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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봉에서 본 덕유산
할미봉에서 본 덕유산 ⓒ 정성필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오를 때 암릉 구간이 나온다. 덕유 능선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할미봉 능선을 넘어야 한다. 밧줄을 잡고 오르내림의 반복이다. 처음으로 만난 험난한 구간에 힘이 빠진다. 가다 서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일이 잦아진다. 배낭은 밧줄을 잡고 오르고 내릴 때마다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뚱거린다. 할미봉을 오른다. 남덕유산을 보니 아뜩하다. 어떻게 저기까지 가나?

남덕유산과 장수덕유산이 거대한 장군의 동상처럼 우뚝하다. 암릉에서 암릉으로 위험구간을 간다. 천신만고 끝에 할미봉에 도착한다. 할미봉에서 보는 조망은 시원하다. 지난 밤은 몹시 춥게 잤다. 영취산과 남덕유산 밑 중간지대에 있는 평지리에서 잤다. 평지리 공원 팔각정 옆에서 텐트를 쳤다.

평지리에서 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백운산에서 내려올 때 만났던 산죽 터널은 신기한 체험을 하게 해주었다. 키가 넘는 산죽 사이로 난 길은 마치 터널을 지나는 듯했다. 꽤 긴 거리를 산죽은 터널처럼 길을 내주었다. 무령고개로 내려설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무령고개로 물을 찾아 내려갈 때 지도를 보니 15분 정도였는데 실제로는 30분이 훨씬 넘는 거리였고 때마침 해질녘이어서 마음의 조급함 때문에 탈출거리는 더 길게 느껴졌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는 지루하고 힘든 내리막이었다. 무령고개 위에 섰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텐트 칠 자리를 찾아보니 마땅한 곳이 없었다. 이미 백운산을 넘으면서 몸은 지칠대로 지쳤다. 하루 동안에 마신 물을 생각하니 2리터짜리 패트병 두 개를 비우고 작은 물병도 두 세 개 비운듯했다. 몸에서 모든 소금기가 다 빠진듯했다. 무령고개에 내려서니 긴장이 풀어진다. 몸이 무너지는 듯하다.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러나 편히 쉴 장소는 없다.

평지리에서의 텐트
평지리에서의 텐트 ⓒ 정성필
지나가는 트럭을 세워 막무가내로 태워 달라했다. 농사를 짓는 부부인데, 밭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백두대간 중이라 했더니 부부는 백두대간 하는 사람을 종종 태웠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몇 년 전 겨울에 혼자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분인데 나이는 사십이 넘은 분이었고, 물 때문에 무령고개로 내려와서, 자신의 트럭을 탔던 분이란다.

겨울에 종주를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여름에도 힘든데 어떻게 겨울에 종주를 할 수 있을까? 운전하시던 분이 겨울 종주하시던 그분의 이야기를 상세히 해주신다. 물은 눈을 퍼서 끓여 걸러서 마셨다 한다. 잠은 동계용 침낭과 텐트가 있어서 그리 춥지 않았다는 말도 전한다. 놀랍다. 나도 여름 종주가 끝나면 겨울 종주에 도전하리라 마음을 먹어본다.

농부는 백두대간 이야기 뿐 아니라 논개의 묘가 영취산 자락에 있다는 이야기부터, 이것저것 백두대간과 산에 대해 또 지역의 정보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매우 친절하다. 고맙다. 백두대간 종주꾼인 나보다 백두대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준비 없이 출발한 대간 종주꾼인 나는 창피했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할 수 없다. 나는 발로 걸어 백두대간을 알아가는 중이니 백두대간을 끝내는 시점 정도면 그 누구보다도 백두대간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트럭을 타고 내려가는 길이 한참이다. 이미 해는 지고, 무령고개에서 내려가 텐트 칠 자리를 찾으니 멀리 공원이 보인다. 공원에 가면 물도 있고 화장실도 있을 듯하다. 걷는다. 공원까지 트럭에서 내린 자리부터 걸으니 십 여분 이상 걸린다. 내를 건너 텐트를 친다. 어둠 속에서 텐트 치는 일은 쉽지 않다. 지붕이 있는 팔각정 안에 칠까하다. 아침에 사람들이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팔각정 아래 텐트를 친다.

