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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간정사  풍경
남간정사 풍경 ⓒ 김유자

대전의 변두리에 위치한 고봉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천가에 자리잡은 남간정사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였던 우암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서당입니다. 옛것을 좋아하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해 있어 틈나는 대로 들르는 곳이랍니다.

남간정사 폭포.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폭포를 거쳐 연못으로 스며듭니다.
남간정사 폭포.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폭포를 거쳐 연못으로 스며듭니다. ⓒ 김유자

연못이 딸린 건물이 제법 운치가 있답니다.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하늘거리는 왕버드나무의 너울이 마음의 가장자리를 살짝 건드리기도 하고,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폭포에 부딪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名人(명인)의 가야금 소리가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싶습니다.

특히 석양에 젖어가는 남간정사의 풍경은 회색빛으로 가득찬 도회 사람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이고 맙니다.

내삼문 앞에 있는 왕버드나무. 성질이 고약한지 옹이가 많답니다.
내삼문 앞에 있는 왕버드나무. 성질이 고약한지 옹이가 많답니다. ⓒ 김유자

앞은 연못이 가로막고 있으니 이 건물에 들어가려면 할 수 없이 뒤안으로 돌아 들어가야 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문인 내삼문 앞에는 연못 쪽으로 구부러진 왕버드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있지요.

그 나무가 왜 그렇게 구부러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의 습성 탓이 아닐는지요. 좋아하게 되면 맹목적이 되는 건 사람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쪽문을 열고 뒤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언덕받이에 샘이 하나 있습니다. 이 샘 바닥에서 솟아나오는 물이 차오르게 되면 건물의 대청 아래를 지나서 연못으로 흘러가게 돼 있답니다. 이 건물이 가진 특이한 조경방법이지요.

남간정사 뒤안에 있는 샘과 그곳에 살고 있는 가재. 한 마리는 크고 한 마리는 좀 작았는데 여기 올린 것은 그중 큰 가재랍니다.
남간정사 뒤안에 있는 샘과 그곳에 살고 있는 가재. 한 마리는 크고 한 마리는 좀 작았는데 여기 올린 것은 그중 큰 가재랍니다. ⓒ 김유자

어제는 할 일 없이 가만히 이 샘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샘 바닥에서 뭔가가 꾸물거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게 도대체 무얼까 하고 들여다보니 그것은 가재가 분명했습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가 오손도손 살고 있는 겁니다.

가끔씩 찾아오는 곳이지만 이곳에 가재가 살고 있다는것은 정말이지 뜻밖이 아닐 수 없었지요. 새우, 작은 물고기 등을 잡아먹으며 전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계곡에서 산다는 가재가, BOD(생화학적 산소 요구량) 농도 1급수의 청정 수역에서만 볼 수 있다는 그 가재가 이렇게 공기도 탁하고 물도 탁한 대도시에 살고 있다니요?

'가재는 게편'이라는 편견은 버리세요

어릴 적 제 고향은 산골마을이었답니다. 마을 뒷쪽으로는 구비구비 산개울이 흘러갔지요. 전 그곳에서 '도랑치고 가재 잡으며' 살았답니다. 잡아 온 가재를 화로 불에 구워서 와삭와삭 씹어 먹었지요.

어느 때는 가재의 암컷을 잡아 구워먹기도 했는데 암컷의 알이 포도송이처럼 송알송알 배에 붙어 있었습니다. 알을 품은 어미 가재는 이동하기에 알맞게 배다리에 수많은 잔털이 숭숭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가재는 게편'이라는 말이 있지요. 하지만 동물 분류상으로는 가재는 새우아목에 속하므로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은 틀렸다는군요. 굳이 표현하자면 '가재는 새우 편'이라는 말이 더 맞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매우 익숙하다고, 그리고 아주 잘 안다고 믿었던 곳에서 자신이 이때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의 감흥이 도도하더군요.

어쩌면 맨날 그제가 어제같고 오늘이 어제같은 날들. 그렇게 무한반복을 거듭하고 제 일상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제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더라구요.

그렇게 가재 덕분에 역사와 추억을 오가는 시간여행을 하게 된 어제는 무척 즐거운 하루였답니다. 앞으로는 더욱 자주 그곳에 들러볼 작정이랍니다. 혹시 아세요? 그 가재들도 오매불망 저를 기다리고 있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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