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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임
서귀포 70경, 그 지도 위를 걷다

바다. 햇빛, 공기, 오름,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기암괴석, 끝도 없이 흘러내리는 폭포의 아름다움.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서귀포를 두고 사람들은 '복 받은 자들의 터'라고 말한다.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애절한 전설과 선인들의 지혜가 숨어 있는 서귀포. 내가 사는 곳에서 바라보는 서귀포의 하늘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날마다 걷는 것이 길이라지만, 문화와 역사, 자연, 생태학의 보물이 숨은 곳으로 떠나는 길은 늘 새롭기만 하다. 그래서 여행은 다시 깨어나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넘치는 부분은 나눔의 지혜를 얻게 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상생의 지혜'로 눈을 뜨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느껴보는 형형색색의 비경은 화려하지만 그 속에 숨은 인문, 사회의 비밀은 항상 수수께끼다.

2003년 9월 17일 손바닥 지도 하나 덜렁 들고 서귀포로 향하는 내 가슴은 꽁당 꽁당 뛰었다. 집 옆에 있는 공원 한 번 가려 해도 게으름을 피우며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게으름뱅이가 그것도 혼자서 서귀포 70경을 기행하겠다니 이 무슨 배짱인가? 더구나 서귀포 70경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 많아, 70가지 하나하나에 특색이 있는 반면에 힘든 여정이 될 것임은 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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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선임교에 여행 온 거북이와 소라

서귀포 70경의 첫걸음은 천제연폭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은 하루에 백리를 걸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백리를 하루에 다 걸으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천제연폭포로 가는 길에서 내 마음의 허를 채워준 것은 멀리서 여행 온 거북이와 소라의 벽화였다.

서귀포의 가을햇빛은 감귤만큼이나 그 당도가 높다. 2003년 그해 가을, 자줏빛 구름다리 선임교 다리를 뚜벅뚜벅 걸으며 나는 처음으로 햇볕의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벽화 속의 선녀들과 하늘나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담팥수나무, 구실잣나무, 조록나무에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삐죽이 얼굴을 내민 왕모람, 바위 손 넝쿨식물에게도 손을 흔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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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는 서귀포를 손바닥 지도만큼 작게 느꼈다. 그래서 70경을 떠나면서 여행 일정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면 다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70경의 첫발을 내딘 순간부터 거북이 걸음은 시작됐다.

그리고 1년 4개월이 지난 이 순간에도 나는 그 손바닥 지도 위를 걷고 있을 뿐이다. 칠십리의 절반도 걷지 못한 나에게 어떤 이는 "한 달이면 다 갈 수 있는 칠십리 길을 왜 그렇게 더디 가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어떤 이는 "서귀포 70경이 관광지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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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70경

서귀포가 지정한 70경은 가는 곳마다 테마가 있었다. 우선 색달해안갯깍주상절리대를 비롯한 23선의 자연경관지는 풀 한 포기에서부터 이름 없는 돌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가 담겨 있었다. 또 바다와 어우러진 해안경승지에서는 시인이 되기도 하고, 한여름 폭포 소리 들으며 천년동안 묵었던 때를 벗기도 하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 백록담을 오르며 인내를 배우기도 했다.

지난 해 10월, 맨발로 동글동글한 바다 돌을 밟으며 달려갔던 색달해안갯깍주상절리대와 중문대포해안주상절리대의 비경은 기암괴석 전시장으로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더욱이 한여름 돈내코의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졌던 기억은 70경의 길 떠남이 아니었더라면 감히 느껴보지 못할 여유로움이었다.

그리고 자연생태체험 14곳 중 내가 체험한 서귀포자연휴양림과 제지기 오름, 서귀포 녹차재배단지 체험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토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서귀포녹차재배단지는 녹차 밭을 걸으며 차 한 잔의 여유로움에 젖어보기에 넉넉한 여행이었다.

무엇보다도 해발 700고지에 있는 서귀포자연휴양림 법정악 산책로는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갖가지 이름모를 나무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됨을 느껴보는 기회였다. 그리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보목리의 제기기 오름기행 역시 서귀포에 대한 그리움과 남녘 끝에 대한 환상을 담금질하기에 충분했다.

또 문화유적지체험 기행으로는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에서 제주사람들의 항일운동의 역사를 새겼으며, 법화사지 스님이 주신 네잎 크로바의 행운은 건강과 부, 신앙 그리고 좋은 인연을 내게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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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귀포시가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한 9선 중 보목리에서 먹었던 자리물회를 아직도 기억한다. 사실 나는 자리물회를 잘 먹지는 못하지만 한여름 얼음을 숭숭 띄워 양푼에 가득 담아온 보목리 사람들의 인심은 자리물회 맛보다도 더욱 푸짐했다.

