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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는 나름대로 귀여웠건만..
어릴때는 나름대로 귀여웠건만.. ⓒ 양중모

그런데, 오늘 내게 '올드보이'만은 못해도 '친절한 금자씨' 정도의 반전을 뛰어넘는 반전이 일어났다. 그래도 '내가 한 인물 하지'라는 말기 왕자병적 증세를 한 번에 날린 일이 터진 것이다. 8월 한 달간 쓰고 싶었던 기사를 쓰고자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닌 후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이었다.

"땡."

조용한 전철 안에서 한 꼬마가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가만히 보니 콜라캔이었다. 아이의 엄마가 옆에 있었기에 난 당연히 주우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아줌마는 꼬마가 '어떻게 해'라고 묻자 '가만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일이 있나. 적어도 자기 자식에게는 제대로 가르쳐야 할 것 아닌가.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불쌍한 아저씨를 보고도 단 한번도 발동하지 않았던 내 동정심이 엉뚱하게도 이 때 시동이 걸렸다.

'그래, 내가 한 번 주워주자. 그러면 무언가 깨닫는 게 있겠지. 그리고 휴그랜트급 눈웃음을 한 번 날려 주는 거야.'

학생시절만 해도 괜찮았는데..
학생시절만 해도 괜찮았는데.. ⓒ 양중모
스스로의 계획에 만족하고, 성큼 성큼 일어나 콜라캔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내리기 직전 살며시 웃어주며 아이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려는 순간 예상외의 반격이 날아들었다. 그 아줌마가 얼굴을 찡그린 채 "으이그"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다소 기분이 상했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난 참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바로 내려서 내 눈웃음을 보지 못했겠지.'

무언가 착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계단으로 올라가려 하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계단 위를 올라가는 한 할머니 뒷모습이 내 눈에 확 꽂혔다. 여태껏, '나도 바뻐'라고 쉽게 휙, 휙 지나치기 일쑤였건만, 오늘 따라 착하디 착하게 행동하고만 싶어졌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까요?"

난 다시 한 번 내 눈웃음을 믿고 살짝 미소를 보여주며 가방을 확 들어올렸다. 그리고 성큼 성큼 걸어 올라가려는 순간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잡아 당겼다.

'뭐지, 귀신인가?' 아래를 내려다 본 순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할머니 짐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설마 내가 도둑놈으로, 소매치기로 보였던 것일까.' 끓어오르는 의혹을 억누르면 간신히 계단 위까지 올라왔다.

"총각 고마워. 됐으니까 여기서부터는 내가 할께."

그 '설마 날 도둑놈으로'라는 의심이 확정적으로 굳히기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올라갈 계단이 더 있는데, 나보고 빨리 가라고 휙휙 손짓을 해보인 것은 그만큼 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할머니의 눈웃음이야 말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제는 폭력배가 따로 없다.
이제는 폭력배가 따로 없다. ⓒ 양중모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집에 들어와 거울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잘 웃고, 남의 일에도 쉽게 아파해주던 내 모습은 사라지고, 의심 많고, 동정이라는 건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들어서 있었다.

난 변한 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사람들 앞에서 가짜 웃음을 보여주는데도 익숙해졌나 보다. 뇌는 억지웃음과 진짜 웃음을 구별할 줄 모른다지만, 사람을 오래 겪은 사람들 눈에는 보이는 게 아닐까. 대학교 졸업반에 접어든 후 경험한 사회생활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웃음 뒤에 짜증과 피로가 보인다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오늘부터 다시 웃는 연습을 해야겠다. 옛날 한 화가가 한 인물의 어린 시절 모습은 천사로, 자란 후에는 악마로 그렸다는 얘기도 있지 않던가. 고객에게 웃음을 보여야 내게 돈이 들어온다는 생각으로 연습하는 웃음이 아닌, 그냥 사람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한 그런 웃음을 연습해야겠다. 더 늦으면 영영 티 없이 웃는 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덧붙이는 글 | 제 사진 올릴까 말까 정말 고민 많이 했습니다. 너무 추해서,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비교 평가를 위해 한 몸 희생했습니다. 근데 편집당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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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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