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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의 출발점인 생쟁피드포르 마을의 모습.
산티아고 순례의 출발점인 생쟁피드포르 마을의 모습. ⓒ 김남희

2005년 6월 19일 일요일 파란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하늘.

아침을 먹고, 배낭을 꾸려 숙소를 나선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숨 한 번 깊게 들이쉬고, 중얼거려본다.

"이제 다시 시작이야. 화이팅!"



생쟁피드포르역, 850km 순례가 시작됐다

파리의 몽파르나스역에서 출발한 초고속철도 TGV는 오후 2시 50분에 바욘(Bayonne)역에 섰다. 이곳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생쟁피드포르(St. Jean-Pied-De-Port)역에 내리니 오후 4시. 순례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내일부터 한 달간 내가 걸을 길의 이름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해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 국경 근처까지 이어지는 850km의 길.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서른셋의 나이에 세상을 구원하고 죽은 예수. 그의 열 두 제자 중 하나였던 야곱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어왔던 길. 이 길의 끝 산티아고에는 그의 무덤이 있어 천 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순례자들이 찾아오고는 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버린 길.

나처럼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들도 걷기 위해 찾아오는 곳.

그 길 위에 지금 내가 서 있다.

성벽에 올라가 내려다본 생쟁피드포르 마을
성벽에 올라가 내려다본 생쟁피드포르 마을 ⓒ 김남희

베르나르 올리비에를 향한 부러움, 그리고 흔들림

산티아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질과 지팡이, 그리고 배낭.
산티아고 순례자의 상징인 조개껍질과 지팡이, 그리고 배낭. ⓒ 김남희
2001년에 한반도의 남단 820km를 걸은 이후, 걷는 행복은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 되었다.

더 이상 한 발짝도 더는 뗄 수 없을 때까지 걷다가 문득 멈춰 돌아보는 세상은 조금 더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수많은 상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얗게 비워지는 경험. 그 찰나의 몰입과 비움은 늘 경이로웠다.

긴 여행을 시작한 이후 늘 어딘가 낯선 도시를 걷고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가끔씩 충족되지 않는 갈증이 타올랐고, 그럴 때면 내가 하는 여행이 진정 내가 꿈꾸었던 방식인가 스스로에게 되묻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네팔에서 우연히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쓴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읽게 됐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전율했고, 읽고 난 후에는 부러움과 질투와 존경이 뒤섞인 어지러운 마음으로 한동안 흔들려야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먼저 한 사람이 있다는 것, 걷는 행복을 발견하고 그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누군가 나와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은 기쁨이기도 했다.

그가 걸은 1만2천km의 실크로드를 나도 걷고 싶었고,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나도 만나고 싶었고, 그가 본 것들을 내 눈으로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 길었고, 그만큼 위험했다.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선택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는 책머리에 실크로드를 걷기 전에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 길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조금씩 정보가 쌓여 가면 갈수록, 산티아고에 대해 알면 알수록, 하루라도 빨리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열망이 점점 커져갔다.

파키스탄과 이란,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넘어온 건 바로 이 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파리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준비하는 동안 내 마음은 이미 스페인 북부의 길 위에 서 있었다.

지난 1년간의 갈증과 열망이 마침내 나를 이곳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의 프랑스루트 출발점인 생쟁피드포르에 서게 했다.

순례자 2만1544명, 한국인은 3명

이곳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산티아고협회를 찾아가 증서를 받는 일이다. 길을 물을 필요도 없이 배낭을 멘 이들을 따라 가니 협회의 사무실이 나온다. 기다리는 동안 벽에 붙은 통계자료를 읽어보니 작년 한 해 이 길을 걸은 사람은 2만1544명. 프랑스인이 6629명으로 가장 많고, 스페인, 독일, 이태리,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영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브라질순이다.

작년 한해 이 길을 걸은 일본인은 117명, 한국인은 3명. 단, 전체 구간 중 100km만 걸어도 증서가 나오므로 이들 중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전 구간을 완주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접수증에 국적과 이름 등을 기입하다 보니 이 길을 걷는 목적을 묻는 질문이 있다.

다섯 개의 예가 주어져 있다.

1. 종교적 이유 2. 영적인 이유 3. 문화적 이유 4. 스포츠 5. 기타

나는 '2번 : 영적인 이유'에 동그라미를 친다.

서류를 접수하고, 첫 도장을 받고,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로 이동했다. 알베르게(Alberge)는 증서를 가진 순례자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숙소로 방과 부엌, 샤워시설을 갖춘 저렴한 숙소이다.

창문을 고정하는 받침대도 이렇게 감각적으로 고안했다.
창문을 고정하는 받침대도 이렇게 감각적으로 고안했다. ⓒ 김남희

앞서 걸었던 레이첼이 만난 사람들

현관문 손잡이.
현관문 손잡이. ⓒ 김남희
짐을 풀고 있자니 한 눈에 보기에도 강인한 인상의 여성이 들어선다. 상하이의 미국인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레이첼.

그녀는 이 길을 두 번이나 걸었단다. 처음에는 내가 걸을 일반 코스로, 두 번째는 프랑스 북부에서 시작하는 1800km 코스를.

그녀는 그 길에서 만났던 잊혀지지 않는 몇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첫 순례 때 만났던 프랑스 남자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순례 중 우연히도 아내의 이름과 같은 이름의 마을을 발견하는 순간, 그는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고, 한참 울고 난 후 한결 맑아진 얼굴로 그 길을 걸어갔다고 한다.

그녀가 만났던 또 다른 독일인 남자는 옛 순례자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걷겠다며 그 길에 섰다. 그는 작은 가방 속에 갈아입을 옷만 한 벌 넣고, 한 푼의 돈도 지니지 않고,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구하며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그녀의 삶을 너무나 풍성하게 해주었다며, 분명 행복한 여행이 될 거라고 격려해준다.

짐을 풀고 바로 마을 중심에 있는 성당으로 갔다.

사람들이 밝혀 놓은 촛불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이 길 위에서 내내 깨어있게 하소서. 제 앞에 기다리고 있을 기쁨뿐 아니라 슬픔과 고통마저 기꺼이 껴안을 수 있게 하소서. 그래서 이 길의 끝에 섰을 때 더 깊어지고, 맑아지고, 넓어질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성당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밤이 오고 있는 거리에는 나처럼 간편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가득하다.

내일부터 다시 걷는다.

이 길 위에서 내가 만나고 보게 될 것들을 미리 상상해본다.

오늘밤 쉽게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간절한 기원을 담아 밝힌 촛불. 생쟁피드포르 성당에서.
간절한 기원을 담아 밝힌 촛불. 생쟁피드포르 성당에서. ⓒ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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