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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 산' 자가 뚜렷한 대전사 뒤 주왕산. 산의 진미를 보여준다.
'뫼 산' 자가 뚜렷한 대전사 뒤 주왕산. 산의 진미를 보여준다. ⓒ 정근영
7월 10일 일요일, 주왕산 등산이 계획되어 있는 날이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토요일과 일요일에 이어서 폭우가 쏟아질 것이란 일기예보가 있었다. 하지만 향목 산악회에서는 비가 와도 등산을 갈 것이라고 한다.

비오는 날 무슨 청승으로 등산을 간다는 말인가. 고집도 대단하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햇살이 나고 도무지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날씨다. 다들 여 벌 옷에 우산까지 준비한 모양이지만 이렇게 맑은 하늘에 비는 무슨 비람, 간 크게도 우산도 준비하지 않은 채 등산길에 나섰다.

부산을 나서 언양 쯤에 이르렀을까. 하늘이 어둡다. 장마가 진행 중이라 청송 정도 가면 비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주왕산이 있는 청송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하늘은 더욱 짙어지고 비는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인다.

하지만 하루 동안 비를 만나지 않는다면 등산 날씨로는 그저 그만이다. 여름의 뙤약볕은 저 멀리 서 있고 시원한 바람이 하늘에 가득하다. 명산을 찾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먼 거리를 달려가는 길이기에 등산길은 지루하기만 한다. 하지만 향목 산악회 등산길은 총무님의 안내와 회장님의 농 섞인 사진 해설로 오고가는 시간 또한 즐겁다.

오늘(10일) 자칭 주윤발 회장의 농담을 여기 옮겨 볼까. 아이들을 위한 유머라는 데, 글쎄다.

아기가 태어날 적에는 머리부터 나와야 하는 데 발이 먼저 나오면 제왕 수술부터 하려고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먼저 오른쪽 발이 나오면 아기의 발바닥을 간질이면 아기가 발을 쏙 집어넣고 왼발을 살며시 내놓는단다. 그러면 왼발 역시 살짝 간질이면 왼발도 쏙 집어넣고 돌아서 머리로 나온다.

물론 농담이다. 주윤발씨의 농담은 계속된다.

중국에 가면 일본, 한국, 중국 칼잡이들이 나와서 재주를 겨루는 쇼가 있다. 먼저 일본 칼잡이가 나와서 칼을 휘둘러 파리를 내리치면 파리의 뒷다리가 갈라진다. 그러면 일본 관광객들이 일어서 환호를 올린다. 다음은 중국 칼잡이가 나와서 칼을 휘두르면 파리의 날개가 뚝 떨어진다. 그러면 중국 사람들이 일어서서 환호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한국 칼잡이가 회칼을 휘두른다. 그런데 파리는 이상이 없다. 그러면 관중은 야유를 보낸다. 그런데 파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게 무어람, 파리의 두 눈에 쌍꺼풀 수술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횟집 아저씨의 칼솜씨가 일등이란다. 이에 관중의 환호는 하늘을 찌르고.


이래저래 농담을 듣기도 하고, 졸기도 하다보면 어느 새 관광버스는 주차장에 도착해 있다. 비가 온다고 예고된 날씨지만 비는 오지 않고 구름은 하늘의 햇볕만 가려준다. 모두 향목 산악회의 등산은 하늘도 도와준다면서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신라왕에서 쫓겨난 김주원은 저 바위 위에다 집을 짓고 살았을까.
신라왕에서 쫓겨난 김주원은 저 바위 위에다 집을 짓고 살았을까. ⓒ 정근영
주왕산 국립공원. 8세기 경 중국 당나라에서 자칭 주왕은 새 나라를 꿈꾸다가 쫓겨 신라로 도망을 온다. 주왕은 여기 주왕산 암벽을 근거로 대궐을 짓고 성을 쌓는다. 당나라의 지시로 신라의 마장군은 주왕과 싸우게 된다.

전투 끝에 주왕은 마장군의 창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으니 그 주왕의 붉은 피가 주왕산 곳곳에 뿌려지고 그 피는 푸른 봄날 수달래로 피어나고 가을날 단풍으로 물든다는 전설의 산이다.

주왕산은 기암괴석으로 된 바위산이다. 그 바위산 틈새마다 전설이 주절주절 피어오른다. 그 가운데 중심이 되는 것이 주왕의 전설이리라. 신라 37대 선덕왕은 후사가 없었다. 조정에서는 무열왕의 6대 손인 김주원을 왕으로 옹립했다. 그렇지만 김주원은 왕도인 경주에서 200여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김주원이 홍수로 알천을 건너지 못하자 대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김주원은 이 곳 주왕산 바위 속에 숨어 살았다. 집에는 물이 없어 큰 바위에서 두레박을 골짝에 내려 물을 길어 올렸다는 전설의 바위가 급수대다.

