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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으시고 준수도 일어서 걷게 되면 모여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한 약속을 이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여름엔 시원한 막국수가 최고라며 아버지는 막국수를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깟 막국수 비싼 돈 들여 먹으러 가느니 집에서 밀가루 반죽해서 칼국수 썰고, 콩물 만들어 콩국수 먹는 게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더운데 애쓰시지 말고 이번엔 가서 편안히 드시고 오라는 아내의 설득에 어머니도 나중에는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고향집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출발하자마자 잠에 떨어진 광수 녀석은 다 왔으니 내리라는 말에 부스스 잠을 깨더니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언제부터 비가 왔냐며 놀랐습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반겨 맞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안 보여 어디 계시냐고 했더니 논두렁 깎다가 소나기를 만나 쫓겨 들어와 씻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쳤나봐요."

창밖을 바라보던 아내의 말입니다. 과연 엄청나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처마에서 쏟아지는 낙숫물의 기세도 한풀 꺾였습니다. 마당을 타고 도랑으로 흘러들어가던 물줄기도 튀어나온 돌을 만나면 쉬어가자며 머뭇거렸습니다. 하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한두 번은 더 쏟아질 거야."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소나기는 삼형제라는 겁니다. 세 번 정도 기세 좋게 쏟아져야 하는데 이제 한번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과연 잠시 뒤에 또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 쏟아지는 농촌 들녘이 솜씨 좋은 화가가 그린 한 폭의 풍경화처럼 느껴졌습니다.

ⓒ 이기원
"준수, 광수 왔구나."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셨습니다. 막국수 먹으러 갈 텐데 논두렁은 왜 깎으셨냐고 했더니 맥 놓고 앉아 있는 것보다 꿈지럭거리며 기다리면 시간도 잘 간다고 하십니다. 논두렁은 늘 어머니 몫입니다. 아버지는 제초제 뿌리면 될 걸 왜 깎느냐고 성화를 하시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제초제 찾을 기미만 보이면 낫 들고 나가 직접 깎으십니다.

"얼른 준비해. 둘째네 기다리겠다."

제초제 고집하던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올까 걱정이 되셨는지 아버지는 빨리 가자며 재촉을 하셨습니다. 둘째는 성질이 급하지 않아 미리 와서 기다리지 않을 거라며 어머니는 고추, 가지, 호박 등을 아내에게 챙겨주느라 분주하십니다.

빗줄기가 다시 가늘어졌습니다. 찬거리를 다 챙겨주신 어머니가 이젠 가자고 하십니다. 다들 차를 타고난 뒤 마지막에 문단속을 하신 어머니가 차에 오르셨습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다시 출발하니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습니다.

"소낙비 시원하게 잘 온다."
"덕분에 더위가 한풀 꺾였어요."
"그러게 말이다."

아버지와 내가 주고받은 말입니다. 뒷좌석에 아이들과 끼어 앉은 어머니와 아내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소낙비가 와서 그런지 춥다."
"비 맞으며 논두렁 깎으셔서 그런 거 아녜요?"
"글쎄다."
"그럼 막국수 드시면 안 되겠네요."
"그럼 뭘 먹냐?"
"그 집에 갈비탕도 있어요. 따끈한 갈비탕 드세요."
"그래야겠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에 빗물이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산 중턱까지 비안개가 하얗게 내려앉았습니다. 그 풍경화 속으로 자동차 한 대가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그 자동차도 풍경화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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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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