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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전방부대 GP 총기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군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6월 27일 육군에서는 <병영문화 선진화>, <군 복무제도개선>, <특수지 근무 차별화>, <경계체제 개선>, <근무환경 개선> 등 5개분야 33개 중·단기과제를 선정해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총기사고는 병사들의 열악한 복무환경과 비인간적인 병영문화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국방정책을 병사중심, 인권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병사중심 국방정책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병사와 인권이 국방정책의 중심에 있지 않는 한 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병사월급 30만원으로 인상

첫째, 병사들의 월급을 30만원으로 올려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는 소득으로 평가된다. 올해 병사월급은 평균 4만6000원이다. 병사들의 가치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물건 다루듯이 함부로 대하게 되고 사고가 나는 것이다. 2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이라크 파병 자이툰부대에서는 병사들 간의 갈등이나 사고가 한 건도 없다고 한다.

병사월급은 독일이나 대만처럼 사회에서 또래들이 받는 평균임금의 1/3~1/4수준, 금액으로는 최소 30만원은 돼야 한다. 그리고 이 수준은 바로 달성돼야 한다. 55만여명에게 30만원씩 지급해도 1조7천억원이면 된다. ‘05년 국방예산 20조8천억원의 8%정도에 불과하다.

'06년도 국방예산요구안에는 병사월급이 6만5000원(상병기준)으로 계상되어 있다. 이는 국방부가 여전히 병사들의 월급인상에 뜻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래서는 2200년전 진시황이 돈도 주지 않고 백성들을 만리장성 쌓는데 동원한 것과 다를 게 없다.

의무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

둘째, 병사들의 의무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여야 한다. 군복무는 인생설계에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지내야 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복무기간에 매우 민감하다.

이는 남성들이 현역복무를 기피하는 원인 중 하나가 복무기간 때문이라는 설문결과로도 알 수 있다. ‘01년 연세대 사회과학연구소의 병역기피사유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0%가 복무기간이 병역기피와 관련이 있다고 대답했다.

병사들의 의무복무기간이 이렇게 길 필요가 없다. 보통의 병사들이 필요한 기능을 습득하는 데에는 한두달이면 충분하다. 전차나 대포 등 전문적인 기능이 필요한 병과는 부사관 등 장기복무 직업군인으로 충당하면 된다. 징병제를 하는 60여개국 중 우리보다 긴 복무기간을 가진 나라는 북한을 비롯 5개국에 불과하다. 독일, 헝가리 등 선진국은 대부분 1년이하다.

그런데도 군은 복무기간 단축에 인색하다. 복무기간이 줄면 병사수를 줄여야 하고, 병사수가 줄면 장교수도 그만큼 줄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집약적 후진군대로 21세기 국방은 불가능하다. 미래전장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수정예화된 첨단과학군이 필수적이다. 미군이 이렇다. 복무기간 단축과 병사수 감축은 전문가들의 의견도 일치하는 만큼 국방부에서도 획기적인 안을 내놔야 한다.

병사들 의·식·주 중산층 수준으로 개선

셋째, 병사들의 의·식·주를 중산층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병사들은 국민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된 훈련과 위험을 감수하며 군복무를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병사들의 의·식·주가 최소한 중산층은 되도록 대우할 책임이 있다.

국방부는 예산이 없다며 병사들의 의·식·주 개선을 장기과제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예산부족이 아니라 예산분배가 문제다. 국방부가 진정 병사들을 생각한다면 병사들의 처우개선을 먼저하고 다른 분야를 뒤로 미뤄야 할 것이다.

식사와 피복의 질도 중요하지만 나는 잠자리 개선이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총기사고가 난 GP를 살펴보고 이런 내무실에서 생활하면 사고가 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벙커 지하에 있는 낡고 좁은 내무실에서 36명이 찜통 더위와 싸우며 잠을 자야 하는 병사들의 고통과 짜증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올해 5월에 방문한 1사단도 마찬가지였다.

군에서는 2015년까지 2단계로 나누어 소대단위(40명) 통합시설(0.7평)을 분대단위(10명) 침대형(2.0평)으로 바꾼다는 계획이지만 너무 늦다. 내무반 개선을 미루는 것은 사고가 나라고 방치하는 것과 같다. 예산분배를 잘 하고, 모자라면 민자나 국민성금을 들여서라도 구식 마루형 내무실은 3년안에 10명 단위 침대형 내무실로 바꿔야 한다.

