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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과 사진에 미치다>
책 <여행과 사진에 미치다> ⓒ 아테네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은 자유를 꿈꾸는 이들이다.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가. 사람들은 떠남을 통하여 새로운 시각과 생각을 얻고 돌아온다.

책 <여행과 사진에 미치다>는 서른 살에 처음 카메라를 장만하고 서른한 살에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한 총각의 여행기를 담고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서른이 넘어 시작한 여행과 사진에 푸욱 빠져 작가는 이제 그 떠돌이 삶에서 행복을 느낀다. 떠남을 통하여 배우고 느끼며 살아 숨쉬는 것을 발견하는 한 사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난 추억들은 더 깊이 가슴에 박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여행 중에 걸었던 작은 길과 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사람이란 단순한 존재인 것 같다. 과거의 추억 속에 나를 가둬 놓고 그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으니. 내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이렇게 시작하는 그의 글은 영국, 프랑스, 베트남, 페루, 태국, 스위스 등 세계 곳곳을 훑어 내려가며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거기에다 자신이 갔었던 곳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사진까지 곁들여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아, 나도 여행과 사진에 미쳐서 떠돌아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영국의 런던에서 작가는 여행에서 느끼는 것 가운데 좋은 점 하나가 바로 '평소 알고 있었던 지식들이 그곳 문화를 접하면서 조금씩 이해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런던에 오기 전에 막연히 알고 있었던 사실은 그곳에 가서 직접 체험하고 느끼면서 산 지식으로 남게 된다.

대영박물관에서 만난 한국이라는 나라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속상하기만 하고, 중고품을 소중히 여기는 영국인들의 모습에서 진실된 사람의 향기를 느낀다. 그래서 작가는 여행에 있어 유명한 건축물과 유적에 감동 받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더 많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고 고백한다.

잉카의 땅 페루에서 작가가 느끼는 감정은 바로 '겸손한 삶의 자세'이다. 손님들의 무거운 짐 가방과 텐트를 메고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포터들, 마추픽추 근방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 가난하지만 행복을 느낄 줄 아는 페루 사람들. 이들을 통해 작가는 행복이란 결코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모든 것이 멈춰선 것 같은 공중 도시 마추픽추는 그렇게 단번에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가 버렸다. 새삼스레 산행을 함께 했던 포터들의 수줍은 미소가 떠오른다. 그들이 신고 있던 검정 샌들 사이로 비죽 불거져 나온 검은 발가락. 어쩌면 나는 그것을 가난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는 없는 부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내가 고통스러워했던 안데스 산을 품에 안을 수 있는 넉넉한 가슴이 있으니까."

페루의 갈대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갈대를 엮어 섬을 만들고 그 위에서 생활한다. 섬도 갈대로 만든 것이고 집도 갈대 집이고 심지어는 전망대와 배까지 갈대로 엮은 것이다. 호수의 중간에 위치한 이 섬에 생활하는 게 얼마나 불편할까 하고 외지인들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삶에 적응하여 만족하며 살고 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이해하려 하면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네의 삶의 방식으로 그들을 본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문화들이 많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여행을 통해 우리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 한 자락을 얻게 된다.

여행에서는 우연히 만난 한 사람 한 사람도 소중하다. 사진기를 향해 밝게 웃음을 던지는 순수한 태국의 어린이들, 숙소에서 만나 며칠의 여행 동안 좋은 친구가 되어준 한국 사람들, 털썩 주저앉은 기차역에서 만난 호주의 매력적인 여성. 이들과 만든 추억은 여행에 대한 또 다른 기억으로 남아 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사람과 함께 풍경도 기억으로 존재한다. 베네치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풍경, 스위스의 푸른 잔디와 눈 덮인 산악의 모습, 베트남 여성들의 전통 의상인 하얀색 옷자락과 자전거. 이 멋진 풍경들은 하나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작가의 마음 깊이 머물러 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밤늦도록 강가에 앉아 온갖 포즈를 취하며 커피를 즐기던 평화로움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은은한 향내를 발한다. 여행을 다녀 본 많은 곳 중에서 베네치아만큼 마음이 들뜨고 흥분되게 하는 곳도 흔치 않다. 일상이 멈춘 것 같은 설렘으로 저녁 노을 속에 나를 묻어두고 싶었던 시간. 잔잔한 물줄기의 속삭임이 여행에 지친 여행객의 피로를 풀어 준다."

마지막까지 독자를 이끄는 것은 작가의 담백한 문체와 솔직한 표현, 그리고 멋진 사진들이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그가 방문한 나라들 구석구석을 나 또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사람은 누구나 떠남을 꿈꾼다.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런 행운과 용기가 주어졌을 때 망설이지 말고 떠나자. 당신이 꿈꾸던 그곳이 어디이든지 간에….

여행과 사진에 미치다

신미식 사진. 글, 아테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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