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대덕산
ⓒ 정성필

삼봉에서의 내리막길은 험하다. 돌이 여기 저기 깔려있었고, 돌은 불안정하게 위치하고 있어 잘못 디디면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산에서의 사고는 오르막길 보다는 내리막길에서의 사고가 더 많다.

온 신경을 쓰면서 삼봉을 내려간다. 지도상으로 보면 소사재가 곧 나올 듯하다. 급경사를 약 삼십 분 넘게 내려오니 우측으로 절개지가 나온다. 산을 무자비하게 깎아 놓은 곳. 흙이 허벅지 같은 속살로 땡볕을 받고 있는 곳. 불도저의 캐터필더가 우악스럽게 흙을 움켜쥐었던 흔적까지 백두대간이 옷 벗긴 채 맨살로 누운듯해 가슴이 아프다.

물을 찾아야 한다. 이미 내리막 어딘가에서 물을 다 마셨다. 날은 뜨겁고, 몸은 지쳤다. 배낭을 내려놓고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비껴서 물을 찾았다. 이만큼 산에서 지내면 물 냄새도 맡을 줄 알게 되나보다.

우측으로 한 이 십 여 미터 가니 누군가가 물을 받기위해 플라스틱 파이프를 설치했는데 설치한 파이프가 깨졌는지 물이 새고 있다. 처음 물은 받아 마셨고, 다음 물은 머리에 부었다. 그리고 나머지 물은 물통에 채웠다.

▲ 소사마을의 가게/종주기가 많이 붙어있다
ⓒ 정성필

산에서의 욕심은 다른 게 없다. 물이 욕심이고, 물이 전부다. 산에서는 물이 있어야 산다. 물을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혼자 대간길을 걷는 나에게는 돈도, 명에도 다 필요 없다. 물만 있으면 되고, 우선 먹을 쌀만 있으면 되고, 이슬을 피할 잠자리만 있으면 된다. 백두대간은 나에게 가장 소박한 본능을 되돌려 주었다. 산위에서의 욕심과 산 아래서의 욕심은 다르다.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선다. 눈앞에 대덕산이 우뚝 서있다. 길은 직선으로 가야 대덕산으로 간다. 하지만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대간금에서 약간 비껴 소사 마을로 내려갔다. 수만 평의 채소밭 사이로 난 길로 내려가는 동안 멀리 대덕산이 부드럽게 소사분교와 목장을 껴안고 있다. 거칠고 우악스런 백두대간인줄 알았는데 대덕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보여주는 수 만평의 채소밭과 널찍한 목장의 목초지의 풍경에 어머니의 품 같다.

소사마을로 내려선다. 가게가 하나 있다. 가게 앞에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곳에는 백두대간종주기가 수 없이 매달려있다. 마루금에서 비껴 내려온 터이라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대간금으로 가려면 고생 좀 하겠다 생각했는데, 맞는 길이란다. 대부분의 종주대가 이 가게에서 부식을 보충하고 간단다.

▲ 소사고개
ⓒ 정성필

이곳이 백두대간의 중간 휴식처가 되어 수많은 종주기가 나무에 붙어있는 거란다. 반가웠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가장 시원해 보이는 하드를 하나 꺼내들고 먹는다. 얼마 만에 맛보는 시원함인가? 하늘엔 구름이 높이 흘러간다. 시각은 4시 30분정도였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듯하다. 험난한 암릉지대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온 일 그리고 물이 떨어졌을 때의 절망감과 물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짧은 시간동안 스쳐지나간다.

가게 앞으로 도로가 있다. 대간은 도로를 따라 십 여 미터 올라가다 소사고개 위에서 좌측 길로 들어서면 된다. 가게 안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수박을 쪼개놓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막걸리에 수박 안주라. 이렇게 더운 날씨이니 가능한 조합이라 생각한다. 수박이 먹고 싶어진다. 얻어먹자 하고 싶었지만, 달라할 수 없다.

산에서면 염치불구하고 달라했을 덴데. 여기는 마을이다. 군대용어로 치면 여기는 민간인 지역이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정서가 다르다. 게다가 나는 백두대간 연속종주 하는 사람 아닌가? 산에서는 백두대간 연속종주가 의미가 있겠지만 산 아래서는 의미가 없는 일이다.

▲ 소사마을에서 본 삼봉
ⓒ 정성필

게다가 내 모습이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정신 나간 놈으로 비칠지도 모를 일이어서 참는다. 군침이 입안 가득히 괸다. 도로는 앞에 있고, 날은 더웠다. 햇빛이 공처럼 시멘트 도로에 튀어 온몸에 부닥쳐온다. 복사열에 숨이 막힐 듯하다.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 도로를 따라 가면 어디가 나오냐고? 우측으로 가면 거창이 나오고, 좌측으로 가면 덕산재가 나온단다.

배낭을 풀었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 사는 민가가 게다가 가게가 있으니 부족한 것은 보충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따져본다. 쌀이 곧 떨어질 듯하다. 부식도 거의 없다. 부탄가스도 내일 아침이면 떨어질 듯하다.

▲ 소사마을에 내려 논 배낭
ⓒ 정성필

가게 주인에게 쌀과 나머지를 구할 수 있냐 물어본다. 쌀과 김치는 팔지 않는단다. 얻자 할 수 도 없다. 조금 망설이다, 거창 가는 버스 언제 오는지 물었다. 5시 10분에 지나간단다. 탈출하겠다고 결심한 건 아닌데, 갑자기 보충할 물품과 떨어진 건전지, 수박 한 통 시원하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배낭을 다시 꾸려 버스 타는 곳으로 간다. 이미 시간은 5시를 넘어섰다. 버스가 온다. 미련 없이 버스를 탄다. 거창으로 간다.

덧붙이는 글 | 1004년 5월 16일 부터 7월 4일 백두대간 동안 무지원 단독 연속종주 이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