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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 가로수 시골길을 걸어가는 모습
미루나무 가로수 시골길을 걸어가는 모습 ⓒ 허선행
기차에서 내려 20분 정도 걸어야 했는데 논둑 밭둑길을 걸으며 두 팔로 자연바람을 안고 비행기 날개 모양을 하며 뛰어 가던 기억이 납니다. 기차에서 내려 친구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친구 어머니께서 만들어 놓으신 간식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동네 한 바퀴는 물론, 들로 산으로 쏘다녔지요.

얌전한 여학생의 모습을 버리고 선머슴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우리 집에서는 상상도 못하셨을 겁니다. 친구 집에서 보내는 여름 나흘은 내게 일탈을 꿈꾸는 절호의 기회였으며 숨 막히도록 엄하셨던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일종의 해방이었습니다.

그 시절 제 친구 아버님은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친구 아버님이 근무하셨던 학교도 우리 다섯 명에게 훌륭한 놀이터가 되곤 했습니다. 넓은 운동장과 잘 가꾼 화초 사루비아, 칸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플라타너스 그늘에 앉아 꿈 많은 여학생들의 이야기가 이어졌지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 허선행
방학이라 조용한 교정에 울려 퍼지던 매미소리도 정겹게 들렸지요. 그렇게 한참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배가 출출해질 때가 되어서야 친구 집으로 향합니다.

지금은 보기 드문 키 큰 미루나무 가로수 길을 횡대로 서서 돌아올 때는 뙤약볕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먹을 감자를 닳은 숟가락으로 껍질을 긁어 놓는 작업은 우리 몫이었는데, 마당 한 구석에 놓여 있는 가마솥에 넣고 친구 어머니가 들기름으로 볶다가 쪄서 노릇노릇해진 감자를 꺼낼 때면 우리들 모두 침을 꼴깍 삼키곤 했지요.

"너는 고추장을 줘야지."

찐 감자에 설탕을 찍어 먹는 친구들과는 달리 저는 고추장을 소스처럼 발라 먹었는데 어머니는 그것까지도 기억하십니다. 하긴 여름마다 가니 딸 친구 식성을 꿰뚫을 만 하지요.

여름에 내 식구 밥해주기도 힘든데 지금처럼 에어컨이 있는 것도 아니요 선풍기도 없는 부엌에서 일하시던 어머님! 딸 친구들 놀러 온다고 야외전축까지 마련해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곡은 '베사메무쵸'라는 곡이었는데 노래가사를 잘 못알아듣겠다며 "배추쌈에 무쳐"라고 고쳐 부르셔서 우리들 배꼽을 쥐게 만드셨습니다.

저녁이면 어김없이 모깃불로 피워 대는 약쑥 냄새를 맡으며 커다란 멍석에 드러누워 옥수수를 먹었지요. 낮에 우리가 밭에 가서 깔깔대며 한 바구니 따 온 옥수수입니다. 그 시절 바라보던 하늘에는 어쩜 별이 그리도 많고 총총하게 빛나던지 그 후로 그렇게 많은 별을 보지 못했습니다.

깜깜한 밤이 되면 손전등으로 길을 밝히며 개울가로 목욕을 갔는데 누가 훔쳐보기라도 할까봐 마음 졸이던 스릴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압니다. 게다가 장난기가 발동한 한 친구가 머리를 얼굴로 내려뜨리고 손전등을 비추며 귀신소리를 내면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 악을 쓰곤 했지요. 처음에는 발만 담그고 온다는 것이 서로 물을 튀기다 보면 이내 물 속에 서로를 처넣게까지 되곤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제 나이를 잊고 어느덧 여학생시절로 돌아가 봅니다.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

지금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것은 한밤중 이가 덜덜 떨리도록 춥던 개울가에서 등목을 하던 추억을 잊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지금은 모두 50대를 훌쩍 넘어버린 친구들. 사진 속 친구들과 지금도 그 때처럼 모두 모여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름을 시원하게'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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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현직 유치원 원장으로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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