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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에서 산산이 산 시계
터미널에서 산산이 산 시계 ⓒ 고기복
우선 밑면에 영문으로 방수라고 써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시계 밑면 뚜껑은 손톱으로 떼면 뗄 수 있을 정도로 들려 있었고, 어느 나라 제품인지도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산산은 시계를 구입하게 된 경위를 얘기하며, 자신이 장사꾼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부천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을 기다리는데 건장한 체격의 한국남자가 타더니, 뭐라고 혼자 열심히 얘기하더니, 차에 탄 사람들에게 쿠폰 하나씩을 던져 주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버스 중앙에서 "자아~" 뭐라 뭐라 하더니 '36번'을 소리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얼마 안 있어 그 한국남자가 산산에게 다가와 "36번인데 왜 대답하지 않느냐"면서 다그치더니, "이거 당첨됐으니 축하한다. 시계 두 개와 볼펜 하나를 세금값만 딱 3만원 받고 드린다. 축하한다"며 막무가내로 물건을 떠넘기는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차는 곧 출발하려고 하는데 한국사람들이 다들 자기만 쳐다보는 통에 달리 말도 못하고, 달라는 대로 돈을 내고 물건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산산은 시계를 받고 나서야 찬찬히 뜯어보게 되었는데, 불량제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지만 차는 이미 떠난 상태였고, 어떻게 손 쓸 방도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산은 버스 안에서 시계를 팔던 사람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자아~~…." 저나 함께 있던 사람들 모두 배꼽을 잡고 산산을 지켜봤습니다.

보지 않았지만 과거 버스터미널 같은 곳에서 순진한 시골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의 수법이 훤하게 들어왔습니다. 이젠 그 사람들이 말이나 행동이 어수룩해 보이는 만만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똑같은 수법을 쓰나 봅니다.

그런 산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거 엉터리 시곈데 억울하지 않아요?"

산산의 대답은 한두 번 당하는 거냐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답하더군요.

"외국사람, 한국말 몰라요. 우리 바보예요."

산산은 3년 가까이 일했던 회사에서 퇴직금을 달라고 했다가, 출입국에 신고한다는 험한 말만 듣고 지난 2월 말 회사를 나온 후 노동부에 진정을 했지만 아직까지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형편이니 영악한 한국 사람들에게 당한 게 한두 번이겠느냐, 바보인 우리가 당해야지 하는 그의 대답은 어쩌면 이 땅에서 약자로 살아가는 자의 서글픈 처세술로 보였습니다.

어디 그가 바보이겠습니까? 자신을 바보라고 말한 산산은 아마 자신을 등쳐먹었던 사람들이 '바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속이고 취한 식물은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잠언20:17)' 된다는 진리를 산산을 등쳐먹었던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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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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