병사들 사이의 존댓말 사용

넷째, 병사들 사이에 존대말을 사용하는 등 인간적인 병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번 총기사고도 욕설이나 심한 질책 등 병사 상호간의 비인격적인 대우가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조사되었지만, 우리 군에서는 구타와 욕설은 물론 인분사건 등 상상하기조차 힘든 비인간적인 행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한겨레신문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내 군 전역자의 60%가 군에서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05.6.25). 같은 시기 인터넷에는 오물로 세수를 시키고, 소변기에 머리를 박게 하며, 알몸을 만들어 사진을 찍는 등 비인간적인 병영모습이 폭로되기도 했다(’05.6.25 연합).

병사는 제복입은 시민이다. 따라서 당연히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사들은 물론 부사관과 간부들의 인권의식을 바꿔야 한다. 고참들은 자신의 편리와 권위를 위해 하급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간부들은 병사관리와 심지어는 훈련의 과정으로 병사들에게 가혹행위를 강요하는데 이를 막아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훈련과 사생활은 분리해야 한다. 간부와 병들에게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가혹행위를 없애자는 운동 정도로는 부족하다. 존댓말 사용과 계급제 폐지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군과 군사정권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뿌리깊은 악습을 고칠 수 있다.

병사들의 휴대전화·인터넷 사용 전면허용

다섯째, 병사들이 여가시간에는 휴대폰과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총기사고를 저지른 김 일병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지만 사회와 격리된 GP라 마음놓고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만일 김 일병이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가족이나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면 스트레스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 병사들은 휴대전화 소지가 금지되어 있다. 중대단위에 소규모 PC방이 있지만 병사들의 사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제한을 풀어야 한다. 휴대전화는 자기 돈을 쓰는 것이므로 예산이 드는 것도 아니다. 비밀유출을 걱정하지만 누출할 비밀도 없다. 휴대전화나 PC사용 제한은 병영의 치부를 감추고 병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형평성과 부적응문제를 고려한 징병제도 개선

여섯째, 병역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현재의 병영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모병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징병제를 유지하면서 병역형평성과 부적응자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금처럼 사회적 차별이 심한 상황에서 모병제를 추진할 경우 특권층은 합법적으로 군역을 면하게 되고 군대는 가난하고 덜 배운 하층민 출신들로 채워지고 말 것이다. 이는 최근의 조사결과 징병제를 지원제로 바꿀 경우 불과 1~2%의 응답자만이 군대에 가겠다고 답한 데서도 짐작이 된다.

뿐만 아니라 모병제를 하면 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떨어져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렵게 된다. ‘6~70년대 베트남전쟁 때 미국내 반전여론은 매우 높았다. 징병제 시절이어서 미국인들이 우리 자식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병제를 하기 때문에 이라크전쟁에 대한 반대여론은 베트남전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징병제를 유지하되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력이 부족하면 군대시스템을 30만명에 맞추면 된다. 현역으로 가는 정예병을 제외한 남는 자원은 현역보다 조금 긴 24개월정도의 대체복무를 시키면 된다. 10%안팎으로 추정되는 부적응자들도 대체복무를 시켜야 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병역을 거부하는 연간 5~600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만 남는다. 이들의 심성은 양처럼 순해서 총을 잡지 못한다. 거짓말도 할 줄 몰라 외국 유학을 하다가도 징병검사 통지가 나오면 기꺼이 귀국해서 감옥으로 간다. 이들도 병역부적응자의 일종이므로 징역형이 아니라 대체복무를 허용해야 한다. 기간은 일반대체복무보다 훨씬 긴 36개월정도로 하면 된다.

군대영창 폐지 등 병징계제도 개선

마지막으로 군대영창 폐지 등 군징계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군대영창은 중대장 이상의 지휘관이 병사를 징계하기 위해 15일 이내로 가두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군대영창은 사법적 권한이 없는 군지휘관이 일방적으로 병사를 가둘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위헌이다. 헌법 12조는 사람을 가두는 형벌은 적법한 절차와 법관의 결정에 의해서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영창은 간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사병들에게만 적용되는 불평등하고 비민주적인 제도다. 뿐만 아니라 매년 1만3000여건이나 되고, 전체 징계의 2/3를 넘고 있어 매우 남용되고 있다.

군에는 영창제도 외에 강등·휴가제한·근신 등 군내부의 기강확립과 지휘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합법적인 징계제도가 있다. 그밖에도 반성문, 외출제한, 사역처분, 봉사활동, 군기교육대, 각종 인사처분 등 사병을 징계할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군대영창은 즉각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군징계법을 별도로 만들어 징계요건과 징계권자, 질계절차를 구체화하고, 군 형법에 의해 과도하게 처벌받는 부분도 재조정해야 한다. 부당한 제도에서 오는 병사들의 불만과 고통을 더는 것도 군대를 개혁하고 사고를 막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병사중심 국방정책은 국민의 몫

▲ 임종인 의원
총기사고처럼 병사가 동료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은 군의 존립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국민들은 국방정책을 바꾸고 감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병사중심의 국방정책만이 군대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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