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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이어지는 폭염이 아스팔트를 녹일 정도다. 가끔씩 퍼붓는 폭우가 몰고 온 습기는 짜증을 더한다. 무덥고 불쾌지수 높은 이 여름. 가장 잘 팔리는 제품과 가장 안 팔리는 제품은 뭘까? 아무래도 계절에 따라 소비량 증감의 진폭이 큰 얼음과 연탄이 아닐지. 오마이뉴스는 얼음과 연탄을 생산하는 현지공장을 찾아 여름을 이겨내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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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극과 극 ①] 이 삼복 더위에도 연탄이 팔릴까

▲ 서강냉동 저빙창고. 한여름 속의 겨울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의 평균온도는 영하 18도.
ⓒ 오마이뉴스 김호중


'등골이 서늘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출고되기 전 수 톤의 얼음을 쌓아두는 저빙창고. 바깥은 영상 35도에 육박하는 펄펄 끓는 가마솥이지만, 이곳은 영하 18도의 '얼음 공화국'이다.

<오마이뉴스> 기자 일행을 안내한 서강냉동 손순식 상무가 "어때요? 딴 세상이죠"라며 웃는다. "방금 생산된 얼음의 온도는 영하 1~2도예요. 저빙창고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니까 여기서 얼음을 만지면 따뜻하죠."

저빙창고는 얼음을 숙성시키는 공간이다. '얼음에 웬 숙성?'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3~4일 숙성한 얼음은 천천히 녹고 강도도 높아진다. 한여름에 겨울을 느끼는 공간이라 에피소드도 흔하다.

"기온 차이로 인해 서리가 생기기 때문에 안경 쓴 작업자가 없어요. 아르바이트 학생도 안경 미착용자를 선호하죠. 방한복에 방한장갑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작업을 하는데도 30~40분만 일하면 입이 얼어 말이 잘 안 나와요. 게다가 얼음 가득한 이곳에서 땀을 흘린다는 것도 재밌지 않아요?"

아니나 다를까? 저빙창고에서 나오자마자 기자의 안경에는 뽀얗게 서리가 끼었고, 동영상 촬영을 진행한 후배기자는 "선배, 온도가 급격하게 변해서 카메라가 잠깐 먹통이 됐었어요"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한여름 짜증 속에서 만난 '차가운 별천지'

8일 오전 오마이뉴스는 '별천지'를 체험하고 왔다. 견디기 힘든 더위 탓에 개도 혀를 빼물고 체온을 조절한다는 오뉴월 염천에 팔뚝과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이다. 그 별천지는 다름 아닌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2대 40년째 얼음을 만들고 있는 서강냉동(대표 김해정) 공장.

사람이 먹는 것을 만드는 공장은 언론을 통한 현장공개를 꺼린다. 괜히 작업현장을 공개해서 구설수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위생과 환경에 자신감이 있는 업체만이 취재제의를 수락하는 경우가 많다. "품질과 위생의 철저한 관리가 회사의 주요 모토"라고 말하는 업체답게 서강냉동은 취재에 흔쾌히 협조했다.

현장을 찾아 사무실 문을 열자 얼음과 함께 울고 웃으며 청춘을 보낸 손순식 상무가 반겨준다. 그에게 '당신이 얼음과 얼음 만드는 사람에 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물었다.

▲ 보기만 해도 시원스런 얼음이 줄지어 만들어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호중
- 아무래도 여름철이 최고 성수기겠죠. 겨울에 비해 얼마나 많이 팔립니까?
"대략 2.5배내지 3배가 많이 나갑니다. 각 가정마다 냉장고가 생기고, 어지간한 규모의 가게에선 제빙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예전만큼 얼음이 많이 나가진 않아요. 현재 서울시내엔 3개 정도의 대형 얼음 생산업체가 있는 걸로 압니다."

