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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불쌍한 주전자. 몇번의 장렬한 산화를 더 거쳐야 할까?
내 불쌍한 주전자. 몇번의 장렬한 산화를 더 거쳐야 할까? ⓒ 이승열
점심메뉴로 카레 돈가스를 준비하기로 했다. 감자, 양파, 당근, 스팸을 썰어 볶지 않고 담백하게 물만 넣고 끓이다가 고형 카레를 넣으면 끝나는 간편하고 맛있는 요리. 문제는 꼭 요 시점에서 발생한다. 주방에서 야채가 끓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나는 그냥 물 마시러 주방에 갔다가 양파인지 감자인지 형태를 찾을 수 없는 뭉개진 야채에 그냥 고형카레를 넣어 ‘잡탕뭉근’ 카레 죽을 완성한다.

레인지 위에 뭔가를 가열할 때는 절대 주방을 떠나지 말자고 다시 다짐한다. 가슴도 진정 시킬 겸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좋겠다. 그래도 홀랑 타지 않은 것이 어디야. 주전자를 찾아 물을 붓고 다시 가스레인지의 불을 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엇인가 가열되고 있는 강렬한 느낌이 주방 쪽에서 팍팍 전해져 온다. 아까 틀림없이 카레 끓이고 가스 불을 껐는데, 뭐가 타고 있는 거야? 그런데 꼭지가 몽땅 녹아내린 주전자가 빨갛게 달구어진 채 불덩이다.

흑, 잘 가거라, 내 주전자야. 이사 기념으로 선물 받은 것을 전에도 한 번 태워 꼭지가 거의 뭉그러진 것을 4년째 쓰고 있었다. 오후 슈퍼에서 예쁜 주전자 앞에 잠시 서 있다가 반성하는 의미로 냉정하게 돌아섰다. 그래, 꼭지만 탓을 뿐인데, 아마 쇠가 달궈져서 더 튼튼한 주전자가 됐을 거야.

3. 나만 그런가 뭐

전화벨이 울렸다.

“아직 자니?”
“아냐 조금 전에 일어났어. 정신 차리고 있는 중이야.”

휴일 아침 이런 전화를 할 사람은 K뿐인데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

“근데 지원이네. 어쩌고. ~!@#~%^&*(@#$%...”

어쩐지 감이 이상하다. 분명히 K는 아닌,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다.

“저 죄송하지만 어디에 전화하셨나요? 여기 00이 집인데요.”
“앗, 00이 엄마. 죄송해요. 지원이 집에 전화 했는데 왜 00이 집이 나오냐?”
“앗, 저도 죄송해요. 반말해서. 그럼 안녕히 계세요.”

우하하하. 내가 젤 심각하긴 하지만 모두들 그에 못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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