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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아내 임경옥씨.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아내 임경옥씨. ⓒ 김덕련
김성환(47)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의 아내 임경옥(45)씨의 하소연이다. 김 위원장은 일반인에겐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삼성의 노동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유명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96년부터 끈질기게 삼성 노동자들의 문제를 세상에 알려왔다. 10년째이다. '또 하나의 가족'을 내건 '1등 기업' 삼성의 화려함 뒤에는 비판적인 노조를 용인하지 않는 삼성의 전근대적 노동정책이 있음을 외쳐온 그는 지금 감옥에 있다.

삼성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김 위원장에게 크고 작은 민·형사소송을 제기했고 김 위원장은 2003년 7월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집행유예 기간 중에도 삼성 노동자들의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 제작 및 인터넷에서 삼성의 부당노동 행위를 알린 것 등과 관련, 삼성 쪽에서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김 위원장을 다시 고발했다. 올해 2월 22일 울산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후 지난 7월 15일 항소심(2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대법원에서 이대로 실형이 확정될 경우 김 위원장은 '집행유예 기간 중임에도 자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3년 7월 선고받은 3년이 더해져 모두 3년 8개월의 수감생활을 해야 하는 처지다.

삼성 노동문제 제기한 게 죄?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웬만한 언론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삼성의 노동자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은 어떻게 10년 동안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을까. <오마이뉴스>는 2일 오후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그의 집에서 아내 임씨를 만났다.

"내가 보기엔 저절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남편은 3년여간 다니던 이천전기(변압기 등을 만든 인천 소재 기업)에서 노사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96년 해고됐어요. 삼성이 이천전기 지분을 늘려갈 때였죠. 예상되던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민주노조를 만들려고 뛰어다니다가 '불법유인물 배포 및 불법단체 구성'을 이유로 해고된 거죠."

김 위원장과 삼성의 질긴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복직투쟁을 하면서 한편으론 삼성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삼성의 노동문제가 의외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임씨는 전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삼성은 노조 설립 움직임만 보이면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이용, 유령노조 신고서를 먼저 제출하죠. 또 노조 설립에 주도적인 노동자들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철저히 감시하는 방법도 쓰고요. 이를 알게 된 남편은 삼성의 부당노동행위 자료를 수집하고, 회사 밖에서 초기업조직인 삼성일반노조를 만든 겁니다."

김 위원장이 노동자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87년 6월항쟁 이후 전국적으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한독금속에서 민주노조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아내 임씨 "생활 어려워 아이들 세배돈까지 써야 했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그는 지난해 검찰에 "삼성노동자 위치추적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면서 삭발하기도 했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그는 지난해 검찰에 "삼성노동자 위치추적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면서 삭발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김 위원장이 해고자 신분으로 삼성과의 싸움에 나서면서 가족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온전히 임씨 몫으로 돌아왔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은 다 받았어요. 아직도 그 빚이 남아 있어요. 일도 여러 가지를 했고요."

세 아이를 책임진 임씨는 책 판매, 식당일, 세차, 녹즙배달 등을 거쳐 지금은 하루 두 번씩(새벽, 저녁) 우유를 배달하고 있다. "하루 종일 하는 일 대신 가급적 집 주변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어요."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아이들 밥 굶길까 봐, 차비 못 줄까봐 전전긍긍해야 했던 시간이었다. 서울 큰집에서 받은 아이들 세배 돈까지 나눠 써야 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남편이 원망스럽진 않았을까.

"원망스런 마음이 왜 한 번도 안 들었겠어요. 하지만 10년 동안 밥벌이 안 했어도 남편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난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임씨는 "힘들지만 즐거웠던 세월"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삼성 해직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 전국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 등에서 일하면서 며칠씩 집에 못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가족과 함께 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노동자 집회나 농성장에 같이 갔어요."

그 아이들은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이제 고3, 고2, 초등학교 5학년이 됐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처럼 보이는 김 위원장의 지난 10년은 '평범하지 않은' 아내 임경옥씨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임씨 남편 사면신청... 삼성 본관 앞에 서다

삼성과 질긴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에게 'X파일' 사건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임씨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봐도 삼성이 정계, 언론계, 법조계를 손에 쥐고 갖고 놀았던 사건 같다"고 표현했다.

임씨는 또 "언론이 삼성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하고 삼성 노동자들이 고통받아온 것에 대해 제대로 보도했으면 좋겠다"며 언론에 대한 쓴소리를 빼놓지 않았다. 'X파일' 얘기가 나오자 임씨는 "차분한 남편도 (이번 사건으로) 혈압이 많이 올라 있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수감 전부터 고혈압으로 고생하던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수감 이후 건강이 더 좋지 않다.

김 위원장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그 당시 대표발의한 '삼성의 불법 및 부당노동 의혹 행위 조사를 위한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요구하며 17일간 단식한 후유증으로 치아를 두 개나 빼기도 했다.

임씨는 이번 8.15사면을 앞두고 남편에 대한 사면을 신청했다. 2003년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으로 확정판결된 사건에 대한 사면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현재 진행 중인 상고심에서 실형을 받더라도 3년의 징역이 추가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씨는 3일 오전 10시 서울로 올라온다. 이날 삼성본관 앞에서 열리는 'X파일 진상조사 및 김성환 위원장 석방'을 위한 시민단체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1인시위를 벌이기 위해서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임씨는 "남편이 즉시 사면되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배달 일에 나섰다.

삼성일반노조? 계열사·하청·협력업체 노동자 포괄

지난 2003년 설립된 삼성일반노조는 삼성그룹 계열사와 사내 하청·협력업체 노동자 등을 포괄하는 초기업 단위 노조다.

2003년 1월 설립신고서를 냈으나 조합 가입 대상에 해고자를 포함시켰다는 이유로 신청이 반려돼 그해 2월 이 부분을 수정, 다시 신고서를 제출해 신고증을 받았다.

삼성일반노조는 이후 조합원 총회에서 해고자를 포함하는 형태로 조합 가입 대상을 변경하고 기업단위를 넘어서는 노조 형태를 갖췄다.

삼성계열사 노동자들의 노조설립 활동을 지원하고 삼성의 노동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는데 주력해왔다. 그러나 조합원의 신변안전을 고려, 규모와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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