- 만들어진 얼음은 주로 어디로 공급됩니까?
"저희의 경우에는 까르푸, 홈플러스 등의 대형마트와 GS25, 바이더웨이, 세븐일레븐 등의 편의점으로 나갑니다. 칵테일과 냉커피, 냉면과 팥빙수에 들어가는 얼음은 100% 식용얼음이죠. 그래서 위생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남들은 휴가 가는 여름이 가장 바쁜 철인데.
"그렇죠. 여름엔 일하는 사람도 25명 정도로 겨울보다 7~8명 늘어납니다. 바쁠 뿐 아니라 직원 대부분이 한번쯤은 여름감기를 앓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저희 회사를 선호합니다. 피서가 따로 없잖아요(웃음). 그리고 잡티와 불순물 없는 깨끗한 얼음을 만들어 세상을 시원하게 하는데 일조한다는 보람도 없지 않지요."

- 겨울철엔 얼음 소비가 아무래도 줄텐데 어렵지 않나요?
"생산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가정에서도 겨울이라고 냉장고를 끄지는 않잖아요. 편의점 반출량 등이 조금 줄긴 하지만 양주, 칵테일, 음료에 사용되는 얼음이라 겨울에도 꾸준히 소비됩니다."

- 생산된 얼음은 언제 수요자들에게 배달되는지.
"교통체증과 더위를 피해 보통 새벽 4시부터 배송해 오전 중에 마칩니다. 24시간 편의점은 체인점이라 멀리 부산까지 배달하는 경우도 흔하죠."

- 직원들은 여름휴가를 쓰기가 힘들 듯 하네요.
"서로가 힘든 걸 아니까. 배려하는 마음에서 짧게 다녀오거나 가을에 가는 경우가 많아요. 얼음 성수기라 연장작업과 휴일특근 등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일이 많으면 그만큼의 수당도 있으니까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그렇지요."

- 장기근속한 직원들이 많다던데요.
"보통 20년 이상 일한 사람들입니다. 60세 이상 되시는 분들도 7명이나 되는데 이분들은 30년 넘게 근무했죠. 20대도 몇 분 있는데 세대간 불화 같은 건 없습니다. 저만 해도 휴가 가는 도중에 회사에서 연락받고 돌아오기도 했고, 추석 때 일한 적도 있지만, 요새 젊은 친구들에게 그런 걸 강요할 순 없죠."

- 내부가 아닌 외부문제로 힘든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어디선가 나타나 여름 한철만 장사하고 빠져버리는 업체들 때문에 고민입니다. '하다 안되면 그만두지'라는 마인드로 장사를 하니 덤핑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까닭에 형성된 가격을 흐리고 맙니다. 봄에 생겨나 가을에 사라지는 업체가 적지 않은데 이는 상도의에 벗어나는 일 같습니다."

ⓒ 김진석
얼음 가운데 구멍이 뚫린 이유는 뭘까?

이젠 공장을 둘러볼 차례다. 제빙실, 기관실, 저빙창고 등으로 명명된 공간을 손 상무와 함께 꼼꼼히 살폈다. 공정은 거의가 자동화되어 있었다.

"낮은 온도로 천천히 얼려야 얼음조직이 치밀해지고 투명도가 높아진다"는 것, "얼음 가운데 구멍이 뚫린 이유는 그곳에 모인 불순물을 빼낸 흔적"이라는 것, "얼음공장의 냉매로는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프레온가스 대신 암모니아가 사용된다"는 것은 공장을 돌아보며 얻은 새로운 지식이다.

하얀 위생복과 위생모를 착용하고 제빙실에서 일하고 있는 손세달씨가 하나의 무게가 135Kg에 이르는 얼음을 아이스캔(얼음 성형틀)에서 빼내고 있다. 이른바 탈빙작업이다.

