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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새벽 '욱일승천기' 논란의 주인공 정모씨를 만났다. 노란 머리였던 그는 최근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뒤 검은 색으로 염색한 채 나타났다.
4일 새벽 '욱일승천기' 논란의 주인공 정모씨를 만났다. 노란 머리였던 그는 최근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 뒤 검은 색으로 염색한 채 나타났다. ⓒ 강이종행
"미치광이의 발광이 아니다. 상업주의로 물든 왜곡된 '음악시장'에 대한 분노였다. 외국에서도 모피를 사용하지 말자고 누드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가. 다만 큰 잘못은 때와 장소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알몸을 노출한 카우치와 함께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나와 논란을 일으킨 정모(23)씨. 그가 방송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4일 새벽 <오마이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우리의 일방적인 분노로 죄 없는 청소년, 시청자들에게 피해준 것 죄송하다"며 "분노할 대상을 우리 자신조차 몰랐던 것 같다"고 잘못된 '알몸노출'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 있는 의미에 대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 안타깝다"며 "이미 미친놈 패거리가 돼 있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지금처럼 차분히 기자와 인격적으로 앉아서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종희형(럭스 리더 원종희씨)도 카우치도 잘못은 잘못대로 인정하되 할 말은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서 작은 소파에 당사자인 카우치 2명과 원씨 등 세 명을 앉혀둔 채 수십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어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고 공격적인 질문을 쏟아내는 순간 이들은 이미 범죄자가 됐다는 것.

그는 카우치의 알몸노출이 돌발적이었지만 주류사회에 대해 비판이 담긴 행위였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알몸노출에 대해 사전에 들은 바 없다,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종희형이 카우치가 옷을 벗었을 때 움찔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도 너무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밝혔다. 또 방송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말리지 못했다고.

"왜곡된 음악시장 일침... 그러나 방법 틀렸다, 국민께 죄송"

정씨는 낮에는 식당에서 일을 하며 밤에는 펑크밴드를 준비하는 예비 로커다. 그는 방송 1주일 전쯤 원씨가 스컹크헬(원씨가 운영하는 홍대 앞 펑크 전문 라이브클럽) 홈페이지 게시판에 "<음악캠프>에 출연하게 됐다. 같이 갈 사람은 당일 함께 가자"는 공고를 냈고 이를 보고 참여를 결심했다.

당일 오후 1시께 스컹크헬에서 모여 6, 7명이 두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카우치의 신모씨와 같은 차를 탔다는 그는 "형이 '제대로 놀아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나머지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리허설이 끝난 뒤 종희형이 '리허설 때는 힘이 없었는데 진짜 라이브에 들어가서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신나게 놀고 때창(코러스의 은어)하자. 펑크인으로서 꿋꿋한 모습 보이자'고 했다"고 말했다. 원씨의 이 표현이 '사전모의'로 비쳤을 것이라는 게 그의 추측이다.

그가 이번 '알몸노출'사건의 또하나의 당사자가 됐던 것은 '욱일승천기' 그림이 새겨진 하얀색 티셔츠를 입었기 때문. 그는 지난해 여름 가장 좋아하는 펑크밴드인 클래쉬(The Clash)의 티셔츠를 샀다.

"이 그림은 클래쉬가 일본 공연 즈음 '일본의 제국주의'를 풍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원안은 일본인이 흑백에다 눈동자까지 없어 그야말로 비꼰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내 옷은 그것을 좀 더 예쁘게 만든 것 같다. 방송 당일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가기로 했는데 그 셔츠밖에 없었다. 그래서 입고 간 것이다. 문제가 될 줄 알았으면 입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나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이 상처받았다고 하는데 너무 죄송하다."

그는 클래쉬의 '저항정신'을 존경해 티셔츠를 샀다고 한다. 이외에 히틀러를 비판하는 등 비슷한 의미가 담긴 셔츠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욱일승천기' 옷 죄송... 클래쉬 저항정신 보고 산 것"

방송이 나간 뒤 그를 비롯한 펑크(펑크 음악인 혹은 매니아)들은 그야말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한다. 현재 그들 사이에서는 "홍대 앞에 펑크복장을 하고 나가면 경찰들과 기자들에게 검문 당하고 불이익을 당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라고 한다. 이 때문에 그 역시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한 상태였다.

"현재 심경은 너무나 복잡하다"는 정씨는 "<음악캠프> 사람들과 방송 보고 충격 받았을 청소년들과 시청자들게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마녀사냥'하듯 확대해서 기사를 써대는 기자들에게 서운한 감정도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제 한 인디밴드 선배가 '우리 때문에 인디씬이 위축됐다'고 화를 냈다"며 "이번 일로 홍대앞 인디밴드 전체를 함께 비난하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비주류 중에 비주류... 펑크록!

형형색색으로 제멋대로 하늘로 치솟은 머리, 은빛징을 박은 검정 가죽재킷에 롱부츠. 펑크족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펑크록은 1970년대 영국의 섹스피스톨즈(Sex Pistols)와 클래쉬(The Clash) 등이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반복적인 비트와 단순한 코드의 곡조에 사회비판적이고 공격적인 가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속을 후련케 한다.

펑크록의 계보는 1990년대 이후 그린데이(Green Day), 오프스프링(Offspring) 등 네오펑크 밴드들에 와서는 어찌보면 훨씬 '일반인'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메시지만큼은 수그러들지 않고 주류사회를 향해 날을 세웠다.

한국에서의 펑크는 1994년 홍대앞 드럭 클럽의 탄생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이 인기를 얻으면서 인디씬 전체가 주목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 스타 밴드 이후 후진들이 주목을 받지 못해 쇠퇴기를 겪는다.

이후 2002년 럭스의 원종희씨가 스컹크헬을 홍대에 열면서 펑크인들을 모이게 했다. 이번에 알몸노출 사건의 주인공 카우치 역시 스컹크헬에서 주로 공연을 해왔다.

그러나 현재 펑크록은 비주류인 홍대에서조차 비주류다. 90년대 초 홍대 인디씬 전체를 이끌었던 펑크가 현재는 어찌보면 단 한개의 라이브클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한 음악 전문가는 "이 때문에 그들은 자긍심과 함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저항정신이 투철한 이들이 가끔 돌출행동을 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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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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