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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의 수수께끼' 음반 표지
ⓒ 신나라
“소리꾼 장사익이 일본 오사카의 교포들을 울리고 웃겼다. 지난 6월30일 오사카국제교류센터 공연장에서 열린 ‘한국의 혼-노래와 춤’. 1100석의 객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다. ‘열아홉 순정’을 들으며 미소 짓던 600여명의 교포들은 마지막 곡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지난 7월 6일 경향신문의 ‘촌놈 소리꾼 장사익 일 혼빼다’ 기사의 일부다.

또 6월 26일 같은 신문 ‘실크로드의 중심에서 목 놓아 부른 아리랑’이란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지난 11일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 가장 큰 민속행사인 단오 축제가 열린 것이다. 행사 마지막은 ‘아리랑’ 합창으로 마무리됐다. 각 지역에서 모인 500여명 고려인들은 갈 수 없는 고향과 조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담아 ‘아리랑’을 목청껏 불렀다. 손에 손을 맞잡은 고려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눈에는 어느새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우리 겨레에겐 ‘아리랑’이 있다. 배달겨레임을 한 번에 드러내는 이 애잔한 노래 ‘아리랑’. 이 ‘아리랑’을 들으면 배달겨레 특히 해외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동포들의 눈에서 한없는 눈물을 쏟아진다.

이 ‘아리랑’은 과연 무엇일까? '○○아리랑'처럼 뒤에 '아리랑'을 붙인 다른 아리랑과 구별하기 위해 ‘본조(本調)아리랑’이라고도 하는 이 아리랑은 어느 때부터 불리기 시작하였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아주 먼 옛날부터 조금씩 덧붙이고, 고치면서 오늘의 노래가 된 듯하다.

이 노래는 세마치장단이 기본이어서 우리의 정서에 알맞고, 내용도 한말(韓末)에서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이 겨레의 슬프고도 분한 감정을 탈색하여 표현한 것으로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아리랑이 불리며, 장단과 사설도 매우 다양하다. 즉 ‘본조아리랑’과 ‘신아리랑’ 외에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긴아리랑‘, ‘별조아리랑’, ‘아리랑세상’ 등 종류가 매우 많고, 그 유래에 관련된 설 또한 갖가지다.

▲ 나운규
'본조 아리랑'은 원래 나운규 감독, 주연의 영화 '아리랑' 주제가였다. 이 본조 아리랑의 갖가지 모양과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음반 '아리랑의 수수께끼'가 7월 27일 발매됐다. 신나라(회장 김기순)가 1953년 7월 27일 맺은 ‘정전협정(停戰協定)’ 기념일에 맞춰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낸 이 음반엔 북한제작 음원, 일제 강점기 음원, 일본 제작 음원, 남북공동 제작 음원 등을 모은 16곡의 본조 아리랑이 실려 있다.

신나라 정문교 사장은 강조한다. “광복 60돌을 맞았지만 아직도 1953년에 맺은 정전협정은 평화로 대체되지 못하고 세계에서 하나뿐인 분단국가로 남아 진정한 광복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겨레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이를 생각하고, 기원하는 마음으로 여러 음원을 한데 모은 16곡의 아리랑을 선보입니다. 광복 60돌과 유네스코 ‘아리랑상’ 제정을 기념해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음반을 내게 됐습니다.”

이 음반엔 쉽게 접할 수 없는 북한 출신 유명 음악인들의 노래와 연주도 담겨있다.

▲ 왕수복
특히 첫 곡 '본조 아리랑'은 1930~40년대 유명 연예인이었으며, 지난해 4월 북한의 애국열사릉에 묻힌 북한 최고의 민요가수 왕수복이 불렀다. 또 무반주 바이올린 곡인 '아리랑 변주곡'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입상자로 이 콩쿠르 종신 심사위원을 지낸 북한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백고산이 연주했다.

이 밖에도 가극 '피바다'에서 극 중 노래로 쓰인 '아리랑'도 소개돼 있으며, 1896년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오선보에 옮긴 ‘구조아리랑’을 북한 가수 배윤희가 부른 '헐버트의 아리랑', 나운규와 김영환이 공동제작한 ‘신아리랑’의 원곡을 북한 가수 태영숙이 녹음한 '구조 아리랑', 따위가 녹음돼 있다.

뿐만 아니라 재일교포 천재 지휘자 김홍재와 도쿄필하모닉이 일본에서 초연한 '아리랑 환상곡', 뉴욕 재즈 트리오가 재즈풍으로 편곡한 '블루코어 아리랑(Bluecore Arirang)' 등도 함께 수록됐다. 이와 함께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 작곡실장을 맡고 있는 리한우가 작곡한 민요 ‘아리랑 세상’을 주제로 한 환상곡(연주 김룡철), 북한의 해금 연주자 리윤찬이 소해금으로 독주한 ‘아리랑 변주’ 등 첫 선을 보인 작품들도 있다.

▲ 백고산
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 김연갑씨는 ‘아리랑’은 구한말 민중들이 부르던 저항가(抵抗歌)였다고 말한다. 김연갑씨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서 찾아낸 일본 신문 ‘유우빈호우치신분(郵便報知新聞)’ 1894년 5월 31일자에는 ‘조선의 유행요(朝鮮の流行謠)’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1894년 당시의 아리랑 노랫말에 “왜인(倭人) 등쌀에 나는 못살아”처럼 노골적인 반일 감정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아리랑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 우리 겨레의 저항의식을 심어준 노래일 것이다. 민중들의 독립운동가라고 불러야 될 듯싶은 노래이며, 아리랑은 사상과 지역, 세대를 초월해 불릴 수 있는 단 하나의 ‘겨레의 노래’임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이 음반은 그동안 우리가 쉽게 듣던 그런 단순한 아리랑이 아니다. 이 ‘아리랑의 소리’ 음반에 접하다보면 다양한 본조아리랑의 음률과 음색, 그리고 아리랑의 민족감정에 푹 빠질만한 좋은 경험이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각종 체육대회에서 남북응원단이 응원가로 ‘아리랑’을 같이 부르는 것을 익히 보았다. 그만큼 아리랑은 남북의 이질감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고, 나아가 통일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소중한 노래이다. 이런 아리랑이 어떤 선율들로 이루어졌는지 ‘아리랑의 수수께끼’를 들으면서 새삼 확인하는 것은 작은 통일운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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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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