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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겉그림입니다.
ⓒ 현문서가
"내 인생에는 고통과 영광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순간 사진은 나와 함께 했다. 나의 작품 하나하나가 내 인생을 대변해 준다. 사진은 머리와 눈과 가슴을 통해 창조된 예술이며 영혼의 내적인 영상이다."

이는 사진작가 최민식이 쓴 <사진이란 무엇인가>(현문서가. 2005)에 나오는 머리말이다. 그만큼 최민식은 사진 하나 때문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사진과 함께 온 생을 다하고 있다. 사진 때문에 그는 태어났고, 사진 때문에 눈물 흘리고 또 사진 때문에 웃고 있으며, 그 사진 때문에 생을 마감할 것이다. 사진은 그에게 있어서 인생 전부나 다름없다.

그래서 눈물과 사연과 감동이 있는 곳이라면 그는 그 어디든 찾아간다. 산골짜기 깊은 마을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땅 끝 오지 마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림에 처해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도…. 지구촌 어디든 사회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면 그는 끝까지 찾아간다. 그리곤 순간적인 영원, 영원한 순간을 담아낸다.

"나는 꾸미거나 연출된 사진에는 흥미가 없다. 오직 직관으로 포착한 결정적 순간을 시각언어로 바꾸는 노력을 해 왔다. 내 작품의 바탕에는 사진의 주제와 나 자신에 대한 경의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나는 5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휴먼 다큐먼트를 만들어 왔다. 내 작품들의 연대기적 사진집 <인간>(1956-2004) 12권 모두에는 역사적인 기록이 소중히 담겨 있다고 자부한다."(110쪽)

그저 사람이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찍어내는 연출 작품을 그는 만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움직이는 그대로, 그저 돌고 도는 그 자체만을 한 컷 한 컷 찍어낼 뿐이다. 꾸미거나 치장하거나, 각색하는 그 어떤 거짓도 원치 않는다. 다만 드러나는 그 자체, 흘러가는 그 자체 속에서 한 컷 한 컷 영원한 생명을 뽑아 낼 뿐이다.

그런 그가 주로 찍는 작품이 있다면 그건 ‘사람살이’이다. 자연 배경도 아니고 아름다운 경치도 아니다. 멋진 폭포수나 일몰도 일출도, 그 어떤 자연 경관도 아니다. 그가 주제로 삼는 것은 오로지 사람이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다. 꾸밈없고, 가식 없고, 위선도 없는 순수한 사람 그 자체인 것이다.

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는 평범한 아랫사람을 주로 찍는다. 높은 지위에 속해 있거나 권세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우러러 보는 사람이거나 떠받드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저 우리 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땀 흘려 일하는 일꾼들, 먹을 게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 신문이나 우유를 팔아서 한 끼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 이른바 서민층이 그들이다.

"나는 1956년부터 서민들 속으로 뛰어들어 오늘날까지 절실하고도 생동감 넘치는 많은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계속해서 찍어 왔다. 삶의 진실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막다른 상황에 맞닥뜨린 인간의 내면세계를 뚜렷하게 부각시킨 것이다."(114쪽)

그런 까닭인지 그는 오늘을 사는 젊은 사진작가들에게 뼈아픈 충고를 한다. 사회를 읽는 철학도 없이 그저 감각과 수법만을 쫓는 데서 과감하게 돌아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 내용도 뜻도 없이 그저 감상하고 느끼는 것만을 최고로 생각하는 데서 철저히 돌아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 냄새나지 않는 사진들, 인위적인 조작으로만 마구 찍어내는 데서 돌이킬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진정으로 사회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사진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서 한 컷 한 컷 건져낼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엇이겠는가. 그가 내세우는 대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 줄 수 있는, 그런 한 컷을 찍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는가.

그가 말하고 있는 대로 생각한다면, 분명 그것은 사진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녀야 할 시대적 통찰력, 그리고 홀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고뇌 어린 사상이다. 이른바 시대적 자각, 시대적 성찰이 그러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만 영원토록 가치 있는 작품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런 사진 한 컷을 담아내기 위해 그는 온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결코 연출할 수 없는, 인위적이지 않는 그 움직임 자체를 담기 위해 돌고 돈다. 그래서 그는 그 한 컷 한 컷 사진 속에, 인간적인 사회 실현을 꿈꾸며 진지한 목숨 하나하나를 담아내고 있다. 그만큼 한 컷 한 컷 사진 속에 영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진을 통해 인간적인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인간적인 사회란 기본적인 삶의 질이 보장된 사회를 말한다. 나는 이를 위해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한다." (232쪽)

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현실문화(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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