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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들만의 궁전>
책 <그들만의 궁전> ⓒ 동아일보사
이 작품에서 '타워 팰리스'는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이자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다. 그리고 모든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비유로도 사용되었다. 영화 감독인 주인공 표석의 첫 영화에서 보여주는 배경과 제목에도 '타워 팰리스'가 등장한다.

소설의 시작은 아버지가 의사여서 평범하면서도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 표석이 가난한 광부의 아들인 원과 룸 메이트가 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버지의 평이한 삶에 무료함과 염증을 느낀 표석은 자신은 결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며 영화 인생에 뛰어든다. 그의 치기 어린 대학 생활과는 다르게 원은 고시 공부를 하는 철저한 학생이다.

이 둘이 자취를 하고 있는 주인집의 딸 비니는 아름다움을 무기로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두 남자 모두 비니를 사랑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의 사랑을 획득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표석은 영화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반면에 원은 두 개의 고시를 패스한 유능한 인재가 되어 있다.

서로 연락이 끊긴 채 몇 년을 살아 오다가 갑자기 표석은 원의 연락을 받고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부유한 재벌가의 사위가 되어 영화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으니 와서 실컷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 보라는 것. 표석이 십 년만에 한국에 들어와 처음 발을 딛게 된 곳이 바로 원의 집인 타워 팰리스다.

원과 그의 아내 수정이 살고 있는 이 공간은 수정이 '대한민국 일번지'라고 부르는, 명실공히 부와 권력을 지닌 자만이 입성할 수 있는 곳이다. 원과 표석이 대학 시절 자취를 하던 허름한 집들과 무허가 셋방들은 말끔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타워 팰리스에 들어선 순간 나는 대한민국 일번지라는 원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원이 쌓았다는 부를 실감하고 압도되고 말았다. 66층 높이의 타워 팰리스는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어떤 곳보다 근사했다."

원의 아내 수정은 놀라는 표석에게 이곳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자격 요건이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분양부터 까다롭게 입주자를 골랐기 때문에 아무나 살 수 없다는 그녀의 말에서 표석은 불쾌한 선민 의식을 느낀다. 원의 변화가 놀랍긴 했으나 표석은 그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친구라고 인정한다.

표석은 우연히 옛사랑인 비니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에게서 돈의 노예가 된 허영심의 여자를 들여다 보게 된다. 옛날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이 남자 저 남자를 향해 움직이는 비니. 처음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에는 과거의 떨림이 그대로 살아났지만 비니는 더 이상 과거의 순수한 소녀가 아니었다.

원은 표석의 영화 제작을 위해 아낌없이 후원한다. 원의 재력은 탁월한 정치가인 그의 장인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장인이 정경유착으로 인해 검찰 조사에 덜미를 잡히면서 원의 인생도 위기를 맞는다.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그는 태연하다. 원은 자신이 급상승한 만큼 추락한 것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어떤가. 마치 제왕이라도 된 기분 아닌가. 나는 매일 아침 이곳에서 하루를 살 에너지를 충전한다네. 양재천이 발 아래 실개천처럼 흐르고 구름 위에 누워 있는 기분.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 꼭대기에 존재하네. 이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구체적인 대가인 셈이지. 비로소 나는 성공한 거야. 안 그런가?"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오를 수 없어서 추락하고 만다. 무엇보다도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던 장인의 모략에 무너지는 것이다. 언론과 여론은 원의 성공과 실패의 신화를 화젯거리로 삼고, 그의 삶은 실제 그가 걸어왔던 길과는 완전히 다르게 세상에 비친다. 원의 자살과 함께 표석의 새 영화 또한 흥행에 실패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삶이 '성공' 혹은 '실패'라고 단정지어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인생은 성공과 실패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왔다 갔다 하면서 걸어가는 것 아닌가. 저자는 소설 마지막에 표석을 그의 아버지와 마주치게 한다. 표석은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나는 아버지의 유폐된 삶이나 부채감에 싫증이 난 나머지 늘 아버지의 가르침과는 달리 행동하려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에게서 달아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원이 과거에서 달아나고 싶어했듯이. 그렇지만 그것을 시도하는 누구도, 단 한 발자국도 달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삶은 그런 것이다. 내 나이 서른을 한참 넘기고서야 영화를 한다는 것이 평생 서너 평 남짓한 진료실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내 안에서 진통을 통해 생산해내는 공간의 크기임을, 각자의 가슴에 품고 있는 세상의 크기임을…"


인생이란 그리 간단하지도 또 복잡하지도 않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진통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깨달음 하나를 더 얻고 간다. 그 진통과 깨달음의 숫자만큼 인생의 깊이도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의 삶은 무엇 하나 옳다거나 그르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시 보게 된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그래도 '희망'이다. 원이 남기고 간 아이 산이를 데리고 그가 원하는 영화 세상을 맛보게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면서 표석은 미소 짓는다. 비록 그들 자신의 삶은 피곤하고 어두웠을지라도 앞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세상은 밝을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 속에 비행기는 이륙한다.

이 작품이 올해 <여성 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이유는 아마도 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부와 성공을 좇느라 정신없는 이 시대의 30, 40대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특히 성공가도를 달리면서도 늘 복잡한 도시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세대라면 더더욱 가슴 깊이 다가올 것이다.

그들만의 궁전 - 2005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작

한수경 지음, 동아일보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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