그리고 축제. 민간신앙 5선 가운데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은 서귀포 칠십리 축제에 참가했던 문 섬 기행이다. 민간으로서는 도저히 방문하지 못할 문 섬. 축제가 아니었더라면 어디 발을 디뎌놓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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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하나 관광체험명소로 이미 소문이 난 이중섭 문화의 거리에서 천재화가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이중섭 미술관에서 구입했던 '섶 섬이 보이는 풍경'과 '서귀포 환상'은 70경의 감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응접실 손님으로 접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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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마다 숨겨진 4·3의 아픔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픔으로 간직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한다는 것 또한 우리들의 과제다. 조망이 아름다운 소낭머리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 동산'을 보며 희비가 엇갈렸다. 해송의 절개와 절벽의 비경, 암벽 끝에 붙어 있는 야생화의 끈질긴 생명력을 만끽하기보다는 진혼곡을 듣는 기분이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4·3의 영혼이 남아 있는 '살인훈련' 장소. 나는 그 곳에서 서귀포 70경이 역사의 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나길 소망했다.

특히 진시황과 서복의 전설이 새겨진 정방폭포의 아름다운 풍경 위에 역사의 아픔까지 함께 간직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왜 정방폭포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무엇 때문에 폭포의 물보라가 산산조각으로 쪼개지는지, 그리고 안개처럼 피어오르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경 속에 숨어 있는 아픈 과거의 역사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조명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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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아픔을 서정시로 표현한 나그네의 불찰

사실 온라인에서 기사를 다루다 보면 네티즌들의 비판과 비방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제주토박이가 아닌 사람은 자칫 여행을 외부에서만 바라보는 서정시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 점이 여행자들이 보완해야 할 가장 큰 허점이다.

특히 서귀포 70경의 매력은 때 묻지 않은 순수, 복원되지 않은 아름다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한적한 것이 매력인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도 '별이 내리는 베릿내'로 표현했던 중문민속박물관은 보존과 개발의 차원을 넘어선 수수께끼였다.

개발이라는 이유를 들어 무조건적으로 포크레인을 들이대서도 안 되겠지만, 보존이라는 이유를 들어 진보가 늦어지는 일도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점으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주관적인 눈으로 바라본 중문민속박물관 서정시는 네티즌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정표가 없어 힘들었던 여행

손바닥 지도 하나만으로 출발한 서귀포 70경 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정표가 없는 곳을 찾아 나설 때였다. 지도 위를 걸어가는 것이 여행이라지만, 도로표지판은 물론 표지석하나 없이 70경으로 지정해 놓은 것은 여행자의 분노를 샀다.

따라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길은 늘 가시덤불이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주차하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잡초가 무성한 곳도 있었다.

그 중 가장 힘들게 찾아간 곳이 있다면 서귀포 예래동 마을이다. 서너 번씩이나 가던 길을 다시 뒤돌아가며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허공 속을 헤맸다. 그런데 서귀포연대방어유적은 잡초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예래동환해장성은 표지판이라도 설정해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문화유적지가 선인들의 지혜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라면 문화유적지의 관리는 당연히 후손들이 지켜야할 숙제가 아닐는지.

서귀포를 아시나요?
석양빛에 돛단배가 그림 같은 내 고향
칠 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한라산 망아지들 한가로이 풀을 뜯고
굽이굽이 폭포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 김강임
서귀포 70경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늘 내가 그린 밑그림은 '서귀포를 아시나요'이다. 물론 서귀포 70경은 자연경관지에서부터 자연생태체험, 문화유적체험, 생활문화유산, 축제와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댔던 순간들처럼 칠십리 길을 걸으면서 그림자처럼 함께 하는 것은 그리움이다. 자신의 키를 낮추면 들꽃이 보이고, 느릿느릿 걸어가면 70경 속에 숨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역사의 아픔까지도 느껴볼 수 있다. 그래서 지나간 것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 김강임
여행의 의미가 '가진 것을 버리기 위한 것'임을 잘 알면서도 여백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쳤던 여정. 그래서 남아 있는 칠십리 길은 쉬엄쉬엄 걸으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 숨쉬는 상생의 길로 떠나려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귀포시 제12호'에 실렸던 내용입니다. 서귀포시는 그동안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되는 '서귀포70경 연재기사'를 서귀포시청 홈페이지-서귀포종합관광안내( www.infojeju.com)을 통해 실어 왔습니다. 

 서귀포시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던 날 현장 취재 소감을 묻는 질문에 불만만 털어 놓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이정표가 없다. 길이 포장되지 않았다. 지방 기념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라며 나름대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현장을 취재하다 보니 벌써 2년째 접어듭니다. 그리고 이제야 칠십리 길의 절반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자연과 더불어 상생의 길을 떠나겠다"고 해놓고 너무 투덜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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