ⓒ 정성필
십 미터 정도 가니 수도가 있다. 앞에는 커다란 내가 흐르고 있다. 하천에 내려가 온몸을 닦는다. 물이 얼음처럼 차다. 찬물이 땀절은 몸에 긴장을 준다. 저녁을 하고, 밥을 먹는다. 오랜만에 일지를 쓴다. 텐트안의 촛불이 흔들린다. 깜빡 잠에서 깨어보니 촛불이 거의 타 얼마 안남은 심지가 흔들리고, 나는 졸고 있다. 화들짝 놀라 촛불을 끄고 잠자리를 서둔다.

자는 내내 추웠다. 침낭을 여름용으로 가져온 게 몹시 후회가 된다.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추워서 자는 동안 아마 빙하의 꿈도 꾼듯하다. 추우니 무릎이 시려온다. 밤새 끙끙 앓았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아침에는 저녁에 해 놓은 밥을 먹는다. 김치 한 조각 없이 먹는 밥이 빡빡하다. 먹기 싫다. 하지만 먹어야 한다. 먹어야 간다. 먹지 않으면 걸을 수 없다. 먹는 일도 백두대간 중에는 의무다.

아침을 먹고 텐트를 접어 배낭에 넣는다. 배낭이 작아, 짐을 싸는데 시간이 걸린다. 배낭 안에 많은 것을 넣으려니 살살 넣어서는 다 넣을 수 없다. 배낭 제일 아래 침낭을 넣고 그 위에 옷가지를 넣고 발로 밟는다. 밟아서 부피를 줄인 후에 코펠을 넣고 나머지 짐을 넣는다. 텐트를 걷고 짐을 싸는데만 한 시간 가량이 소비된다.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줄일 수 없다. 문제는 배낭의 크기였다. 나는 백두대간을 시작해서야 일자형 배낭이 있다는 사실을 알 정도로 장비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중간에 배낭을 바꿀 수 없다. 다만 시작했으니 끝가지 가야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배낭을 다 꾸린 후 다시 무령고개로 올라가려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무령고개까지 가는 차편도 없다. 전날처럼 차를 얻어 타려니 쉽게 태워주지 않는다. 어제 너무 추워 잠을 잘 못 잤다. 몸에 무리가 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아침인데도 몸은 물먹은 스폰지 같다. 어제 무령고개를 내려오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리막에서 사 십 여분 이상 내려온 길인데 다시 오르려면 최소한 한 시간 이상 올라야한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육십령 오르는 길
육십령 오르는 길 ⓒ 정성필
무령고개까지 가면 어떻게든 영취산을 오르겠는데, 무령고개까지 가는 길이 없다. 아니 너무 멀다. 내려오기는 쉬웠는데, 다시 올라가는 길이 어렵다. 앞으로는 대간 마루금에서 함부로 내려가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일단 올라간 길은 함부로 내려가서는 안된다. 내려가기는 쉽지만 다시 올라가려면 몇 배의 힘이 든다. 고민한다. 결국 무령고개로 다시 가는 것을 포기한다.

영취산은 포기하고 육십령을 오른다. 육십령을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걸어가면 두 세 시간 걸린단다. 할 수없다. 아스팔트를 걷는 것은 산길을 걷는 것과는 다르다. 걷는 걸음은 편했지만 이미 뜨거워진 태양이 아스팔트를 달구어 발바닥이 뜨겁다. 수건으로 머리부터 얼굴을 감싸고 걷는다. 걷다보니 오토바이가 선다. 오전에 시골의 구멍가게에서 빵과 사탕, 초를 살 때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농부였다.