손씨를 포함한 서강냉동 직원들은 여름이면 하루 200여개의 대형 얼음을 만들고, 자르고, 포장하고, 배달한다. 그 무게만도 27톤에 이른다. '매일 빙산을 만들고 옮기는 사람들'이라 불러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얼음절단기의 소음으로 바로 옆 사람 이야기도 잘 안들리는 공간에서 손 상무가 파손된 얼음과 문제 있는 얼음이 자동적으로 걸러지는 시스템을 설명해준다. 그리고는 위생이라면 자신 있다는 듯 방금 조그맣게 잘라낸 얼음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기자도 얼음 하나를 깨물었다. 이어 입안으로 번지는 시원스런 청량감.

"이 여름 지나면 가을엔 단풍놀이 가야지" 예순 일곱 박종효씨의 미소

▲ 서강냉동에서 30년간 근무했다는 박종효씨.
ⓒ 오마이뉴스 김호중
냉장창고에서 작업을 하다 잠시 쉬고 있는 아저씨가 눈에 띄어 몇가지를 물었다. 박종효씨. 나이가 예순 일곱이라는 말에 기자는 깜짝 놀랐다. 10살은 젊어 보였다. 시인 김남주가 그랬던가. "노동은 인간의 피를 맑게 하며, 자신과 함께 세상을 빛나게 한다."

"바쁜 이 여름 지나가면 가을엔 집사람이랑 어디 좋은 곳으로 단풍놀이 가야지"라며 활짝 웃는 박씨의 미소가 천진난만한 아이의 그것 같았다. "얼음 귀하던 시절부터 얼음 구경은 실컷 하고 살았다"는 농담을 던진 박씨는 "피서 따로 갈 필요 뭐 있어,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 시원한데"라며 예의 그 소박한 웃음을 다시 피워 올렸다.

제대한 후 스스로의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대학생 나재규(25)씨 역시 "시원한 이곳이 여름철 아르바이트 자리론 최고 아니냐"며 아버지뻘 박씨와 함께 파안대소했다. 그 웃음이 얼음보다 시원스러웠다.

자신이 만든 얼음을 통해 여름날 세상의 '짜증온도'를 낮추는 사람들.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과 수고를 아는 사람이라면 앞으론 진토닉과 냉커피에 떠있는 얼음 한 조각도 예사롭지 않게 보일 것 같다.

얼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냐구요?
현장에서 본 얼음 제작공정

ⓒ오마이뉴스 김호중
더위를 식혀주는 먹을거리 냉면, 달콤하고 시원한 팥빙수, 혹서에 시달린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향긋한 칵테일 한 잔….

이것들에는 공통적으로 얼음이 들어간다. 녹여 먹고, 깨물어 먹으며 시원함을 즐기지만, 실상 자신이 먹는 얼음이 어떤 공정을 거쳐 탄생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래는 취재과정에서 기자가 직접 본 얼음 제조 과정이다.

첫 단계는 필터 여과를 거친 수돗물을 '아이스캔'이라 불리는 틀에 넣는 과정이다. 이를 '입수'라고 한다. 다음 단계로 이 틀을 주위로 소금물이 흐르는 곳에 고정시킨다. 냉동코일은 소금물을 얼리고 낮아진 온도에 의해 물도 언다. 소금물의 빙점은 영하 21도로 물보다 훨씬 낮다. 보통 48시간 가량 천천히 얼려 투명도와 치밀도를 높인다.

이렇게 얼려진 얼음은 하나의 무게가 135Kg. 공장에선 이를 '한 각'이라 부른다. 이후 과정은 거의 90% 이상이 자동화되어 있다.

완성된 얼음은 용해수에 담그고 틀에서 빼낸다. 이 과정이 '탈빙'이다. 탈빙을 거친 얼음은 다시 깨끗한 물에 세척되고 이후 용도에 맞게 절단된다. 절단된 얼음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자동포장 된다. 포장되기 전 형태가 훼손됐거나, 강도가 낮은 얼음은 걸러진다.

포장까지 마친 얼음은 저빙창고에서 숙성과정을 거쳐 중간상인 혹은,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당신이 입에 넣어 녹이는 얼음 한 조각은 이처럼 간단찮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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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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