 따라 되돌아왔습니다. 그 뒤를 따르던 나도 두 팔 가득 패랭이 줄기를 안고 어머니 뒤를 따라 걸었습니다. 그것을 마당에 널어 바짝 말린 뒤에 어머니는 읍내 건재약방에 가져다 팔았습니다.

여름 들녘 제방 위에 숨어 있다가 어머니에 의해 줄줄이 수난을 당하고 뽑혀버린 패랭이꽃은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어김없이 다시 피었습니다. 어머니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 여문 씨앗 땅에 떨어져 싹 틔우고 줄기 키워 꽃이 된 것이지요.

어머니 손을 거쳐 우리 가족의 여름살이에 한몫을 했던 패랭이꽃은 우리네 조상들의 삶에도 여러 군데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각지의 5일장을 떠돌아다니며 물건 팔던 장돌뱅이들의 삶에서 패랭이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 흔적이 민요에 담겨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짚신에 감발 치고 패랭이 쓰고
꽁무니에 짚신 차고 이고 지고
이장 저장 뛰어가서
장돌뱅이 동무들 만나 반기며
이 소식 저 소식 묻고 듣고

목소리 높이 고래고래 지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쳐가며
돌도부장사하고 해질 무렵
손잡고 인사하고 돌아서네
다음 날 저장에서 다시 보세


신분제가 엄격했던 때에 장돌뱅이들이 머리에 쓰던 패랭이는 낮아서 천대받던 사람들을 나타내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평량갓이라고도 불렀던 패랭이는 그래서 낮은 신분층의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굴레이기도 했습니다. 패랭이는 패랭이꽃 꺾어 뒤집은 모양과 비슷합니다.

그들의 애환이 담겨 그럴까요? 제방 위에 핀 패랭이꽃은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습니다. 녹음방초에 묻혀 있는 듯 없는 듯 피어납니다. 부는 바람 따라 흔들리지만 바람에 뽑혀 허공을 맴돌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법도 없습니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가까이 다가가 허리 굽혀 다정하게 살펴보면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이웃처럼 친근한 모습이 되어 다가옵니다.

주말이 되어 어머니를 뵈러 갈 때는 활짝 핀 패랭이꽃 한 묶음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활짝 핀 패랭이꽃 가슴에 안고 환하게 웃으시는 어머니와 함께 사진도 찍어보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제방 위에 서서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법이 무언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패랭이꽃 사는 모습만큼 살아가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가진 건 없어도 건강하고 질기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덧붙이는 글 |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가슴에 달아드리는 카네이션은 패랭이꽃을 개량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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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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