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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부도밭
동학사 부도밭 ⓒ 김유자

동학사에 닿기 직전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 계곡 건너편에 있는 부도밭입니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4년) 회의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는 오래 된 절이지만, 유서 깊은 역사와는 달리 절집은 고색창연한 맛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이 부도밭은 동학사에서 고풍스러움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곳 가운데 하나지요. 부도밭으로 가려면 징검다리 아닌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뛰어 계곡을 건너갑니다.

여남은 개의 부도가 갖가지 모양으로 나그네를 반깁니다. 고결한 삶을 살다 가신 옛 선사들의 죽음이 낳은 조형미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다시 계곡을 건너와서 아까 갔던 길을 따라 갑니다.

동학사 대웅전
동학사 대웅전 ⓒ 김유자

대웅전 문살. 소나무, 대나무, 국화  무늬가 문살을 장엄하고 있습니다.
대웅전 문살. 소나무, 대나무, 국화 무늬가 문살을 장엄하고 있습니다. ⓒ 김유자

이미 말씀 드렸다시피 동학사의 절집은 당우들이 고색창연하지 않습니다. 질서를 잃고 흐트러져 있습니다. 아마 비구니들의 교육기관인 승가대학이 들어서고 그에 따른 부속건물을 잇따라 짓다보니 그렇게 된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크게 실망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소나무, 대나무, 국화 등이 새겨져 있는 대웅전 문살의 아름다움이 맨 처음의 상실감을 약간은 보상해드릴 겁니다.

늦은 서리를 맞고도 그 청초함을 잃지 않는 국화는 길상의 징조와 상서로움의 상징이고요. 사찰 문양으로서의 대나무는 세속의 이미지인 지조보다는 오래 살기를 바라는 축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나무 또한 그러하고요.

동학사 삼성각에서 올려다 본 계룡산 능선
동학사 삼성각에서 올려다 본 계룡산 능선 ⓒ 김유자

그래도 절이 왜 이리 옛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느냐고 투정하시는 분이 있으시거든 대웅전 바로 왼 쪽에 있는 삼성각을 들여다보시기를 권합니다.

예전의 대웅전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 건물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충남 문화재 자료 제 57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성각은 치성광 여래불과 독성(벽지불),산신을 모신 곳입니다.

장대석을 외벌대로 쌓은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워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건립된 건물이랍니다.

산비탈에 피어있는 참나리꽃
산비탈에 피어있는 참나리꽃 ⓒ 김유자

동학사를 나서 관음봉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이어지니 신발 끈을 조여야 합니다. 동학사와 관음봉의 중간에는 은선폭포라는 절경이 있습니다. 그곳까지 가려면 1.7km 가량 되는 가파른 산길을 타야할 것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산길 옆 벼랑 끝에 핀 참나리꽃이 사무치게 곱습니다. 검은빛이 도는 자주색 점이 빽빽이 박혀있는 참나리는 아침햇살 아래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모습을 드러낼 때 더욱 청초하더군요.

아침의 연무가 아름다운 은선폭포
아침의 연무가 아름다운 은선폭포 ⓒ 김유자

은선폭포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어서 사람의 진을 흠씬 빼놓습니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가 지친 다리가 더는 못가겠다고 땡깡을 부리기 시작하면 선심 쓰듯 은선폭포 전망대가 나오고, 그 전망대에 오르면 선녀들이 숨어서 목욕을 했다는 들으나마나 한 전설이 전해오는 은선폭포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침 물안개가 아름다운 은선폭포

장마의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폭포를 구비치는 물굽이가 힘차기 그지없습니다. 물안개가 서린 아침이 은선폭포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하는 때라고 하지만, 이만해도 천하절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망대에 모여 폭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가에서 쉴 새 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이젠 은선대피소가 돼버린 옛 은선산장. 이젠 겨울에 누가 새들에게 모이를 줄까.
이젠 은선대피소가 돼버린 옛 은선산장. 이젠 겨울에 누가 새들에게 모이를 줄까. ⓒ 김유자

가지 말라고 소매를 꼭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 은선폭포 전망대를 야멸치게 뿌리치고 빠져나와 조심스럽게 몇 걸음만 더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하얀 건물이 보입니다.

여기가 오늘 제 산행의 목표인 은선산장이랍니다. 예전에 제가 관음봉을 넘어 갑사로 가는 길에 빠지지 않고 들르던 참새 방앗간 같은 곳입니다. 아들은 컵라면을 들고, 저는 산장 주인이신 김기순 할머니(78세)와 이야기를 나누다 가곤 했습니다.

