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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1991년 정부가 마련한 방안이 산업연수생 제도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불법 체류자를 양산했으며, 이를 빌미로 일부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하고, 이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등 인권유린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정부는 외국인고용허가제도 함께 실시하고 있다.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의 산업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력으로 자리 잡았고, 인권보호 차원에서라도 외국인고용허가제도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제도상의 변화와 함께 주목해야 하는 게 이들에 대한 내국인들의 태도이다. 산업연수생제도 시행 이후 몇 해 동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내국인들의 태도는 한국사회에 잠재돼 있던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래서 서구인들의 차별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각국의 외국인 노동자를 같은 방식으로 차별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차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전 사회적인 공감대가 확산됐다. 이 덕분인지 이들에 대한 차별은 많은 부분에서 해소됐다. 외국인노동자를 소개하는 기사는 이제는 어렵지 않게 신문지면에서 발견할 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 또 다른 차별이 눈에 띈다. 바로 학력이다.

"임마누엘은 조국에서는 국립 가나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며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그에게 벗어나고픈 ‘천형’으로 여겨졌다."

18일자 H신문에 실린 기사의 한 대목이다. 가나 출신의 노동자를 소개하면서 자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점과 엘리트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기사만 그런 게 아니다.

"몽골인 부부는 현지에서 대학까지 나온 엘리트였지만, 코리안 드림에 부풀어 브로커에게 600만원을 건넨 뒤 한국으로 건너왔다. 몽골에서 배운 지식을 써먹고 싶었으나 그럴 기회는 전혀 찾지 못했고, 허드렛일인 이삿짐센터 막노동과 고층빌딩 유리창 닦기를 하면서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같은 날 한 경제신문에 실린 기사의 내용이다. 이 기사도 마찬가지다. 몽골출신 외국인노동자를 소개하면서 자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몽골에서는 대학을 나온 엘리트이지만 생계를 위해 3년 전 한국으로 취업을 왔다. 낯선 땅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지난 7일 일간지에 실린 기사의 한 부분이다. 인용한 기사는 모두 온갖 차별을 이겨가며 힘들게 살아가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독자에게 이들을 무관심으로 대할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봐주길 바라는 게 기사의 목적일 것이다.

하지만 국적에 의한, 특히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부당함을 강조하면서도 은연중에 학력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대하고 있다. 도리어 학력차별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처음 다루기 시작했을 때 이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학력을 부각하기 시작한 건지 혹은 기사에서 소개되는 노동자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재고하기 위한 방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러한 보도는 또 다른 편견과 차별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지양돼야 한다.

외국인노동자들 중에는 대학졸업출신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자도 많다. 중요한 점은 대학을 졸업했는지 혹은 자국에서 엘리트였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외국인노동자들은 한국사회에서 '외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차별 받는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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