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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건물 외벽에 설치된 CCTV
도로변 건물 외벽에 설치된 CCTV ⓒ 조수호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발생, 8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런던 폭탄테러의 용의자를 찾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지하철 역사 곳곳에 설치된 CCTV(폐쇄회로TV)다.

경찰은 사건 직후 곧바로 런던 지하철역 내 설치된 6천여 개 CCTV에 대한 자료 분석에 들어갔다. 경찰이 집중적으로 뒤져본 테이프는 6천여 개였지만 전체분량은 2만여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다 CCTV 보유... 영국인 14명 당 1대 꼴

현재 전 세계에는 2000만대가 넘는 CCTV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20%가 넘는 약 430만대가 영국에 설치돼 있다. 단연 최다 보유국이다. 영국인 14명당 1대꼴로 CCTV가 설치된 셈이다.

게다가 영국인들은 CCTV 설치에 매우 긍정적이다. 2002년 9월부터 2004년 2월까지 유럽협의회(EC)가 실시한 '도심안프로젝트(Urban Eye Project)'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민의 90.5%가 쇼핑센터에 CCTV를 설치하는 것에 찬성했고, 공중화장실에 CCTV가 설치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52%에 달했다.

런던 근교 한 기차역 매표소에 설치된 CCTV
런던 근교 한 기차역 매표소에 설치된 CCTV ⓒ 조수호
특히 런던 시민 66%가 길거리 CCTV 설치를 환영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런던 시내 곳곳에 설치된 CCTV는 줄잡아 50만개로 추정되고 있다. 지하철 내외부에 설치된 CCTV만도 약 8천대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CCTV가 설치된 이유는 영국인들의 범죄공포 때문이다. 위 조사에 참가한 베를린 대학의 에릭 퇴퍼 교수는 2004년 2월 <인디펜던트>와 <로이터>에 "영국인들은 1993년 발생한 아일랜드공화군(IRA) 등의 폭탄 테러 위협으로 유럽에서 가장 범죄 공포를 많이 느끼고 있으며, 이 공포를 누그러뜨리는 데 CCTV가 한몫 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아울러 같은 해인 1993년, 2명의 10세 소년이 3살 유아를 살해한 일명 '제이미 벌거 사건' 당시 용의자 파악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던 CCTV에 대한 신뢰도가 급증했다고 조사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경찰 측의 CCTV 옹호론 또한 CCTV 대량 설치를 부추기는 주요 원인이다. BBC는 2002년 8월 "경찰 측은 지속적으로 CCTV 옹호론을 펴왔다"고 보도하면서 그 이유로 높아진 유죄 판결률을 들었다. 영국 내무부 산하 범죄감소 담당 경찰관 휴 매리어지도 같은 기사에서"CCTV 화면은 유죄 판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하며 적극 찬성의 뜻을 보였다.

아울러, 집권당 노동당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범죄 감소를 위한 대범죄 강경책으로 CCTV 사용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CCTV, 효과는 있는가?

각종 CCTV들과 CCTV가 설치됐음을 알리는 안내표지판.
각종 CCTV들과 CCTV가 설치됐음을 알리는 안내표지판. ⓒ 조수호
그렇다면 이 수많은 CCTV가 실제로 범죄 예방 및 감소에 효과가 있을까.

'영국 범죄자보호 및 정착을 위한 협회(Nacro)' 소속 범죄학자 레이첼 아미타지는 2002년 BBC 관련 기사에서 "CCTV가 마치 '마법 총알'인 양 과장되어 왔다"며 "경찰수사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이득을 낼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2002년 영국 내무부에서 발간한 보고서 'CCTV 평가 고찰'에 따르면, CCTV가 범죄 감소와 예방에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보고서는 당시 24개 CCTV 설치 장소의 사례 연구를 통해 "13개 장소에서는 범죄율이 감소했지만 4곳에서는 오히려 급증했으며 나머지 7개 장소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영국 국가 통계청도 "1994년 이후 영국 내 범죄율은 강도, 살인 등 중범죄 중심으로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런 범죄율 감소가 CCTV 때문이라는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 범죄학자 글로리아 레이콕은 2002년 BBC 기사에서 "일상에서는 CCTV가 범죄보다는 교통 흐름 파악과 제어 등에는 큰 도움이 된다"며 "실제 생활 현장에서는 카메라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와 설치 위치, 설치 후 관리 등에 따라 범죄에 대한 효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인권 침해? 오히려 없으면 불안하다

