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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요일에 하라니까 뭐더러 해가지고 자식 생고생 시키고 그려.”
“오늘 했으면 얼마나 좋아? 따른 때는 안그러더만 왜 그랬댜.”

어머니는 농약을 하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아버지에게 계속해서 볼멘소리를 하십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십니다. 그저 묵묵히 새벽에 다시 사오신 농약을 경운기에 싣습니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아버지가 일부러 그랬나. 아버지도 속상할 텐데 왜 자꾸 어머니까지 그러세요.”
“속상해서 그런다. 그까짓 거 돈이야 상관없지만 일 한번 하고 나면 며칠이고 끙끙 앓는디, 저렇게 기운 하나도 없으면서 또 하게 생겼으니, 아버지 불쌍해서 그러지 내가 뭐라고 하간디.”
“저도 아는데요 그래도 자꾸 그러지 마세요. 그렇잖아도 어제 비 오니까 아버지 자꾸 나이 들면 다 쓸모없다면서 괜히 우울해 하시더만. 아버지 덜 힘들게 내가 아버지 뒤에 바짝 뒤따라 붙을 게 걱정하지 마.”

입맛이 없다는 아버지를 어머니하고 제가 억지로 한 수저 드시게 하고는 논으로 향합니다. 어제(토요일) 한 농약이 비로 인해 다 씻겨 내려가 다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뒤에 바짝 따라붙습니다. 최대한 아버지 가까이에 붙어야 아버지가 농약 줄을 끌어당기는 힘듦을 줄여줄 수 있게 때문입니다. 너무 가까이에 붙었는지 논 끝 쪽으로 갈수록 줄이 팽팽해져 당기기가 힘이 듭니다. 농약 줄을 어깨에 메고 거의 90도가 되도록 몸을 숙입니다. 그래야 줄을 끌고 앞으로 나갈 수가 있으니까요.

어제 농약을 한 번 한 때문인지 농약 줄이 닿은 어깨가 흠칫 아파옵니다. 하지만 제 눈앞에서 농약을 하시는 작아지신 아버지를 보면서 알 수 없는 쓸쓸함에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오른쪽이 아프면 왼쪽에, 왼쪽이 아프면 오른쪽 어깨에 농약 줄을 메고 아버지 뒤를 따라갑니다.

아버지가 논 끝에까지 약을 주시면 이제 돌아서서 어머니 계신 쪽으로 부리나케 걸어갑니다. 이번에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힘듦을 덜어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원래 농약을 치시는 아버지하고 둑에서 줄을 당기시는 어머니하고의 중간에 제가 있어야 아버지하고 어머니 두 분이 편한데 제가 아버지 뒤에 바짝 붙는 바람에 어머니가 힘들게 줄을 당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일흔 넷, 일흔이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힘듦을 덜어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점심이 되기 전에 농약을 마치고 난 후 아버지는 손발만 씻으시고는 사랑채에 눕습니다. 농약 했으니 샤워하시라고 해도 묵묵부답으로 자리에 눕습니다. 어머니는 그냥 두라는 손짓을 합니다.

어머니는 ‘니가 고생했다’면서 점심에 호박잎을 삶아주신다면서 밖으로 나가십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한참만에 아버지가 일어나셨습니다. 여전히 밥 생각이 없다는 아버지는 며느리가 상을 들고 들어가자 차마 외면하기가 그랬는지 남은 호박잎에 몇 수저 드십니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똑같은 말을 합니다. ‘니가 고생했다’고.

어머니가 챙겨주시는 감자며 고추며, 참외, 오이 등 텃밭에서 수확한 것을 차에 싣고 시골집을 나섭니다. 아마 여러분들께서도 어느 날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보다 보면 ‘많이 늙으셨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제가 그 날 그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어제 그것 쪼끔 일했다고 그런지 몸이 뻐근해져 옵니다. 그래도 아직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다 보니 뭉친 근육이 풀어져 그다지 아픈 줄은 모르겠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아이들하고 놀다 아이들 먼저 재웁니다. 아내는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못 견딜 정도로 힘든 건 아니었지만 아내가 그렇게 물어보니 괜히 투정부리듯 여기저기 쑤신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아픈 어깨와 다리를 잠깐 만져주다가는 설거지해야 한다며 나갑니다. ‘해주려면 끝까지 해줘야지’하면서 뒤돌아나가는 아내를 원망스럽게 바라보고는 제 손으로 어깨와 다리를 주무릅니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많이 아플텐데. 나야 젊으니까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며칠이고 끙끙 앓을 텐데.

시골집에 전화를 합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습니다. 힘들다는 증거입니다. 아버지는 힘들면 목소리부터 가장 먼저 표시가 나거든요. 딱히 드릴 말이 없습니다. 그냥 ‘쉬세요’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편하질 않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면서 ‘이제 자식들 다 결혼해서 자식들까지 낳고 사는 모습 봤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살아가야 할 남은 인생에 자꾸만 회의적인 생각을 하시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는 여전히 저에게는 산입니다. 그 누가, 그 무엇이 아버지의 그 크심을 대신하겠습니까. 서른넷밖에 되지 않은 이 자식은 아직 산의 품을 떠날 수 없는 어린 자식입니다.

아버지! 약해지지 마세요. 아버지가 지으신 농사 덕분으로 저와 형, 그리고 누나들 모두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러고 보면 아버지가 이 자식들보다 제일 나아요. 저는 고작 제 네 식구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버지는 20명이 넘는 식구를 먹여 살리시잖아요. 그러니 우리 집에서 아버지가 제일 능력 있다니까요.

그리고 저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 아버지 용돈 한 번 제대로 드린 적이 없는데 아버지는 갈 때마다 손자 손녀들 꼬박 꼬박 만원씩 손에 쥐어주시잖아요. 그러니 우리 집에서 아버지가 제일 능력 있다니까요.

아버지! 지금처럼 손자 손녀들 용돈도 주시고, 이 놈들 커서 결혼하는 것까지 보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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