뒤에 타란다. 타고 오른다. 오토바이를 타고도 십 오 분 정도 간다. 육십령을 올라, 내가 걸었던 곳을 보니 까마득하다. 저 거리를 걸었다면 아마 오늘은 산행을 포기해야할 정도로 길고 긴 길이었다. 다행히 나와 갑장인 농부의 오토바이 덕분에 짧은 시간에 대간 마루금 육십령까지 올랐다.

육십령 휴게소에서 다시는 물 때문에 내려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2리터짜리 물을 하나 산다. 물만 4리터를 지고 다니기로 한다. 무거운 것보다는 물 때문에 마루금을 내려가는 일을 만들지 말자는 일종의 각오의 표현이다. 물과 함께 육십령에 식당이 있어 김치를 좀 얻는다. 김치를 보니 입안에 침이 가득히 고인다.

몸은 적응한다. 이 사실은 내가 단식을 통해서 얻은 사실이다. 몸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매우 복잡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나는 몸의 적응력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졌다. 처음 출발할 때 산행 초보가 “어떻게 백두대간을 완주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가졌다.

할미봉에서 본 암봉과 마을 풍경
할미봉에서 본 암봉과 마을 풍경 ⓒ 정성필
하지만 몸의 적응력을 믿었다. 처음 출발할 때 내 목표는 변화였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어리석게도 건강염려증 환자여서, 조금만 피곤해도 조금만 힘들어도 하던 공부도 다 못 마치고 잠부터 잤다. 그것은 사회생활에서도 계속되었다. 나약한 몸이 나약한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끈기도 없었다. 끈질기게 무언가를 해본적도 없었다. 끈기 있게 하나의 일을 완성해놓은 성과물조차 없었다.

직장에서도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나는 중간 중간 낮잠이나 토막 잠을 잤다. 잠 때문에 윗사람에게 곤란한 경우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허약한 몸의 논리는 낮잠이나 토막 잠을 지속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나약한 내 모습이 싫었다. 변하고 싶은 것은 마음뿐 아니라 내 몸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게으름부터 변하고 싶었다. 나의 게으름을 만들어내는 부실한 몸을 바꾸고 싶었다. 몸이 약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건강한 몸을 만들어 해내고 싶었다. 게으름을 버리고 싶었다. 잠을 줄이고 싶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싶었고, 규칙적인 생활로 내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처음 출발할 때 일주일만 버티자, 그러면 몸이 적응해서 서서히 배낭의 무게와 산행을 이길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두 주만 버티면 배낭도 내 몸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아직도 힘들다.

할미봉을 오르다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이미 나는 대간 첫날처럼 거북이가 되었다. 아니 달팽이가 되었다. 배낭 하나 등에 지고 느릿느릿 민달팽이처럼 기어간다. 마루금을 기어가는 한 마리 달팽이였다. 할미봉에서 점심을 해 먹는다. 바람이 심해 정상에서 조금 내려선 바위틈에서 점심을 해 먹는다. 점심은 육십령 휴게소에서 얻은 김치에 밥을 먹는다. 꿀맛이다. 행복하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가질 필요가 없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김치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아침에 영취산 코스를 빼먹는 비참함도 이빨 빠진 듯한 백두대간도 지금 김치 하나에 싹 잊어버린다. 얼마나 간사한가? 그 굳고 단단했던 각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너지는 상황들. 나는 다시 추슬러야했다. 원인은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몸이다. 아니 몸은 갈 수 있지만 아직도 몸을 염려하는 나의 나약한 정신력 때문이다. 할미봉에서 남덕유로 가다 물소리를 듣는다. 이미 몸은 땀으로 젖었다. 조금 내려가니 계곡이 나온다. 훌렁훌렁 벗고 몸부터 씻는다. 피로가 회복된다. 몸이 가벼워진다. 씻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다시 마루금으로 올라선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5월16일 부터 7월 4일간의 행복한 백두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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