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 생각해도 나는 얼치기 교사였다. 나는 학생들의 성적에는 무척 관대하였다. 학생들에게 성적표를 나눠주거나 그 성적표를 돌려받을 때 알고도 속고, 일부러도 속아주었다.

시험을 잘 못 치른 학생은 성적표를 받을 때가 가장 고역이요, 그걸 부모님에게 보일 때가 가장 괴롭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교단에 처음 설 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올해 텃밭 농사는 낙제점

▲ 잡초 속의 고구마순
ⓒ 박도
처음에는 성적표를 나눠줄 때 야단을 치면서 회초리도 들어봤지만 늘 매 맞는 녀석만 맞았다. 성적표를 나눠주는 날에 시험을 잘 못 본 학생이 담임에게로 올 때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곧 매로써 성적을 올린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은 미봉책이라는 걸 깨달았다. 때로는 학부모나 언저리 사람들로부터 나는 성적에 너무 관대하다는 핀잔도 들었지만 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본인이 시험 못 본 것도 괴로운데, 매에다가 학부모 모시고 오라고 하면 그 학생은 얼마나 괴로울까?

올해 내 텃밭 농사는 낙제점이다. 지난해보다 더 엉망이다. 그 원인은 나의 게으름과 경험 부족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다리도 좀 불편한데다가 퇴비도 많이 내지 못했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둑에다 비닐을 덮지도 않았고 게다가 잡초를 초기에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울나들이를 몇 차례 하느라 텃밭을 돌보지 않았더니 그새 잡초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특히 고구마순은 잡초에 에워싸여서 자라지도 못하고 한 달 전, 순을 심을 때나 별반 다름이 없다. 집 마당의 질경이도 한 차례 뽑아줬지만 오히려 성장을 더 촉진시킨 듯 아주 풀밭을 이루었다.

며칠 전, 한 방송국 작가가 "선생님 텃밭을 얼마나 잘 가꿨는지 구경도 할 겸 집을 방문하겠습니다"고 하기에 마침 오겠다는 날 아내도 집에 없는 날이라 그 핑계를 대고 한 주를 미뤄버렸다. 아무리 얼치기 농사꾼이지만 잡초 밭을 어떻게 여러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랴.

▲ 땡볕 아래 잡초와 씨름하다
ⓒ 김성희
앞집 노씨가 그 사정을 알고서는 자기네 무 밭을 대신 보여주라고 하지만 어찌 눈가림을 할 수 있으랴. 그런데 급한 원고 마감 일로 텃밭을 나갈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방송국에다가 전화하여 내가 대신 그쪽으로 가는 걸로 일단락을 지었다.

요즘은 나는 텃밭을 쳐다볼수록 큰 죄를 지은 것 같고 누군가 그곳을 볼까 무척 걱정이 된다. 아내가 한 마디 했다. "텃밭도 제대로 가꾸지도 못하면서 온 곳에다가 나발 불었으니 이제 어쩔 거냐?"고 다그쳤다.

아닌 게 아니라 지인들이 "전화로 텃밭 농사 잘 되느냐?"는 인사도 자주 물어온다. 그때마다 나는 죄진 기분으로 이실직고하기가 여간 괴롭지 않다.

나는 마침 새 신간도 나왔기에 <오마이뉴스> 편집회의에다가 기자 소개 글을 고치면서 "텃밭을 가꾸며"라는 내용이 빠진 글을 보냈다.

사실 그보다 중요하고 더 미안한 것은 내가 심은 작물에 대한 죄스러움이다. 마침내 어제 해가 진 뒤 호미와 낫을 들고 텃밭에 갔다.

해가 없어서는 좋았지만 모기떼들이 공습으로 팔뚝과 목이 성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중단하고 오늘 땡볕에 김을 매었다.

"오뉴월 땡볕에 김 한 번 매 봐라"

▲ 한 차례 호미가 지나간 오른쪽 두둑과 호미를 기다리고 있는 왼쪽 두둑
ⓒ 박도
옛날 어른들이 "오뉴월 땡볕에 김 한 번 매 봐라"라는 말씀을 자주하셨는데, 금세 등줄기에서는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또 코로는 풀 냄새와 땅 냄새가 땅의 열기와 함께 확 빨려들었다.

… 원통하다 농사일꾼 한탄한들 소용없네 삼베옷을 등에 걸쳐 구슬픈 그 소리가 저 들판에 흘러가네 구슬같은 땀방울이 발끝마다 떨어지고 숨도 차고 목마른데 얼른 매고 한 잔 하세 어렸을 때 못 배운 글 한탄한들 소용없네 쇠털같이 맑은 날에 낮과 밤이 하루 같아 주야장천 하는 일이 끝도 없고 한도 없네….

- 경북 선산지방의 '김매기 노동요'


잡초를 초기에 잡지 못하여 여간 힘들지 않았다. 잡초란 놈이 뽑히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썼다. 그 놈을 뽑아주자 그 서슬에 가려있던 고구마 잎과 줄기가 방긋 웃으며 인사를 한다.

뻐꾸기와 휘파람새가 멀리서 지켜보면서 조잘거린다.

"박도 아저씨, 이제야 아셨지요. 농사꾼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지."
"그래 잘 알겠다. 앞으로는 농산물 사먹을 때 절대로 비싸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아저씨만 그러시면 되나요?"
"그래, 그래. 내가 늘 머릿속에 담아두고 앞으로 글을 쓸 때마다 유념하겠다."

"아저씨, 멋쟁이! 내년부터는 욕심 내지 말고 조금만 지으세요. 그 대신 글이나 더 열심히 쓰세요. 그게 농사꾼들을 도와주는 거예요."
"잘 알았다. 귀여운 멧새들아."

▲ 한 평생 밭을 가는 농사꾼, 가장 고마운 분이시다.
ⓒ 박도
땡볕에 두 골의 김을 매자 그새 옷이 다 젖고 지친다. 한꺼번에 다 매려다가 탈이 날 것 같고 오후에는 또 서울나들이를 가야 하기에 남은 밭은 다녀와서 마저 매야겠다.

날씨가 덥다고 떠들지 말아라
이 더위에 밭이랑 김매고 있는
저 할아버지를 보아라

한평생 엎드려 농사를 지어도
남들만 먹여 살리는 저 사람들을
어느 어진 임금이 살펴줄 것인가

- 변계량(조선 전기 문인)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올랐던 인터뷰 기사를 모아서 도서출판 '새로운사람들'에서 <길 위에서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엮었습니다. 애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