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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모자, 헤드라이트 등 꾸미는데도 꽤 많은 비용이 들었다.
열쇠, 모자, 헤드라이트 등 꾸미는데도 꽤 많은 비용이 들었다. ⓒ 양중모
그리고 밤에 타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앞뒤에 조명등을 달고, 열쇠도 사는 등 치장에도 꽤 신경을 썼다. 걸어서 운동하기는 싫었던 내게도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는 일이 많아지면서 불쾌한 일도 자주 경험하게 되곤 했다.

"자전거를 잘 타야 자동차도 잘 운전할 수 있어."

자전거를 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버지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다. 농담으로 알고 웃으려 했으나 진지한 아버지의 표정 때문에 차마 웃지 못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운전면허시험을 위해 안전교육을 받은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중랑천에는 자전거나 인라인을 탈 수 있는 도로가 따로 마련된 구간이 있다. 마치 차로처럼 중앙선이 그어져 있어 그 선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전거와 인라인이 다닌다.

그렇기에 별문제 없을 듯싶지만, 때로는 인도와 겹쳐져 산책을 하는 사람,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이 겹쳐져 복잡한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를 모는 것 만큼이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과속질주하는 인라인 스케이트 족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오는 반대 방향에서 과속으로 오는 인라인 스케이트 족들을 보면 일단 최대한 자전거를 길가로 붙인다. 빨리 달리다 보니 팔이고 발이고 휘젓는 동작이 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자전거 등을 방해하지 말라고 그어놓은 중앙선을 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사람이 아닌 동호회인지

"비켜요. 비켜요. 다쳐요"

라고 외치고 열 명 정도 뭉쳐서 달려오는 인라인 스케이트족을 보면 공포감마저 느낀다. 비록 취미생활이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곳곳에 '과속을 자제해 달라'라는 표시를 보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낄 만큼 달려대는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마주 오는 방향의 인라인 스케이트 족은 피하거나 속력을 낮추어 멈춘다든지 하는 대응 자세를 갖출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그나마 낫다.

사실 나를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다들 자기를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으로 아는지 뒤에서 과속해 달려오는 자전거들이다. 사이클을 타고 휙휙 앞을 지나가는 것까지는 참을만하다고 해도 저 멀리 뒤에서부터 시끄럽게 자전거에 달린 벨을 '땡! 땡!'거리며 비키라고 재촉하는 자전거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정말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꼭 쓸데없는데서 경쟁의식이나 자존심을 드러내는 일부 남자들의 못된 버릇이 그럴 경우 여지없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 밥을 먹여주던가. 그보다는 큰 사고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은 법이다.

"땡! 땡! 땡!"

어느 날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요란한 벨소리를 내면서 위험하게 내 앞을 지나쳐 가는 자전거를 보는 순간 발끈하여 나도 모르게 페달에 가속을 붙여 마구 밟아댄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 생각 안하고 빨리 달려서, 걸어 다니는 사람이고 즐겁게 여가를 즐기는 사람 다 방해한다면서 과속하는 자전거를 경멸했음에도 스스로 그 경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내 눈에는 뒤에서 빵빵거리며 내 감정을 상하게 한 앞 아저씨의 자전거만이 있었을 뿐이다. 기어이 그 아저씨를 제치고 난 승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저씨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는 순간 뒤에서 어김없이

"빵! 빵!"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더욱 더 페달에 힘을 주어 격차를 벌리는데 성공했다. 무언가 승리의 쾌감이 가슴 속을 뒤덮으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약간 비열한 웃음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 그러고 나니 그 괜한 승부욕은 마약처럼 몸을 파고들었다. 평상시 성격이 원래 안전한 것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여유롭게 달리고 있는 내 자전거를 앞서가는 자전거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페달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그래도 여러 번 잘 참았겄만, 사이클을 본 순간 또 이 놈의 쓸데없는 남자의 자존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흥, 사이클 갖고 타려면 대회에 나갈 것이지, 왜 이런데 나와. 이런 자전거 갖고 못 따라 잡을 것 같아.'

사이클을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날은 어쩐지 너무나 지기가 싫었다.

그리하여 있는 힘을 다해 밟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사이클을 앞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승리의 미소를 지을 새도 없이 뒤따라오는 사이클 때문에, 사이클을 따라잡느라 지칠 대로 지친 발을 혹사시키며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그 도로에서 집으로 빠지는 길에 다다랐다. 거기까지 왔으니 내 승리라고 자신하던 순간, 앞에 꼬마아이의 자전거가 도로를 딱 막고 서있었다. 어쩔 수 없이 속력을 낮추고, 살짝 옆으로 비켜서는 순간

"쌩~. 아 죄송합니다."

이런 말을 하며 뒤따라오던 사이클이 내 코앞을 어마어마한 속도로(내가 느끼기에 그랬다는 뜻이다) 스쳐 지나갔다. 크게 놀라면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더니, 정말로 한마디 소리조차 내보지 못하고 심장만 쿵쾅 쿵쾅 뛴 순간이었다.

아무리 자전거지만, 그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던 것과 부딪혔다면 둘 다 적어도 몸에 큰 상처는 하나씩 남겼을 법하다. 뒤늦게 화라도 내려고 사이클을 쳐다보았지만,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괜한 심통에 꼬마 아이의 자전거를 길가로 옮겨주며 투덜거렸다.

"꼬마야 여기다 세우면 안 되지."

들은 척도 안하는 꼬마에게 꼬마의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엄한 목소리로 꼬마를 타이르는 소리가 등 뒤에 와 꽂혔다.

"○○야. 자전거 어디다 세웠어? 거기다 세우면 돼? 안돼? 아빠가 뭐라 그랬어. 남한테 피해주면 안된다고 했지?"

분명 자기 아들에게 하는 말인데 그 꾸중을 듣는 사람은 나인 것만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쓸데없는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속력 경쟁을 벌이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때때로 페달을 밟고 있는 발에 강한 힘을 쥐고 싶은 욕망만큼은 여전히 잘 사라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 놈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공부나 일하는 데로 옮겨와 강렬히 타올랐다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진즉에 실천하고도 남았을 텐데.

덧붙이는 글 | 그런데 아쉽게도 이 놈의 영양가 없는 자존심은 여전히 사소한 것에 더욱 더 경쟁심을 불태우곤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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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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