"당신은 어제 오전 11시 35분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지하로 내려가 런던 워털루 역 직행 고속 기차를 타고 12시 07분 워털루 역 18번 플랫폼에 도착, 도보로 인근 런던아이 호텔로 갔다. 이어 14시 10분 쥬빌리 라인 지하철을 타고 웨스트민스터 역에서 내려 빅벤과 국회의사당 건물을 감상했다. 의사당 앞에서 38번 버스를 타고 버스 이층 맨 뒷자리에 앉아 본드 스트리트에 15시 37분경 진입해 셜록 홈스 박물관으로 들어가 약 47분간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나와 차링크로스 로드 쪽으로 걸어가 38번 버스를 타고 그 버스 이층 맨 앞 자리에 앉아 시내 경치를 감상하다 곧 잠이 들었다."

영국 전역에서 하루에 쏟아지는 CCTV 비디오 자료는 1천만 개에 달한다. 위와 같은 가공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는 것. 영국 전역에 약 430만대가 설치돼 1인당 하루 평균 300번 씩 화면에 담기게 된다. 특히 CCTV 천국으로 불리는 런던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언제 어디서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쇼핑센터, 주차장, 버스, 열차 역, 공중 화장실을 넘어 일반 길거리까지.

건물 외벽에 설치된 CCTV
건물 외벽에 설치된 CCTV ⓒ 조수호
그러나 이러한 CCTV가 야기하는 부정적 효과, 즉 개인의 사생활 침해, 이동의 자유, 인권 침해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영국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올해 영국 내무부에서 발간한 'CCTV의 효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CCTV가 그 효과가 떨어진다고 해도 국민들은 대부분 CCTV에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조사 중 CCTV 제거 요청 사례는 전혀 없었다. 아울러 보고서는 CCTV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또한 위에 언급한 '도심안 프로젝트'에 따르면, 시민 권리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압력 단체인 '리버티(Liberty)'도 CCTV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영국인들 대다수는 오히려 CCTV가 없으면 불안하다고 말하고 있다. 칠레 유학생 안드레아는 "처음에 영국에 왔을 때는 온통 CCTV가 널려 있어 범죄자가 된 듯해 기분 나빴지만 이젠 없으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런던 테러로 CCTV 인기 지속

"이 장소는 CCTV가 작동하고 있음"이라고 알리는 표지판
"이 장소는 CCTV가 작동하고 있음"이라고 알리는 표지판 ⓒ 조수호
특히 이번 7.7 테러 후 용의자의 행적과 얼굴이 담긴 CCTV 자료 화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CCTV'는 테러 대책의 주요한 키워드로 자리잡게 됐다. 시민들의 폰카 사진으로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지만 CCTV가 주는 '심리적 위안'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이 가운데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이 장착된 신형 CCTV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거동 수상자를 범죄나 비행 이전에 탐지할 수 있는 감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크로마티카'를 단 카메라도 시범적으로 설치 운영되고 있다. 2002년 이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한 킹스턴 대학의 벨라스틴 교수는 당시 BBC에 "열차 선로에 뛰어 들어 자살하려는 사람의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당은 여론에 힘입어 대 범죄 강경책에 더욱 고삐를 죄고 있는 상황이다. 영국 내무부에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지출한 CCTV 설치 관련 비용은 2억5천만 파운드(약 5천억 원)에 이른다.

이와 관련, '도심안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 맥카일과 노리스는 "영국 정부의 CCTV 늘이기는 공공영역에 대한 사적 지배력을 증가시키는 이데올로기와 맞아 떨어진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인들의 CCTV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개인 프라이버시에 민감하고 속내를 드러내는 데 인색한 영국인들의 성향과 개인의 행동을 부지불식간에 철저하게 노출시키는 CCTV는 아이러니한 영국 상황을 역설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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