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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이기원
다른 생명체들의 눈에 띄는 것이 결코 이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녀석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겠지요. 날카로운 발톱도 이빨도 없는 녀석들, 날개라고는 흔적만 남아 날 수도 없는 녀석들, 다리는 여섯 개나 있지만 빨리 달릴 재주가 없어 위급한 상황에서는 다리를 떼어 내고라도 도망가야 하는 녀석들입니다. 그래서 남들의 눈에 띄길 원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러 간 적이 있습니다. 시원한 맥주 맛과 흥겨운 대화에 취해 앉아 있는데 아르바이트 하는 아가씨가 서비스라며 쥐포 몇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고맙다며 받아 놓는데 그 아가씨가 머뭇대며 내게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 나세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제자라며 인사하는 녀석이 솔직히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어 보니 졸업한 학교와 이름을 얘기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거 같아 겨우 아는 체를 했습니다. 그 녀석은 즐거운 시간이 되시라며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졸업생들을 만날 때 녀석들은 선생님이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졸업 시키다 보면 흐르는 세월에 묻혀 기억하지 못하는 때도 많다는 걸 녀석들도 이해할 겁니다. 그래도 자신만큼은 기억해 주길 바라는 게 제자들의 바람이겠지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욕망 중에 하나는 타인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에서도 그러한 욕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숨길 필요가 없는 힘 있는 생명체의 특권이기도 하겠지요.

자신을 숨기며 사는 게 힘없는 생명체들이 사는 법이라면, 자신을 드러내길 바라는 게 힘 있는 생명체들이 사는 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습니다. 숨는다고 영원히 숨어살 수 없듯이, 내세우려 애쓴다고 무한정 이름을 휘날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남부럽지 않은 힘도 있고 돈도 많은 이들이 최근에 만천하에 드러난 자신들의 치부 때문에 곤경을 치르고 있습니다. 늘 그래왔던 관행일 뿐이었다고, 이미 죄 값은 치렀다고, 억울한 정치 공세일 뿐이라고 흉물스런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애쓰고 있습니다.

ⓒ 이기원
대벌레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숨기려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대벌레의 모습에 손가락질을 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그게 바로 대벌레가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도 있고 돈도 많은 이들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 애쓰는 모습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주어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는 대벌레의 치열한 삶의 고뇌를 그들에게선 찾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 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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