이밖에도 푸른 학과 하얀 학 부부가 깃을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 등 주왕산은 골이 깊고 물이 맑아 아름다운 이야기, 아니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맑은 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

시루봉, 옆에서 보면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다.
시루봉, 옆에서 보면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다. ⓒ 정근영

1000년 고찰 주왕암
1000년 고찰 주왕암 ⓒ 정근영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대전사. 대전이 무슨 뜻인가. 큰 대자에다 책 전자이니 사전인가. 대전사 뒷산 주왕산 상봉은 바위가 ‘뫼 산’ 자를 이루고 있다. ‘뫼 산’자를 만든 이가 저 바위를 보고 山자를 창제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뚜렷한 바위산이다.

주왕산은 산의 대전이다. 대전사는 한자대전에 ‘뫼 산’ 자 크게 새겨놓고 산의 참뜻을 보여주려고 한다.

산골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반주로 매미 떼들의 합창이 골을 메운다. 간간히 풀벌레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안식년을 맞은 계곡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철조망이 아닌 나무 울타리라 정겹게 보인다.

제2 팔각정에 이르니 오른쪽 산기슭으로 오솔길이 보이고 주왕암으로 가는 길임을 알려주는 표지가 보인다. 주왕암, 바위를 가리키는 말일 것 같기도 하고 암자를 가리키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700m 거리다. 700m라면 늦어도 20분이면 갔다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닐까. 아기를 데리고 온 여동생이 자기는 여기서 기다리겠다며 나 혼자 갔다 오라고 한다. 700m, 단숨에 갔다 올 것 같았는데 한참을 가도 주왕암은 나타나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젊은 부부가 아이와 사진을 찍고 있다. 셔터를 눌러주고 나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주왕암이 나타났다. 주왕암은 바위이름이 아니라 절이름이었다. 대전사 창건 때 지은 절이라 창건 역사는 대전사와 같을 테지만 중건역사는 대전사보다 앞선다고 한다.

제1폭포, 본 폭포 옆에 있다.
제1폭포, 본 폭포 옆에 있다. ⓒ 정근영

제2폭포, 제복을 입은 일행들이 기를 받고 있다. 그 옆에 선 남자가 지도자 인듯하다
제2폭포, 제복을 입은 일행들이 기를 받고 있다. 그 옆에 선 남자가 지도자 인듯하다 ⓒ 정근영
주왕암 누각 밑으로 난 문으로 들어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여기서 주왕굴까지는 10분 거리란다. 갔다 오면 20분. 시간이 급하다.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을 동생이 생각난다. 도중에 휴대전화 벨이 울렸지만 통화가 안 된다. 부리나케 발걸음을 옮겨 제2 팔각정에 이르렀지만 기다리다 지쳤는지 동생은 가고 없다.

빨리 가면 일행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오고가는 수많은 등산객 속 어디에 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휴대전화는 통화이탈지역임을 알려줄 뿐 더 이상 말이 없다.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를 뛰듯이 둘렀다. 외길, 어디에선가 만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니 마음은 편하다. 땀이 허리에 배고 몸은 가뿐하다. 제2 폭포에서는 울산의 어느 절에서 왔다는 제복을 차려 입은 일행들이 기를 받는다며 활짝 편 손바닥으로 하늘을 들었다 땅을 들었다 한다. 발바닥으로 지기를 빨아들이겠다고 맨발이다.

이미 등산길 초입에서 만난 이들이다. 나이가 좀 든 남자의 손가락 사이에 낀 추가 흔들린다. 무엇하는 것인가 물으니 기를 받는다며 기가 흘러서 추가 움직인다고 한다. 손바닥을 펴고 내 손에 있는 기를 재보라며 추를 들이대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손등 위에서 들어보고 가슴에도 추를 들이대 보지만 추는 역시 가만히 있다.

제3폭포
제3폭포 ⓒ 정근영

내원분교에서
내원분교에서 ⓒ 정근영
스트레스를 받아서 기가 뭉쳐서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병이 들었나. 동생에게도 시험해 보았지만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 자기들 일행의 손바닥 위에 추를 가져가니 추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신기하다.

내가 그 추를 들고 그들을 시험해 보자고 하니 추를 넘겨준다. 추를 들고 그들 일행의 손바닥 위에 가져가도 꿈쩍하지 않는다. 내게 기가 흐르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들에게 정말로 기가 흐른다면 그 추를 누가 잡고 있던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닐까.