산장의 문을 열려고 잡아 당겼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산장의 문이 굳게 잠겨 있으니 말입니다. 그제야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니 산장은 이름마저 은선 대피소로 바뀌어 있었던 것입니다.

산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업둥이를 데려다 키운 산장 할머니

작년 겨울이라 해야 불과 몇 개월이 전인데 그새 산장이 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그때 이곳에 들렀을 때 산장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할머니의 맏며느리인 정애진씨였습니다. 산새를 벗 삼아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계룡산을 지켰던 김할머니께서 치매를 앓고 계신 시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마을로 내려가셨기 때문입니다.

계룡산에 눈이 쌓여 산새들이 먹이를 찾기 힘든 겨울철이면, 김할머니께서는 모이를 손에 쥐고 산새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면 박새, 곤줄박이 등 산새들이 할머니의 손바닥까지 포르르르 날아와서 모이를 물고 갔답니다.

김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이나 지역 매스컴에 소개돼 계룡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계룡산을 오를 때마다 이 곳에 들르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답니다.

예전에 이 은선산장에는 일곱 살 때부터 데려와 키웠다는 업둥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들과 똑같이 정신지체 1급이었던 이 업둥이를 처음 본 것은 아마도 그가 스무 살 후반 무렵이었을 겁니다. 여기 들를 대마다 그 업둥이를 보고 있노라면 제 아들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 한 쪽이 저려오곤 했습니다.

재작년 겨울인가. 제가 이곳에서 쉬고 있으려니까 며느리가 지게에다 라면 두 박스를 지고 올라오더군요. 눈길을 헤치고 동학사에서 이곳까지 거지반 5리가 다 되는 길을 끙끙대며 말입니다.

정말이지 요즘 그런 며느리가 어디 있습니까. 노가다꾼도 아니고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선뜻 이 곳까지 지게를 지고 힘들게 올라오겠습니까?

그분을 위로할 겸 슬그머니 그 업둥이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고 올라오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 업둥이도 나이가 들더니 점점 꽤가 늘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지게를 지려 하지 않는다더군요.

김할머니도 그렇지만, 며느리도 자기 할 일이 따로 있고 게다가 젊기까지 하니 아무래도 산장을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거라 짐작합니다.

때때로 나를 멈추게 했던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산길을 터덕터덕 내려왔습니다. 이런 어미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하산 길 내내 뭐가 그리 좋은지 앞서 가는 아들 녀석은 마냥 희희낙락 합니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바퀴에 대한 명상'이란 부제가 붙은 반칠환 시인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반칠환 시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전문


비록 제가 시인은 아니지만,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한 포기가, 그 포기하지 않는 생명이 기특해서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저라고 왜 없겠어요?

바쁘지도 게으르지도 않은 손놀림으로 나물을 다듬는 할머니의 손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그 뒷모습에 담긴 쓸쓸함에 오래도록 눈길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제 걸음을 멈춰 서게 하는 것은 아들의 뒷모습입니다. 새끼를 키우는 세상의 어미들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말입니다. 멈춰 서서 아들을 바라보는 순간마다 "저 녀석을 어찌 키워 사람 구실을 하게 만드나" 싶어 수 십 번, 수 백 번도 더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팍팍한 세상살이에도 어디에선가는 반전의 기미가 움트고 있기 마련입니다. 시인도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힘을 내 아무 일 없는 듯이 살아가곤 합니다.

저를 멈추게 하는 힘이 무엇이냐고요? 그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는지요. 그 사랑의 내용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 거짓말처럼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물놀이하는 아들. 바캉스라고 꼭 멀리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말해주는 듯 합니다.
물놀이하는 아들. 바캉스라고 꼭 멀리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말해주는 듯 합니다. ⓒ 김유자
이 생각, 저 생각하다보니 어느 새 동학사에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물가에 앉아 잠시만 쉬어 가기로 합니다. 아들은 어느 새 계곡으로 들어가 혼자서 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바위에 걸터앉은 저는 그냥 먼산바라기로 앉아 있습니다.

산은 내게 말 합니다. 애써 가르치려들지 마라. 다만 느끼게 하라. 그렇습니다. 제 목표는 제 아들에게 세상을 좀 더 많이 느끼도록 해주는 겁니다. 비록 말도 못하고 판단력마저 없지만 느끼는 것만큼은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지 않겠어요?

스무 살의 청년인 아들이 스스로 산을 느끼고, 바다와 강을 느끼고,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껴안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하는 것. 거기까지가 제 욕심입니다. 제가 너무 지나쳤나요?

산자락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요. 그때 가장 먼저 태양이 뜨는 곳이 제 마음의 가장자리가 되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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