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를 잔뜩 머금은 불쾌지수 높은 칠월의 더위가 등줄기에 연신 폭포처럼 땀을 흐르게 하는 걸 보니 장마가 끝난 모양이다. 겨우 닷새 전 만해도 지루한 장마가 영원히 계속되리란 착각이 들만큼 지리산의 장마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지난 주 금요일(15일), 지리산을 온통 감싼 운무는 한치 앞의 풍경도 내주지 않은 채 도도하게 지리산의 풍경을 감추고 있었다. 가는비와 안개가 머리카락을 백발로 만들었던 장마의 끝자락에 노고단에 올랐다.
천왕봉에서 동서로 백리 거리를 두고 있으면서 지리산을 대표하는 봉우리 노고단.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진다. 늙을로(老), 시어미고(姑), 늙은 할머니를 위한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란 뜻의 노고단(할미단)이란 이름에서 이곳이 민족신앙의 성지로 신성시 됐음을 알 수 있다.
세석평전과 함께 신라 화랑의 심신 단련장으로 쓰이며 민족신앙의 성지로 신성시되었던 노고단이 훼손되고 수난당한 것은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의 피서용 별장으로 활용되면서부터였다.
조선의 풍토병에 속수무책이었던 벽안의 선교사들은 경치가 빼어나고 한여름에도 시원하며 맑은 물이 샘솟는 노고단에 별장을 짓고 조선 민중으로 하여금 가마를 메게 하여 이곳을 오르내렸다 한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빨치산의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군이 별장을 모두 불태우면서 노고단은 화마에 휩싸여 지금도 작은 관목류만 있을 뿐 큰 나무는 거의 없다. 무분별한 훼손으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맨땅이 고스란히 드러난 노고단은 지난 91년부터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해 산행을 통제하다 2001년부터는 제한적으로 탐방객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노고단 턱밑 성삼재까지 뚫린 지리산 관광 도로에서 쏟아내는 수십만의 인파 중 하나가 되어 노고단까지 지루하게 이어진 십리 안개 속을 걸어 노고단 고개 돌탑에 이르니, 새벽 6시 화엄사를 출발해 7km 가파른 산길을 세시간 동안 걸어 오른 동료들이 바람을 동반한 운무 속에서 백발노인이 되어 기다리고 있다.
단 한 명만 성삼재 잔류. 등반파 서른명, 성삼재파 서른명, 예순명의 어른들이 목에 원추리 사진의 패찰을 걸고 노고단 탐방에 나섰다.
덧붙이는 글 | - 국립공원 관리공단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탐방할 수 있습니다.
- 1일 4회, 1회에 100명(인터넷 예약 60명, 현장 선착순 4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