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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소리인가? 아직도 우리 병사들이 청의 병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니?”

비변사에서는 이종신이 올린 장계를 들고 한바탕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이종신의 장계에는 장판수 등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군사들을 선동해 몽고병과 전투를 벌이고 있고, 남병사 서우신은 이를 수수방관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허나 몽고병의 횡포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성상께서도 이를 우려하고 있소.”

영의정 김류의 말에 비변사의 대신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청에 항복한 이후 민심은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었으며 이런 때에 행여 누군가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마저 조정관료 사이 속에서는 싹트고 있었다.

“북병사 이항은 뭘 하고 있소이까?”
“북병사 이항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소이다. 행여 이들이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요?”

짧은 논쟁 후에 비변사에서 내린 결론은 남병사 서우신과 북병사 이항을 전란 중에 출병하지 않은 죄로 다스리고 보자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좌의정 홍서봉이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팔도의 병사들이 거의 와해되어 있는 지금, 그들은 조선의 주력군을 다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어찌 그들을 함부로 자극할 수 있겠소? 내게 묘한 계책이 있소이다.”

그로부터 얼마 뒤, 최명길의 아우 최만길의 집에 식객으로 들어앉아 있는 안 첨지에게 사람이 찾아와 밀봉된 봉서를 전달했다.

“또 그놈인가? 허허허….”

봉서를 다 읽은 안 첨지는 이를 아궁이에 집어넣어 태워 버린 후 최만길을 통해 최명길의 이름을 빌려 말을 타고서는 남한산성으로 길을 재촉했다. 엉망이 되어버린 남한산성에는 그때가지도 어느 정도 수의 군사들과 승려들이 남아 어수선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안 첨지는 당장 두청을 찾아갔다.

“무슨 일인데 여기 다시 왔나?”
“어째 달갑잖은 마중이외다.”

안 첨지는 억지웃음을 지어보인 후 장판수가 주축이 되어 몽고병들과 접전을 벌이려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뭘 어찌하자는 것인가?”
“조정에서는 이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소이다. 해서 말인 즉, 몽고병들에게도 주의를 주어 되도록 큰 충돌이 일어나도록 해 달라는 것이외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이득이 있는가?”
“남병사와 북병사가 거느린 병력은 보급이 원활하지 않고 몽고병들은 명령계통이 서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충돌이 일어나면 피아간에 많은 피해가 생길 것이고, 몽고병이고 우리 병사고 간에 동시에 나가떨어질 것이니 동시에 우환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외다.”

두청은 심통 맞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걸 내가 어찌 하라는 것인가? 몽고병들에게 가서 병사들의 움직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란 말인가?”
“우리에겐 이 장군의 결사대가 아직 건재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두청의 얼굴이 야차(夜叉)와도 같이 무섭게 변했다.

“내 이놈! 어찌 여기서 그런 말을 하느냐!”

안 첨지는 두청의 표정에서 개의치 않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계속했다.

“그들을 이용해 몽고의 대부대를 남병사 진중 가까이까지 유인해 오면 되옵니다.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조정을 지킬 병력이 소진된 이후에야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룰 수 있소이다.”

두청은 일그러트렸던 표정을 풀고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지금 멀리 있는데 어찌 서둘러 불러올 수 있겠나?”
“사흘 후면 됩니다. 사흘 안에는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장판수 같은 놈들이 먼저 몽고병들을 자극할 것이니 마지막으로 불을 지르는 것이 그들의 몫입니다. 그리고 서흔남이라는 자를 여기서 요긴히 부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자를 제게 불러주십시오.”

두청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윽고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알겠네. 이번 일은 자네 말을 따라보겠네만, 도원수는 어찌 된다는 얘기가 있는가?”
“그 자 역시 딴마음을 먹고 있지만 당분간은 운신하기 힘들 것입니다. 조정에서 남한산성을 구원하러 오지 않은 이들을 탄핵하기 위한 상소가 줄을 잇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너진 석축이 군데군데 늘어선 남한산성 위에 어느덧 먹구름이 음침히 걸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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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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