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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에 몽고병들이 다 사라진 게 이상하외다. 놈들이 눈치라도 채고 조심하는 것 아닙네까? 보급이 어려우니 빨리 결판을 내야 됩네다.”

장판수와 차충령, 예량 형제, 최효일은 막사에 모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병사 서우신이 지휘를 포기하다시피 한 병력은 이제 만 여명이 남아있었지만 하루에 소비하는 군량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남한산성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전령의 말에 장판수가 돌아보니 낯익은 자였다.

“자네는 서포수가 아니네?”

장판수는 서흔남을 알아보고선 소리쳤고 서흔남도 그런 장판수가 반가운지 활짝 웃으며 반가워했다.

“장초관께서 바로 이곳에 계셨군요! 이거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서흔남과는 말과는 달리 장판수는 그리 반가운 생각까진 들지 않아 가볍게 손짓으로 더 이상의 인사치레를 막고서는 용건부터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남한산성에 변고가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달려 온 것입니다.”
“변고라니? 남한산성이라면 변고를 이미 당할 만큼 당하지 않았네?”
“제 말을 잘 들어보소서.”

서흔남이 털어놓은 말은 대략 이러했다. 조정이 항복한 이후 남한산성을 공략하는 데 애를 먹은 청에서는 남한산성을 보수하지 말 것을 강요하며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을 물릴 것을 요구했다. 조선조정은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이를 따랐고 그리하여 남아있는 사람들은 애초 성을 쌓았던 승병들과 오갈 곳 없는 병사들 일천여명이 다였다. 하지만 청의 병사들이 물러갈 당시 행여 본국의 사정이 우려된다며 급히 빠져나가는 바람에 성 인근에 쌓아놓은 막대한 양의 군량과 물자까지는 미처 챙겨가지 않았는데 몽고병들이 이를 노리고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우리에게도 그 군량은 절실히 필요하오.”

최효일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수긍했다. 그들에게는 당장 군량은커녕 화약 한줌, 화살촉 하나라도 아쉽기 짝이 없을 정도로 곤궁하기 그지없는 게 현실이었다.

“기렇다면 몽고놈들과 한판 싸움도 피할 수 없다는 거 아니겠습네까? 병마사가 지금 허수아비나 마찬가지라고는 하나 그의 의향도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닙네까?”

장판수의 말에 최효일이 그게 무슨 대수냐며 코웃음을 쳤다.

“그 양반이야 우리가 움직이는 데로 따라오던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않겠소.”

“최종사관이래 이러한 대군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습네까?”

최효일은 장판수의 말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고선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휘관들은 이미 부대를 떠났고, 장수들을 지휘할 병마사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각기 소부대만 지휘한 경험으로는 조직적으로 몰려들 몽고군과 대적해 싸우기에 모자란 감이 있었고, 병사들의 훈련도도 낮은 편이었다.

“내 생각을 들어 보시겠소?”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차충량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병사들을 재빨리 남한산성까지 이동시킨 후 물자를 성안으로 옮깁니다. 그런 다음 몽고병들을 상대로 농성하면 저들이 무슨 수로 우리를 건드리겠소. 청의 10만 대군이 에워싸 공격을 퍼붓고 대포까지 동원했지만 결국 깨트리지 못한 남한산성이 아니오?”

적극적인 대처는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더 이상의 좋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결국 차충량의 생각을 따르기로 하며 곳곳에 척후병들을 보내어 몽고군의 진격 상태를 알아보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선에서 작전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병마사에게 이 일을 알리기는 해야 하지 않겠소?”

차예량의 말에 장판수가 일어섰다.

“그 일이라면 내가 가겠습네다. 아, 아 걱정마시라우요. 내래 좋은 말로 도와줄 것을 부탁할 터이니. 그리고 내친 김에 아낙네들을 병영에서 내보내야 갔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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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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