내가 이렇게 말을 하려니 "그만, 가이소"라고 한다. 정말 기가 흘러서 추가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속임수를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제3폭포를 갔다 나오면서 노인들 일행을 만났다. 앞서서 제3 폭포를 가고 있는 친구에서 "그 뭐 볼 것 있노, 아무 것도 볼 것 없다, 그만 가자"라고 소리친다. 남 따라 바지게 짊어지고 장에 간다더니 그 짝이다. 절에 가면 절에 뭐 볼 것 있노. 절은 다 같다며 절에도 가지 않고 폭포에도 볼 것 없다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이런 이들이 더러 있다.

관광버스 대절 내어 여행을 갔다 차에서는 아예 내리지도 않고 고스톱만 쳤다고 자랑스레 이야기 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여행길에 1박을 하면서도 고스톱으로 밤을 새우는 이들도 있다. 관광버스 안에서는 술 마시고 고래고래 고함지르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는지는 몰라도 그것을 두고 여행이라고는 보기 힘들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마을 내원 마을로 향했다. 도시락도 들어있지 않는 물과 커피만 들어있는 빈 배낭생각을 하니 배가 고프다. 내원 마을에 가서도 일행을 만나지 못하면 그곳에서 점심을 사먹을 수도 있을 테지 하는 생각으로 내원 마을로 갔다.

내원분교, 폐교된 학교인 것 같다. 다행히도 조금 전 식사를 마친 일행을 여기서 만났다. 내원분교, 등나무 잎사귀가 창문을 덮었다. 교실 안은 어둡다. 민속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아마도 찻집이나 식당 같아 보이는데 누가 주인인지, 주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마당가에는 나무 의자와 탁자들이 놓여있어 등산객들이 도시락을 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돈을 벌기보다는 손님들의 편의를 보살피려는 주인의 마음씨가 고와 보인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말이 너무 많았다. 여기까지 온 독자들은 얼마나 지루할까. 1,000자 수필이 인기를 얻어가고 있다는 데 나는 이렇게 늘 지루한 글로 독자를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렇게 횡설수설 말이 많아진다.

그렇지만 따로 글을 쓰기도 그렇고 주산지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 하겠다. 주산지, 연못이다. 숙종 임금 때 만든 저수지로 60여 호 농사꾼들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연못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 작은 연못이 그 아름다움으로 관광객을 부른다. 150년 넘은 왕버들이 물속에서 숨을 쉬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신비감을 자아내게 한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정말 아름다운 연못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넓지는 않았지만 주차장엔 차 대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영화제목 그대로 사철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주산지, 직접 보는 주산지는 액자속의 풍경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시간과 물의 양이 적절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주산지, 물이 적어 왕버드나무는 물밖에 서 있었다.
주산지, 물이 적어 왕버드나무는 물밖에 서 있었다. ⓒ 정근영

62m 높이의 한국 최고 인공폭포
62m 높이의 한국 최고 인공폭포 ⓒ 정근영
차의 방향을 돌려 국내 최고의 인공 폭포 앞에 섰다. 장관이다. 1999년에 만든 62m 높이의 폭포다. 물은 인공으로 올려놓았겠지만 바위산은 자연 그대로 인듯, 그 자연의 바위산에 일직선으로 도랑이 난 것이 신기하다. 인공으로 손을 조금 보았을까. 인공으로 만든 것이라 해서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말 장관이다.

돌아오면서 강구에 들러 북한산 대게로 배를 채우니 행복이 풍만해 진다. 가위로 게발을 자르면 옆 사람 얼굴로 물이 튀기기도 하여 미안하지만 모두 먹는데 정신이 빠져 옷에 물이 튀어도, 얼굴에 물이 튀어도 그저 그만이다.

폭우 예고는 오늘 우리 등산길을 아주 넓혀 놓았다. 오고 가는 길에 막히는 곳이 없다. 길도 넓고 가는 식당도 텅 비었다. 차 타는 것도 편하고 먹는 것도 편하고 그래서 더욱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여행코스 : 대전사 매표소, 주왕암,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 내원마을(점심), 주산지. 인공폭포. 6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 주왕산 주요 등산로 

○ 제1코스 : 상의매표소→ 제1폭포→ 제3폭포→ 내원마을→ 가메봉→ 절골매표소(14.9Km, 5시간 30분)) 
○ 제2코스 : 상의매표소→ 주왕산→ 칼등고개→ 후리메기→ 제1폭포→ 상의매표소(9.3Km, 3시간 40분) 
○ 제3코스 : 상의매표소→ 장군봉→ 금은광이→ 제3폭포→ 제1폭포→ 상의매표소(11.6Km, 4시간 50분) 
○ 제4코스 : 상의매표소→ 제1폭포→ 제3폭포→ 금은광이→ 너구마을→ 달기폭포→ 월외매표소(12.2Km, 4시간 30분) 

* 등산 시간은 1Km에 평균 30분 정도 걸리며 개인별, 구성인원(성별, 수)에 따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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